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국군의 날] 실제상황

이 이야기는 사실을 각색한 이야기며, 본인의 기억에 의존했기에 사실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군기밀과 관련된 상황인만큼 특정 지명이나 인명 등은 기록할 수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부대는 전투지휘검열이라 하여 2년에 한번꼴로 돌아오는 부대 최대 훈련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당시 일병 5호봉이었던 나 역시 각종 물자 등을 준비하고 기존에 가라쳤던 전산 재고 등을 정리하는데 눈코 뜰새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시간은 칼바람만큼보다 더 세차게 흘러, 이윽고 검열관들이 본부에서 내려온다는 소식이 속속들이 들려왔다.

 

부대 공기에는 추위만큼이나 더 고통스러운 긴장감이 묻어나왔고,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이 부대 전체가 고요히 가라앉아있었다.

 

처음 이틀은 별일 없이 지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쿠사리를 먹긴 했지만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항상 있는게 쿠사리였으니 그냥 넘어가자.

 

3일차 저녁 무렵 부대 곳곳에 마련된 초소 안에 배치되어있던 중, LTE가 급박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우리가 설치해둔 바리케이드 옆으로 헌병대장 차량이 미끄러지듯이 스쳐지나갔고 수사반 차량과 부대장 차량 역시 통과했다.

 

LTE를 통해 나오는 말들을 주어담아보니 부대 옆 공항으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차량이 출입하려다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참 별일이 다 있네 하고 무심코 넘겼지만 글쎄 어쩌면 그게 다음날 있었을 사건의 전조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간부들은 항상 큰 사고는 작은 사고에서 시작되고 그게 점점 쌓이다보면 큰 사고가 되기 마련이다며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군생활을 하면서 이 말을 뼈저리게 느끼는 일이 바로 다음날 일어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튿날 아침부터 정신없이 터지는 FTX와 공습대피훈련 등은 정말 입에서 씨발 소리가 멎을 일 없이 휘몰아쳤고

 

점심쯤 벌써부터 기진맥진하여 부대 휴게실에서 간신히 쪽잠을 청하려고 의자에 몸을 기댈 무렵이었다.

 

"실제상황! 실제상황! 영외탄약고 사고발생! 다시 전파한다. 실제상황! 실제상황! 영외탄약고 사고발생!"

 

LTE 소리가 터져나오기 무섭게 친한 하사가 들어와 서둘러 전투장구류를 벗어던지고는 키를 챙겨 뛰쳐나갔다.

 

쉬는 와중에 들려오는 사고 소식에 간부고 선임이고 할 것 없이 전부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얼마 있지 않아 훈련을 중단한다는 부대 알림이 터져나왔고 시끄럽던 LTE 소리 역시 이윽고 잠잠해졌다.

 

사고와는 별개로 우리는 당장은 군장을 벗어던져도 된다는 생각에 희희낙락해져서 맛없는 전투식량마저도 기분 좋게 먹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오후 무렵에 다다랐고, 사고 현장에 다녀온 간부들이 돌아왔다.

 

담배 한대 피자는 이야기와 더불어 무슨 일이냐고 경위를 물어보자 뜻밖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말도 마라. 영외탄약고 언덕 커브길에서 장갑차 뒤집어졌더라."

 

내 기억 속에 그 언덕길은 실제로도 꽤나 가파른 길이어서 1톤 트럭을 몰때에도 조심조심해서 지나가던 그런 곳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곳을 급하게 주행하다보니 선회하는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쏠려서 뒤집힌 것으로 보인다고 간부는 말을 덧붙였다.

 

"그럼 그거 운전하는 병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라는 물음에 간부는 말없이 사고현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보자마자 씨발 소리가 입에서 터져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조종수의 상체 부분이 있으리라 추정되는 부분은 땅바닥에 맞닿아있었다.

 

"지금 저거 함부로 들어올리지도 못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이래저래 대책은 말하지만 군의관 의견도 그렇고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이후 간부들에게 더는 물어보기에도 뭣했기에 그냥 착잡한 심정으로 애꿎은 담배만 태워죽이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사건 당시에도 사람이 죽었네 살았네 갑론을박이 많았고 몇명이 중상이라더라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결국 당일 오후 4시 무렵 조종수는 사망하였고 동승해있던 한 명 역시 중상으로 인해 병원으로 후송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 당시 병사들 역시 그렇지만 현장에 다녀온 간부들의 표정은 정말 착잡해보였다. 하긴,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단순히 몇 인치 안 되는 핸드폰 너머로도 보이는 그 광경도 끔찍하기 그지 없었는데 현장은 어땠겠는가.

 

후속조치로 병사의 부모님들을 모시고 오기 위하여 간부들이 서둘러 키를 챙겨 나갔고 그렇게 훈련은 실제상황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부대에서는 사고장병을 부대장으로 치러주었고 본부에서 나온 수많은 고위 간부들부터 같은 부대 장병들까지 많은 인원들이 조문행렬을 이루었다.

 

장례식이 치뤄지고 얼마 있어 부대 사고현장에는 그를 위한 위령비가 세워졌다. 올해도 부대에서는 그의 기일을 기념할 것이다.

 

미안하네. 잘 가시게.

 

나는 여전히 그 추운 겨울날의 실제상황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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