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 미겔 스트리트를 읽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전후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그리고 슬프게 담은 미겔 스트리트를 읽었다.

 

재미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할 것이고, 어땠냐고 묻는다면 덤덤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었다.

 

오랜 식민지 생활을 겪으며 모든 것이 무너진 국가의 무의지적 삶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그 안에서 보편적 인간의 유대와 감정을 보유하였기에 따스한 이야기였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다.

 

스스로 의지를 갖고 있으나, 그 모든 방향들은 엇나가 있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도덕은 무너져있다.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어길 수 없는 사람을 비판한다. 

 

이는 과거 내가 어린 시절 부모님 세대에게서 들어왔던, 그리고 이따금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께서 하시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 뇌물과 그 대가의 교환을 비판하는 것은, 뇌물을 줄 형편이 없는 사람들의 넋두리이다-

 

 

일상적인 아내와 아이에 대한 폭력,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정,

 

엇나간 로망, 8명의 아이를 7명의 아버지에게서 얻은 여자, 그러나 그 여자의 큰 딸이 자식을 낳자 좌절해버리는 그 엄마.

 

하루 종일 바닥에 글을 쓰는 남자, 사랑한 여성과의 기억을 안고 죽어버리는 남자, 그리고 그를 바보 취급하는 사람들.

 

그 중 가장 트리니다드 토바고스러운 사람은 '해트'인데,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는,

 

무의미한 재미를 넘나들며 (도박, 크리켓, 잡담),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비판한다.

 

 

위에서 참담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야기 자체는 읽기 편하다.

 

이건 작가와 역자의 재주가 아닐까 싶다.

 

전혀 진지해보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보이지 않고, 그냥 재미가 있게 쓰여진 글인데,

 

이를 통해 그는 이 현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할지 재미로 받아들여야할지를 섞어버린다.

 

그게 작가가 바라본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현실이다.

 

다만, 이 소설의 작가가 너무 고국에 대해 비판적으로 썼기에, 그리고 정작 그는 고국을 떠나 영국에서 이 소설을 썼기에,

 

그가 이 국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조금의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처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유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 미겔 스트리트에서는 누구도 굶어죽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우리의 과거 현실과 같은 느낌을 보여준다.

 

부패, 타락, 비도덕이 만연하였지만, 인간의 관계가 남아있었던 그 현실.

 

과거, 부정 부패가 당연한 것인줄 알면서도,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심이었던 그 아이러니했던 과거가 떠올라,

 

이 소설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럽고, 감정적이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일주일동안 조금씩 읽었는데, 하루 날을 잡고 전체를 한번에 읽어내렸다면 더 크게 와닿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