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괴담/공포 그곳의 기묘한 이야기 10

그 곳의 기묘한 이야기-10 : 친구

 


전상병은 잠시 마른 눈물을 닦아냈다.


"죽은 정한수가 했던 말....그 말을 난 김창식 병장과 최병희 병장한테 말하고 말았어."


"무..무슨 말 말입니까?"


"죽은 정한수가 그랬잖아. 땅구덩이에서 쏟아져 나온 귀신 중 하나가 김창식 병장한테 붙었다고....

 

부적 얘기부터 해서 정한수가 내게 했던 말을 낱낱히 털어놓았지.


그 말을 들은 김병장은 엄청나게 두려운 기색을 보였어. 그냥 실성한 놈이 허튼소리 했다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유독 김병장은 그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거야. 죽은 김선호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 보였어.

 

우리 모두가 잊고 싶었던 기억에서 김병장은 벗어나지 못했던거야


난 분명히 확신해. 정한수의 부적을 없애버린 사람은 김창식 병장이야.


그래서 정한수가 죽은 거고, 그 사실을 나차럼 짐작하고 있는 최병장은 그 뒤로 김병장을 엄청나게 갈구기 시작한거야."

 

 

어린 아이처럼 손톱을 깨물고 있는 전상병은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5초소가 생기기 전....5초소 자리에 밤마다 누군가가 돌아다닌다는 사병들의 얘기 때문에 5초소를 만들었던 거야.

 

명목상은 민간인 출입이나 적의 침투 경로 차단이었지만 다 들 알고 있었어.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

 

다 들 죽은 정한수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수근거렸지.


그런데 근무를 서면서 니가 나한테 죽은 김선호 얘기를 한거야.


난 심장이 멎을 것 같았지. 잊고 싶었던 악몽같은 기억이 다시 나를 고문하기 시작했어.


최병희 병장한테 그 얘기를 했지만 최병장은 나를 미친 놈 취급했어.


이 부대에 죽은 김선호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정말 심장이 터져나갈 듯 두려웠어.

 

왜 김병장이 정신병자처럼 고양이를 그렇게 죽이는지 그 심정이 이해되는 것 같았어."

 


"수사관이 그러던데 어젯밤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정말입니까? 실탄을 들고 갔던 기억이 전혀 없었습니까?"

 


"실탄은 내 의지로 챙긴거야. 두려움이 몰려와 어쩔 수가 없었어. 어둠이 깔린 풀숲에서 김선호를 볼 것 같았어.


아니...김선호의 혼령에 지배당한 누군가가 나를 해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실탄을 챙겼어. 쏠 생각도 없었고, 죽일 생각도 없었어. 단지, 장전된 그 총이 없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어.


매복훈련이 계속되자 조금씩 졸음이 몰려왔어. 그리고 그 다음 일이 기억에서 사라진거야. 귀신들린거야...분명히.."

 

전상병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데..너 정말 김선호를 어떻게 안거냐?"


전상병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의 표정으로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상병님 명찰에 적혀 있는 이름이 김선호였습니다."


"..........."


전상병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부대에 김선호가 있어...김병장과 최병장이 위험해. 김선호가 그들한테 붙어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김병장이 고양이를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도 고양이가 죽은 김선호를 불러내기라도 할까봐 두려운거야.


김선호에 대한 죄책감을 지우려고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행동인지도 몰라.


전에 니가 그랬잖아. 고양이가 아닌 사람이 귀신을 알아보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칼잡이 김병장이 누구에게 식칼을 던져버릴지 몰라.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돼. 그런데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전상병에게 나는 조심스레 작은 봉투를 꺼내 그 안에 들어있는 부적을 보여 주었다.

 

 

"아니!! 니...니가 그걸 어떻게?"


"죽은 정한수 엄마가 저에게 준겁니다. 귀신을 보여 줄거라고..."


"뭐? 뭐라구?"


"어젯밤 사고가 있기 전 귀신들을 보았습니다. 훈련 중인 부대원들 이상가는 많은 수의 귀신을 말입니다.


그리고 전상병님과 몸싸움을 할 때도 알 수 없는 낯선 기운을 느꼈구요.


무당이라는 정한수 엄마가 자신의 아들을 찾지 못하면 우리 부대원들이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한수라는 사람을 찾아 그를 위로하여 그들의 세상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김선호는? 죽은 김선호는 어떡하고?"


"저는 그 사람 얼굴도 모릅니다."


"그냥 어떻게 해서든 찾아...."

 

 

잠시 후 수사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상병은 나에게 다가와 차가운 철창살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니가 부대원들과 내 목숨을 살렸다. 나중에 사회에서 다시 만나거든 우리 꼭 살아 있는 모습으로 보자."

 

전상병은 마른 눈물자국 위로 또 다른 눈물을 쏟아냈다.

 

"그 때는 우리 과거를 잊고 정말 좋은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다."


"........"

 

나는 슬픔과 서러움에 일그러진 전상병의 얼굴을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부대에 돌아온 나는 중대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간부들과 면담을 해야만 했다.


대량 살상 사고를 막은 공로로 대대장 표창과 함께 포상휴가가 있을거라는 얘기도 들려 주었다.


어쩌면 먼 친척뻘 되는 사단장의 지시였는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김창식 병장과 최병희 병장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단초?"


"네. 며칠만 단초를 서게 해주십시요."


"너 미친 것 아냐? 그건 안돼. 부대 인원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규정상 단초는 설 수가 없어."


