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문명 조선 시대 노비 톡 보고 설명 들어간다

이 글 보고 생각나서 쓴다.

https://www.chuggu.net/politics/120583110

 

1.

 

조선 시대 호적과 인구에 관련해서는

이미 방대한 연구들이 쌓여있다.

 

그런데 그걸 다 섭렵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조선 시대 호적 작성, 인구조사에 관해서는 다음 책들 정도가 좋은 가이드북일 듯.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7.

손병규, 《국가의 인구 관리, 옛날과 오늘》, 은행나무, 2020.

 

경상도 일부 지역 호적은 엑셀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있다.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에서 다년간 사업으로 만들어놓았다.

 

https://skb.skku.edu/ddmh/db/intro.do

 

2.

 

호적 작성은 센서스라고 불리는 근대 인구조사와 다르다.

"존재하는 인구를 모두 잡아낸다"가 센서스의 목표라면,

조선뿐 아니라 전근대 국가들의 호적 작성은 대체로 "필요한 인구를 잡아낸다" 쪽에 가깝다.

 

그러므로 인구 누락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현존 호적을 기준으로 연령별 피라미드 만들면 괴상한 구조 나온다는 건 너무 잘 알려져있다.

 

호적은 어쨌든 세금과 군역에 관련된 자료이다 보니

그걸 그 동네에서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에 따라

등재되는 인구가 여러 방식으로 조정되곤 한다.

 

이걸 문제시하는 논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뭘 바꾸지는 않았다.

당연하다, 중요한 게 다르거든.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물론 실제 국가행정은 호적만 갖고 돌아가지 않았다.

지방 현장에서는 다양한 자료 혹은 휴민트가 있었다.

 

3.

 

당연히 조선 시대 인구 관련 연구를 할 때는

현존하는 호적을 어떻게든 보정해서 쓴다.

물론 순수하게 인구학 자료로 쓰기는 어렵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정하든 노비 인구에 관해서는 결론이 비슷하다.

노비 인구가 가장 많았을 때 전 인구의 30-40%에 이르렀다는 건

제임스 팔레, 이영훈 같은 한국사 연구에서 다소 특이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조선 시대 호적을 가공하고 데이터베이스까지 만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물론 더 세세하게 파고 들기는 어렵다.

자료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최대치 정도만 이야기할 뿐이다.

 

4.

 

이영훈 교수가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로 도발적 논의를 제기했지만

사실 그 책에서 세종 비판하겠다고 들이민 내용들은 본인의 이전 연구에 대한 부정에 가깝다.

 

(지금이야 학자도 아닌 선동가처럼 취급되고 있지만

이영훈 교수는 조선 시대 사회경제사 연구에 관해서는

2000년대 전반까지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만한 거장이었다.)

 

자기 부정을 하는 것이야 본인 자유.

그런 수준은 아니어도 자기 학설이 틀렸다 싶으면 수정하는 것은 좋은 일.

하지만 부정을 하건 수정을 하건 그걸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면 수상한 일.

 

그래서 그 책에 대해서는 상세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5.

 

한국사 속 노비 인구의 폭증 기점이 언제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는데,

일단 고려 시대까지 노비 자체에 의존하는 경영의 비중이 크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그렇다고 고려 시대가 낭만적인 사회라는 건 아니고...

그때는 특정 촌락을 통째로 차별하거나 호족의 지배력이 강했던 시기라서 그랬을 뿐이다.

 

노비 폭증에는 여러 이유와 계기가 있을 수 있는데, 다음 두 가지가 결정적이지 싶다.

1) 양인과 천인의 혼인에 따라 나온 자녀를 개인 재산으로 만들 가능성이 열림

2) 양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세금과 군역을 피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으려 함

 

내가 노비 문제를 직접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서

괜히 선입견 심고 싶지 않으니까 확실한 결론은 안 내린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게 두 가지다.

1) 노비 증가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 것은 국가이다.

