미스터리/괴담/공포 강령술

스탠바이에 들어간 세트 한켠에서 나는 몽골에서 왔다는 조그만 노인과 마주 앉은 채

 

통역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말없이 나를 바라만 보는 그 노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조명이 밝혀진 세트에서는 원래 진행을 맡았던 영민한 아나운서 출신

 

여자 MC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가수 출신 남자 진행자 놈이

 

아직도 제대로 대본을 외우지 못해 더듬대며 성질을 부리고 있었고

 

순전히 시청률을 위해 동원된 어린 여자 가수애들은 살짝살짝 노출이 된 옷차림으로

 

열심히 화장을 고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긋지긋한 풍경에 몸서리가 쳐지려는것을 애써 참으며

 

나는 다시 노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시작할테니 준비할게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십시요"

 

 

통역을 맡은 덩치큰 여자가 마치 발음이 새는 듯한 그네들 특유의 언어로 말을 전하자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뭐라고 말을했다.

 

그러자 통역은 곧바로 유창하게 한국말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적어도 통역 하나는 제대로 구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 의식은 정신력과 성스런 언어로만 진행되는 것이므로 특별한 도구는 필요가 없다고 하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그 노인을 안스럽게 생각했다.

 

원래는 과학상식에 대해 흥미롭고 깊이있는 관찰을 하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던 이 프로가

 

이상하게 변질된 것은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참신한 기획과 아이디어로 상당히 높은 시청률을 확보하면서

 

일약 방송사의 간판프로로 까지 부상했었지만

 

1년 고비를 넘기면서부터 소재의 고갈로 시청률은 수직하강하기 시작했고

 

그새를 놓치지 않고 경쟁사에서 화려한 캐스팅으로 시작한 버라이어티 쇼가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완연히 내리막으로 접어들며 한자리 시청률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할수 있는한 모든 시도를 했다.

 

주위 의견을 받아들여 진행자를 교체했고 전문가 패널들도 대폭 줄이며

 

연예인들을 출연시키기 시작했다.

 

내용에 있어서도 그동안 가장 인기있었던 소재들을 재탕 삼탕 우려먹었고

 

결국에는 예전에 이런저런 이유로 묻어놓았던 '위험한' 기획들까지 선보였다.

 

그중 하나가 집안에서 쉽게 구할수 있는 도구들로 만드는 폭발물에 관한 것이였다.

 

방송에 내보낼때 몇가지 중요 요소들은 살짝 빼고 내보냈지만

 

인터넷의 위력을 등에엎은 철없는 어린 녀석들은 금새 미싱링크들을 찾아내

 

손쉽게 폭발물을 만들어 냈고 결국 어느 초등학교 사물함에 아이가 만들어 넣어두었던

 

수제폭탄이 열에 못이겨 폭발하는 사고가 터지면서 우리 프로는 세간의 지탄을 받으며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PD자리까지 위험하게 생긴 나는 결국 위에서 하라는대로

 

수동적으로 프로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제 다음 개편때면 없어질게 확실한

 

프로의 마지막을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기획으로 장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세계의 기인', 세계 각국의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능력을 선보인다는 여름특집 코너로 지금까지 자석인간, 기공 수련자,

 

투시력 소유자 등등의 이름을 붙인 광대와 사기꾼들을 초대해 마치 진짜인양 꾸며서

 

방송에 내보내왔다.

 

이 유치하고 사기성 짙은 기획은 나의 생각과는 달리 여름시즌을 맞아

 

그런대로 반응을 얻었고 심령 치료사란 인도인이 초대되었던 지난주에는

 

두달만에 다시 두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오늘 이 몽골에서 온 조그만 노인이 보여줄 것은 바로 강령술이였다.

 

몽골의 어느 조그만 산골 마을에서 죽은자의 영혼을 불러와 점을 본다는 이 무당은

 

나이가 90이 넘었다고 한다.

 

고작 몇프로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

 

TV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산골에서 늙은 노인네를 고생시켜

 

한국땅까지 불러내 창피를 주어야 할것을 생각하면 앞이 암담했다.

 

애초에 귀신이란것이 존재할리도 없기에 강령술 역시 결국은 교묘한 사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 노파는 자신에게 진짜로 영혼을 불러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곧 있을 생방송에서 이 노파가 강령술에 실패할때엔 어떻게 되겠는가..

 

그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노파가 통역을 향해 뭔가 말을 건넸다.

 

 

"선생님 께서는 영혼을 믿지 않으시는것 같다는군요?"

 

"저요? 뭐.. 사실 이렇게 모셔놓고 이런말 하기엔 뭐하지만 전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게 사실이군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그런걸 곧이곧대로 믿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자신을 찾아와 강령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거냐고 물어보시는데요?"

 

"당연하죠, 공포때문입니다.

유령이니 영혼이니 저승따위 이야기는 전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에서

기인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이라도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죽은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일테니까요..."

 

 

노파는 통역이 어렵사리 전해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한동안 나를 측은한듯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짧게 한마디를 했다.

 

 

"더이상 두려워 하실 필요가 없을거라는군요..."

 

"하하.. 그런가요, 이제 곧 방송이 시작될겁니다.

저쪽 서있는 사람이 손짓하면 바로 무대로 안내해 주세요.."

 

 

시간이 다 된것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카메라 뒤로 달려가며 통역에게 말했다.