근무자 배정을 담당하는 선임하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내 얘기를 받아들였다.


"며칠만입니다. 부탁입니다. 선임하사님."


"너 왜 단초근무를 서려고 하는데? 일병생활 하니까 힘드냐? 자살이라도 하려고? 전에 이 부대에 자살 사고가 있었다는 것


너도 알고 있지? 아니면 탈영이라도 할꺼냐?"

 

"자살을 할거면 뭐하러 단초 근무까지 요청을 하겠습니까? 산에 올라가서 그냥 목이라도 매달면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곧 포상휴가를 갈 사람이 탈영을 하기 위해 단초 근무를 요청합니까? 그냥 휴가 나가서 안들어오면 되지."

 

"아~~~ 이 새끼..특이한 놈이네. 딴 놈들은 무서워서라도 싫어할텐데...진짜 이유를 말해봐.

 

이유가 분명하면 허가해 주지."


선임하사의 말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말하라니까...."


"...귀신을 만나야 합니다."


내 말에 선임하사는 멍하니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급스런(?) 단어를 사용하며 입을 열었다.


"아주 지랄염병을 하는구나."

 

"......."

 

"너 혹시 귀신 볼 줄 아냐?"


"네. 총기 사고가 있던 날도 훈련 중인 귀신들을 보았습니다."

 

선임하사는 놀란 듯 내 답변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헌병대에서 전대웅 상병을 면담했는데 전상병도 자기가 귀신들렸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사건이 또 일어날 지도 모릅니다."

 

선임하사의 눈빛은 내 말을 불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5초소가 생기기 전에도 많은 귀신 소동이 있었을 것이다.

 

설득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선임하사를 설득하기 위해 김선호와 정한수 얘기를 동원하지는 않았다.


"귀신을 만나면 뭘 어떻게 할건데?"


"그들을 위로해서 저승으로 보내야 합니다.."


"헐...무슨 니가 법사냐? 퇴마사야?"


"저 아니었으면 전상병의 소총에 몇 명이 죽은 송장으로 변했을지 모릅니다. 선임하사님...며칠만 서겠습니다.

네? 제발 부탁입니다."


"헐..미치겠네. 좋아. 대신 실탄은 소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는 내가 정한다."


"안됩니다. 선임하사님."


"아~~ 씨발 뭔 요구사항이 그렇게 많아? 부대에서 인기스타가 되었다고 아주 나를 개X으로 보는구나."


선임하사는 짜증스러운 듯 모자를 벗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실탄은 소지하지 않아도 되는데 근무지는 5초소, 시간은 자시로 해주십시오."


"자시?"


"밤 11시에서 새벽 1시 말입니다."


"니미럴, 이젠 법사나 퇴마사들이 쓰는 용어로 말하고 있네...근데 두 시간이나 서겠단 말야?"


"네. 어차피 제가 한 시간이라도 더 서면 근무자 돌리기가 더 수월하지 않습니까?"


"니미...내 걱정까지 해주고 있네. 알았어. 대신 딱 3일이다."


"사랑합니다. 선임하사님!!"


나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선임하사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손놔!! 자식아!!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당직 서는 날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다른 선임하사들이 당직 서는 3일간만
 

단초로 서는거다. 그리고 이 얘기는 너만 알고 있어야돼. 근무자들하고 교대할 때는 니 사수가 당직사관하고 같이 있다고 말해.
 

그리고 그럴리는 없겠지만 자살이나 탈영할 생각은 꿈도 꾸지마. 그러면 난 X되는거야"

 

"네. 선임하사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선임하사는 잠시 근무자 명단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그럼...오늘 내가 당직이니까 오늘밤부터 시작한다."
 

 


밤 10시 취침....잠이 오지 않았다. 어차피 11시부터 근무니 10시 반이면 일어나야 한다.


나는 침상에 바로 누운 채 주머니 속의 부적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3일 동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겨낼 수 있을거란 다짐으로 나는 부적을 꼭 움켜쥐었다.


시간이 되었다.

 

나는 복장을 갖추고  교대시간에 맞추어 근무지로 향하였다. 오늘따라 유달리 주변 경관이 음산하게 느껴졌다.


취사장 뒤로 돌아 어둠에 싸인 5초소로 가는 길....한기를 머금은 싸늘한 달빛만이 내가 걷는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아직도 5초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산속 길을 백여미터나 더 걸어야 했다.

 


그 때 잔밥통 주변에 도달한 순간 내 눈에 둘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올가미에 뭐가 걸려들어 몸부림치며 켁켁대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고양이...내가 죽는다면 아마 난 고양이의 저주로 죽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어둠속의 요동치는 형체가 고양일거라고 믿으며 나는 가까이 그 곳에 접근했다.

 

김병장 몰래 고양이를 풀어 줄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근거없는 믿음은 곧 공포로 돌변하였다.


사람이었다. 아니...귀신이었다.

 

어젯밤 잔밥통 앞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던 그 병사였다.


그날 보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땀인지 피인지 모를 검은 액체가 얼굴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손으로 목에 걸린 올가미를 움켜쥔 채, 잔밥통 주변에 떨어진 기름찌꺼기 위에서 연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켁켁!! 켁켁!!"


올가미의 압력에 검은 눈동자가 사라진 하얀 눈알이 곧 튀어나 올듯 부풀어 있었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숨넘어가는 소리와 발버둥 소리를 외면한 채 그의 옆을 지나기 시작했다. 

 

"켁켁!!"


그러나 이내 나는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켁켁..이봐...거기....켁켁..."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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