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괴담/공포 [초스압] 씨발년 2

초등학교시절의 마지막 방학식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못보던 신발들이 보인다. 아버지가 낯선 사람들과 무언가를 의논중이다. 거실 

 

로 들어서자 그들이 나를 바라본다. 아저씨둘과 아줌마 한명. 개량한복을 입은 그들은 저녁까지 먹은 다음 

 

에야 일어섰다. 며칠후 그들이 다시 왔을땐 무척 요란스런 복장이었다. 

 

온 집안에 새끼줄을 치고 거기다가 부적을 매달았다. 집안 구석구석 가져온 부적을 모두 매달자 이번엔 상 

 

을 차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상위에 온갖 과일들이 올라온다. 마지막으로 돼지머리가 올라오자 상차리기가 

 

끝났다. 여자가 방울을 들고 널뛰기를 시작한다. 알아듣지 못할 괴상한 노래와 함께 온 집안을 뛰어 다닌 

 

다. 두명의 남자는 각각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 두꺼운 책을 펼쳐든다. 상바로 앞에서 아버지가 절을 하기 

 

시작한다. 연신 절을 해대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짙은 향냄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굴레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는 아버지가 불쌍해서였을까, 아무튼 내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버 

 

렸다. 그 언젠가 조상 한 분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도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정해진 운명이지만 순순히 

 

항복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낮부터 시작된 굿판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나는 자지 않고 굿판을 지켰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새벽 두시가 되자 껌뻑 졸던 내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촛불들이 격렬하게 흔들리 

 

고 있었고, 그것 중 몇개는 실제로 꺼져버렸다. 무척 생소한 느낌. 거대한 무언가가 집전체를 감싸고 있었 

 

다. 그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굿이 효과가 있는 것인가. 우두커니 서있던 그것이 조금씩 움직인다. 그 

 

리고 아버지의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헉' 

 

끔찍한 두통에 소리를 지를뻔 했다. 뭔가가 서서히 옭죄여 오고 있었다. 원망과 저주..피끓는 감정들이 회 

 

오리 치듯 사방천지로 몰아친다. 때맞춰 그것이 점점 빨리 움직인다. 절름발이 병신처럼 뒤뚱거리며 아버지 

 

주위를 빠르게 빙빙 돈다. 아버지의 안색이 시퍼렇다. 곧 죽을것 처럼 위험해 보인다. 지켜보기만 하는 나 

 

도 이럴진대 당사자인 아버지는 어땠을까. 빙빙 돌던 그것이 갑자기 지랄발광을 해댄다. 온몸을 부르르 떨 

 

며 기괴한 동작을 짓는다. 시퍼런 한. 뿌리깊은 원혼들의 한이 일제히 몰려든다. 세사람도 굿을 멈추고 벌 

 

벌 떨고 있다. 그들도 처음 경험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이만한 원한이 쌓일 수 있을까. 그들 

 

은 짐작도 못할 것이다. 대를 이어올때마다 한이 쌓이고 쌓였다. 남김없이 갈무리된 그것은 깊이를 짐작키 

 

어려울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아버지가 꺽꺽 넘어간다. 아버지의 전신을 그것이 미친듯이 어루만진다. 

 

그러던 한순간, 그것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곤 서서히 얼굴을 아버지에게 가져간다. 

 

'안돼' 

 

아버지가 보았다던 할아버지의 최후가 떠올랐다. 

 

"스윽" 

 

그것이 손을 뻗어 이마로 가져간다. 죽을 것 같다. 무서워서 죽을 것 같다. 그 옛날에 아버지는 기절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모든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천천히 머리카락을 치운다. 양쪽으로 

 

머리카락이 갈라진다. 일순간 머리카락이 확 제쳐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아니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끝이었지만 내게는 시작인 셈이다. 아버지는 예상과는 달리 

 

제법 평안한 표정으로 숨을 거두었다. 죽는것이 차라리 편했던 것일까. 죽어서야 비로소 벗어났다고 기뻐 

 

했던 것일까. 사람들로 붐비는 장례식장에서 골똘히 생각해본다. 밝은 대낮에, 형광등까지 모조리 켜져 있 

 

고 수십명의 사람들까지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한쪽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아버지가 아닌 나를 향한채...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은 언제나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중학교 2학년, 유달리 햇살이 밝았던 날로 기억한다. 너나할것 없이 왁자지껄한 점심시간무렵, 열린 창문 

 

사이로 고양이 한마리가 들어왔다. 새까만 도둑고양이.. 

 

"우와" 

 

아이들이 감탄성을 내지르며 고양이에게 몰려들었다. 여긴 3층인데 저놈이 어떻게 들어왔을까. 고양이는 아 

 

이들이 주는 음식을 거부도 안하고 받아 먹었다. 

 

어딜가나 악동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들이 뒤편에서 쑥덕거리고 있었다. 잠시 일어섰다 다 

 

시 앉았을때 뭔가 물컹했다. 소름돋는 느낌과 함께 벌떡 일어섰다. 

 

"하하하" 

 

"와하하" 

 

아이들이 죽는다고 웃어댔다. 