2) 노비 증가에 책임 있는 주체 중 하나가 국가이다.

 

 

끝.

댓글 36

best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1:45
사실 노비라고 부르지만 않을 뿐이지
비슷한 존재는 계속 있었고 지금도 그럴지도
best 윈터 2024.09.20. 01:44
해방되니 그집에서 일해주는사람으로 칭호가 바뀌었다고
best 모모의꿈 2024.09.20. 01:52
실제로 노비가 사라진건 6.25 이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음
윈터 2024.09.20. 01:43
우리 할아버지 살아계실적에 집에 밭일해주는 노비가 60명이였거늘 떼이잉
댓글
윈터 2024.09.20. 01:44
 고독한아길이
아마 둘다 있었겠죠
댓글
best 윈터 2024.09.20. 01:44
해방되니 그집에서 일해주는사람으로 칭호가 바뀌었다고
댓글
best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1:45
 윈터
사실 노비라고 부르지만 않을 뿐이지
비슷한 존재는 계속 있었고 지금도 그럴지도
댓글
윈터 2024.09.20. 01:47
 고독한아길이
취업하면 사노비,공무원 붙으면 공노비,
자영업은 백정 수공업자
경찰은 포졸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댓글
best 모모의꿈 2024.09.20. 01:52
 윈터
실제로 노비가 사라진건 6.25 이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음
댓글
윈터 2024.09.20. 01:53
 모모의꿈
그럴수도....
할아버지 살아계실때 노비가 집에 많았다니깐
댓글
일관성 2024.09.20. 09:09
 모모의꿈
일제강점기때만 해도 노비출신들이 갈 곳 없으니까 그냥 원래 살던 집에서 돈 받고 일하는 머슴으로 그대로 산 경우가 많았으니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누가 어떤 출신인지 다 알아서 신분으로 차별하는 경우도 많았고

6.25때 그 마을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섞이는 과정에서 누가 어떤 출신인지 불분명하게 바뀌면서 신분제가 완전히 혁파됐다는 의견이 있음
댓글
모모의꿈 2024.09.20. 01:49
노비 증가를 국가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시대별로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1:52
 모모의꿈
일단 조선에서는 노비 인구 증가를 우려했지만
노비 인구 감소는 국가적 정책에 의해서가 아니라
결국 인구압 증대에 따른 차지경쟁 강화 때문에 이뤄진 게 컸지

고려도 말기에 가서야 노비가 획기적 문제로 인식된 것 같은데
그건 몽골 제국 치하에서 다들 자기 기반으로 사적 예속민 늘리니까 그런 게 컸을 테지

더 이전으로 가면... 뭐 노비 인구 자체가 적으니까 논외지
댓글
모모의꿈 2024.09.20. 01:58
 고독한아길이
조선을 사실상 노예제 사회라고 부르는건 어캐 생각함?

정갤에 이전에 쓴 적 있지만 노예제 사회라는 표현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함.

다만 노예와 노비에 차이점을 두고 세세하게 분류하려 하는 게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음.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2:01
 모모의꿈
단서를 달면 그렇게 불러도 이상할 건 없다고 봄

그런데 한국사 연구자들이 국제 학술대회에 발표하러 가면서 노비를 slave라고 번역해갔더니
정작 해외 학자들은 그거 slave 아니라고 했다는 걸 보면 팔레의 주장이 널리 설득력 있는 건 아닌 듯

노예와 노비의 차이를 예민하게 포착했던 게 이영훈의 초기 연구였지
그 날카로우면서도 신중했던 연구자다움을 잃어버린 건 두고두고 아쉬움
댓글
일관성 2024.09.20. 09:11
 고독한아길이
slave보단 좀 더 넓은 범위인 것 같은게
솔거노비는 slave 맞는 것 같지만, 외거노비는 serf에 가까운 것 같음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9:49
 일관성
솔노비도 노예(slave)로 보기 어려움. 그리고 솔노비와 외거노비는 주거 형태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호적상 주인 호에 등재되는지 아닌지로 구분.