 

곧 생방이 시작되었고 녹화와는 다른 생방 특유의 긴장감이 무대를 맴돌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은 녹화로 가게 마련이고 이전까지 우리 프로역시 그랬으나,

 

이번 기인 특집은 신빙성을 높인다는 미명아래 생방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보조 한놈이 헐레벌떡 나에게로 뛰어와서는 헉헉 거리며 말했다.

 

 

"얘기 들으셨어요? 경쟁사 버라이어티 쇼 무대에 누전사고가 나서 불이났대요..

거기 난리났어요, 생방직전에 사고가 나서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아마도 지난주 재방으로 나갈 모양이에요"

 

나는 어쩔수 없이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이제 미운정 고운정 다 떨어져 나간 프로지만 경쟁프로가 그지경이 되었다면

 

시청률은 엄청나게 오를테고 그나마 그걸로 유종의 미란걸 거둘수도 있을게 아닌가.

 

그네들과는 달리 우리 방송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곧 무대로 몽골인 노파가 불려나왔다.

 

멍청한 진행자 녀석의 썰렁한 농담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드디어 노파가 강령술을 시도하는 순서가 왔고

 

무대의 조명은 푸르스름하게 바뀐채 한가운데 가부좌한채 앉아

 

가지고 온 작은 책자를 펴든 노파를 핀조명으로 비추었다.

 

노파는 한동안 강한 조명을 의식하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선 조그만 책에 적힌 글자들을 독특한 음운을 넣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마치 허밍을 하는듯한 그 기인한 목소리는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였고

 

우리의 조명의 힘을 빌어 그럴싸한 화면이 나가기 시작했다.

 

미리 노파에게 물어본바 5-10분 정도가 걸린다는 강령술은

 

그렇게 천천히 진행되어갔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허밍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미리 리허설을 해보려 했으나 한번 강령술을 하면

 

4,5일은 쉬어야 한다는 노파의 말에 포기했던게 슬슬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내눈앞에 믿을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조금전까지 노파외에는 아무도 없던 무대에 갑자기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아주 작고 형체가 일그러진 것이였으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현실의 것이 아닌듯 보이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였다.

 

나는 놀라서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애써 억누르며 카메라쪽으로 달려갔고

 

그 사이 방청석에서는 공포에 질린 방청객들의 비명이 터져나오며

 

패닉 상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카메라에도 내가 본 형상이 뚜렷하게 잡혀있었다.

 

그리고 사전에 우리는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몰라도 그 노파가 불러낸 것이였다.

 

순간 고개를 숙인채 노파옆에 서있던 아이의 형체가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 얼굴을 나는 전에 본적이 있었다.

 

비록 사진을 통해서였지만 상황이 상황이였던지라

 

그 얼굴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같은반 아이가 우리가 방송했던 내용대로 폭탄을 만들어

 

교실 사물함에 보관했다가 그것이 폭발하면서 튄 파편에

 

목의 동맥을 잘려 숨진 아이의 모습이였다.

 

이 조그만 몽골인 노파는 진짜 무당이였고 정말로 강령술에 성공한 것이였다.

 

 

"이건.. 정말 대박이야..."

 

 

나는 공포와 기쁨이 섞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혼잣말을 했고

 

그 순간 무대에 서있던 아이의 영혼이 갑자기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나를향해 날듯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에게로 다가온 아이의 혼령은 허공에 뜬채로 내목을 휘어잡고는 조르기 시작했다.

 

영혼임에도 불구하고 그 강력한 물리력은 내 목을 확실하게 누르며

 

숨을 못쉬게 했고 나는 곧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거의 숨이 넘어가려는 찰라 무대에 앉아있던 노파가 가부좌를 풀더니

 

나에게 다가와 크게 호통을 치며 아이 영혼의 어깨를 내리쳤고

 

그러자 마치 연기처럼 아이의 형상이 사라지면서 목을 조르던 힘도 서서히 사라졌다.

 

노파는 나를 향해 뭔가 말을 하자 무대에서 놀라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통역사가 달려오더니 말을 했다.

 

 

"그 영혼이 당신에게 강한 원한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라는군요..

대게는 그렇게 원한을 가지고 죽은 영혼이 쉽게 불려진다고 해요...

자신이 성불을 시켰으니 안심하라는데요..."

 

 

나는 간신히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통역사에게 말했다.

 

 

"저분에게 여쭤봐 주세요..

아까 이 의식이 소리만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인지 말입니다.."

 

 

"그렇다는데요..

영혼을 부르기 위한 주문을 정확하게 낭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신이 바른 사람이 정확히 읽어 내기만 하면 누구나 영혼을 부를수 있다고 해요..."

 

 

 

 

 

 

나는 조금전 아이의 영혼을 봤을때 보다 더욱 큰 공포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무대는 전국에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너무나 명확한 노파의 음성을 싣고 말이다.

 

 

 

 

 

 

 

 

그때 귀에 꼽은 이어폰을 통해 위의 통제실쪽에서 연락이 들어왔다.

 

 

 

 

 

 

 

 

 

"이봐 이 PD 기뻐하라구!! 방금 우리 프로 시청률이 40%를 넘었어!!"

 

 

 

 

 

 

 

 

 

원문 출처 : http://cafe.daum.net/rocla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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