 

"캬아" 

 

설상가상으로 고양이가 달려들었다. 발톱으로 손등을 할퀴었다. 순식간에 뻘건줄이 죽죽 그였다. 도망가 

 

는 내게 고양이가 힘껏 점프했다. 눈앞에 시커먼게 달라붙자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 

 

로 미친듯이 고양이를 가격했다. 

 

"털썩" 

 

축 늘어진 고양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죽은게 아니었다.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샤프로 놈을 힘껏 찔렀다. 

 

"키아오"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푹.푹.푹" 

 

수십번도 넘게 찔렀다. 그래도 놈은 죽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필통을 뒤졌다. 커터칼이 보이자 냉큼 손에 

 

쥐었다. 

 

"드르륵" 

 

칼날을 거칠게 빼고는 미친듯이 놈을 베어나갔다. 뜨끈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기이한 집중력에 사로잡힌 나는 놈의 해체 외에는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살을 가르고 내장을 헤집었다. 

 

입을 강제로 벌리고 목구멍 깊숙히 칼을 쑤셔 박았다. 나를 할퀸 앞발을 잘라내기 위해 반대쪽 손으로 그것 

 

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슥삭슥삭" 

 

격렬한 왕복운동에도 발은 쉽게 잘리지 않았다. 조그만 커터날이 뼈에서 더이상 들어가지지 않았다. 칼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발을 덥썩 물었다. 어금니를 사용해 힘껏 씹었다. 무서운 정적속에 와드득 와드득 

 

뼈씹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마침내 놈의 발을 몸통에서 분리시키는데 성공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솟았다. 그것은 혈관을 따라 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거칠것이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가슴을 확장시켰다. 그것은 거대한 자신감이었다. 거만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벌 떠는 아 

 

이들..아무도 자신만만한 내눈을 감당하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처럼 사물함 한켠에 

 

서 있었다. 애써 외면하며 언제나 피했던 그것.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을 보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소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가까이 가자 그것이 저만치 물러난다. 엉거주춤 물러서는 그모습이 처량해 보 

 

인다. 짐짓 눈을 부라려 준 다음에 돌아섰다. 만족감에 어깨가 으쓱거린다. 

 

"씨발년이 뒤질라고" 

 

 

 

 

 

 

의대에 진학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남들보다 빠르게 의대에 입학했다. 머리가 좋아 

 

서도 공부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의대를 간 것은 어떤 절박감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버튼 

 

하나로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었다. 피가 튀고 살이 터져야 만족했다. 산 생명을 조각조각 해체할때 

 

의 느낌을 원한다. 비록 더러운 살인자의 유전자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때문에 숨통 

 

이 트이고 살아갈 힘을 얻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적이 있다. 선서를 하면서 속으로 

 

비웃었다. 겉은 그럴싸 하지만 실상은 살인면허증이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한 생명을 죽여도 합법적이다. 

 

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아기가 작으면 흡입기로 빨아낸다. 아기가 조금 더 큰 경우는 조각조각 잘라서 긁 

 

어 낸다. 사정의 여의치 않으면 다른 방법도 있다. 양수를 빼내고 소금물을 집어넣는 것이다. 아기가 소금 

 

물에 서서히 쩔어간다. 그 과정이 아기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온몸의 수분을 토해낸 채 

 

시커멓게 말라 죽는다. 그러면 그것을 쏙 빨아내면 끝난다. 아기를 죽이고 나면 그들은 돈을 준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도 꼭 잊지 않는다. 처음 낙태 실습을 하던 날 동기들의 과반수 이상이 먹은 것을 게워냈다. 

 

게중에 서넛은 기절까지 했다. 세상에 쪽팔리지도 않는가. 어떻게 의사가 될 놈들이 기절까지 하냔 말이다. 

 

묘한 기대감에 양손을 세차게 비볐다. 십 년 차 전문의는 기계적인 말투로 설명을 해가며 시범을 보였다. 

 

"처음에는 잘 안 잘려요, 게다가 꽤 미끄럽기도 하구요" 

 

전문의의 인상이 실제로 구겨졌다. 

 

"하, 이거 잘 안 잡히네." 

 

모두가 충격속에 시술 장면을 지켜보았다. 

 

"잡았다" 

 

전문의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싱그러운 미소다. 잘 정리된 치열이 꽤 지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말에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잡고나서도 안심하면 안돼요, 가끔 힘이 장사인 놈들이 있거든요" 

 

그의 농담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는 그의 유머감각을 칭찬했다. 

 

'그러면 지금 장래에 천하장사 한명을 죽이는 거잖아 크하핫' 

 

"자르실때 절대 놀라서는 안됩니다, 가끔 아기가 발작하는거에 놀라는 분도 있는데 그럼 큰일나요, 산모가 

 

다칠수도 있거든요, 가위로 자궁을 찌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산모가 아프겠어요" 

 

그는 아기를 수십조각으로 자른 뒤에 뽑아냈다. 아마 설명해 준다고 더 잘게 잘랐을 것이다. 

 

"아무튼 평소에 가위날 잘 갈아 두시구요, 그럼 됩니다" 

 

그가 씻지도 않은 손을 우리에게 내민채 마지막 강의를 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지고 토악질을 해댔다. 

 

역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물러섰다. 

 

'옥의 티로군' 

 

너무도 유익한 수업이었다. 그 시간 만큼은 그것이 옆에 있든 말든 신경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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