복무 형태로 따진다면 앙역노비/입역노비/사환노비와 납공노비라는 두 종류로 구별하는 게 맞음. 앙역노비는 노예, 납공노비는 농노(serf)에 가깝다는 건 이미 이영훈 교수가 25년도 더 넘는 옛날에 잘 지적하기도 했지. 아 옛날이여~
댓글
모모의꿈 2024.09.20. 02:00
 고독한아길이
조선의 관료들은 노비를 축적하는걸 원하고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조선이 노비 증가를 우려했다는건 좀 편향적인 표현이 아닌지?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2:02
 모모의꿈
그 관료들 입에서 "천인이 많고 양인이 적다"는 우려가 나온 것도 사실이니까
어쨌든 세금과 군역을 정규적으로 부담해야 할 인원이 적은 건 국가 입장에서는 곤란하지

그렇다고 국가가 정말 자비로웠다고 할 생각은 없음
나는 노비제 폭증에 대해 국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다만 해놓고 보니 그런 문제가 생긴 것마저 무시하지 않았다는 건 짚을 필요가 있다고 봄
댓글
모모의꿈 2024.09.20. 02:05
 고독한아길이
노비해방을 자비로움과 연결 할 필요는 없겠지. 공노비 해방이 이루어진 것도 세도정치시기였으니 뭐...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2:09
 모모의꿈
국가든 양반이든 "지배하는 자에게 무엇이 필요한가/유리한가"를 생각하면서 노비제를 풀어내면 재미질 텐데
이건 노비 자체만 봐서는 절대 안 되고 재정, 세제, 농업생산, 정치 등을 종합 고려해야 하는 난제이기도 하지

문제는 재정, 세제, 농업생산, 정치에 대해서도 지금 해석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 것
아마 이 부분에 대해 획기적 논의가 나오려면 10년 정도는 기다려야 하지 싶음
댓글
모모의꿈 2024.09.20. 02:11
 고독한아길이
조선시대 농업생산은 토지의 생산력이 좆 박았다는것 말고는 잘 몰루겠어요~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2:13
 모모의꿈
생산력이 일정 수준에 머물러있었던 건 맞음

하지만 토지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을 비교하자면
노동생산성을 희생해서 토지생산성을 높인 것이 조선 시대 농업의 특징

말이 어려워서 그런데 번역하면 매우 간단함
그냥 사람을 더 열심히 갈아넣어서 한정된 땅에서 더 많이 뽑아내는 방식
댓글
모모의꿈 2024.09.20. 02:14
 고독한아길이
사람 갈아서 생산력 높이는건 유구한 즈언통...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2:16
 모모의꿈
나는 그래서 전통이 어쩌고 하면서 인본주의니 인간 중심이니 하는 말들 안 믿음
나쁜 건 다 일제 때문에 시작됐다는 주장은 집어치우고 과거를 냉정히 볼 필요가 있음
댓글
모모의꿈 2024.09.20. 02:18
 고독한아길이
나쁜건 다 조선 때문이다 VS 나쁜건 다 일제 때문이다

현대 한국인들의 인식.
댓글
일관성 2024.09.20. 09:14
 고독한아길이
강화도나 충청도 전라도쪽 적극적인 간척으로 평야 넓히기+산간지대 개간으로 농경면적 넓히기+시비법 도입하고, 수리시설 확충한 이후엔 모내기를 통한 이모작으로 생산량 늘리기

그래서 병자호란때 강화도 함락된 이유도 간척을 너무 많이 해서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바다가 그냥 평범한 강 수준으로 직강하돼버려서...

이렇게 해도 기록보니까 세종시대 생산효율이 현대의 1/6이더라...

명청왕조는 장강 유역의 수량 풍부하고, 평탄해서 수운도 편한 거대한 평야지대를 가지고 딸깍하는데 우리는 산간지대 땅에서 어떻게든 사람 갈아서 농산물을 뽑아내야했던...
게다가 수량도 불규칙적이고 경사도 가파라서 수운에 적합하지도 않으니 이래서 조선왕조가 상업을 억압한게 아닌가 싶음.
온백성이 농업에 투입돼서 인력 갈아넣어야 먹고 살만한 생산량이 겨우 나오는 환경이고, 수운으로 장사하기 좋은 환경도 아니니...
중국은 장강과 수많은 호수, 연결된 지류와 대운하를 활용한 거미줄같은 수운망을 활용해서 장사하는게 가능했음 ㅋㅋㅋ 심지어 장강 수운은 지금도 활용됨 ㅋㅋㅋ
우한까지 5000톤급, 충칭까지 3000톤급 컨테이너선이 드갈 수 있음.

그래서 전근대시기 중국을 거의 현대의 미국 이상의 슈퍼파워로 분류한 것 같음.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9:47
 일관성
전근대 한국은 정말 살기 힘들었던 동네라고 생각. 기후대는 하나, 사계절은 보기에는 좋아도 살기에는 불지옥, 기술로 극복해야 되는데 절대빈곤 타파할 정도로 가능하게 되는 건 근대에 와서나 가능...

사람들이 강퍅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음
댓글
일관성 2024.09.20. 10:52
 고독한아길이
쓰촨 사람들이 여유롭고 느긋한 이유가 지진만 빼면 혹한도 딱히 없고, 태풍도 안불고, 북방의 먼지도 산맥이 막아줘서 공기가 좋음. 습한 기후가 이어져서 벼농사도 잘되는 데다가 도강언 공사 이후 민강 치수도 잘돼서 큰 가뭄이 없었음. 티벳고원의 눈이 녹아서 봄에 홍수나면 도강언이 그 물을 분산시켜서 사천분지로 골고루 뿌려주고, 물이 부족하면 도강언으로 분산시켜놓은 물을 사용해서 농사지음. 그러니 민물고기와 농산물, 돼지고기가 풍족해서 음식문화가 발달함. 게다가 각종 전란때 거대한 산맥때문에 항상 후방이였음. 심지어 중일전쟁때조차 충칭정도만 폭격당했지 쓰촨분지는 거대한 산맥때문에 딱히 피해가 없었으니 사람들이 엄청 느긋하더라

실제로 중국에서 가장 여유롭고, 나중에 살고싶다 생각이 드는 동네는 쓰촨이였음 ㅋㅋㅋ
사람들이 느긋하고 여유로움. 더운 낮에 아저씨들은 웃통 벗고, 아지매들은 담배 물고 모여서 푼돈 걸면서 마작하고 차 마시는게 일상이더라.
지하철에서도 베이징같은 동네는 자기가 먼저 들어갈라고 밀고 들어가는데 청두는 느긋하게 기다리더라 ㅋㅋㅋ
댓글
키리후지나기사 2024.09.20. 01:55
얉은 지식이지만 조선후기 노비 폭증은 삼정의 문란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해요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1:59
 키리후지나기사
삼정 문란은 흔히 19세기 갖고 하는 말인데 그때는 노비 인구 감소기임
노비 인구는 17세기에 정점 찍고 쭉 하강 국면에 있었음

그건 인권의식이 발달해서가 아니라
인구 증가로 농지 얻으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고비용 저효율의 노비제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리 된 측면이 큼
댓글
키리후지나기사 2024.09.20. 02:18
 키리후지나기사
아 그래서 17세기에 균역법 대동법 등장한게 노비 비율 정점찍은거랑 엮어지는건가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2:21
 키리후지나기사
조금 다른 각도이기는 한데 이 부분은 양인 생계 대책이니 관계가 있기는 하지
참고로 균역법은 1750년에 공포됐기 때문에 18세기의 제도임
댓글
일관성 2024.09.20. 09:15
 키리후지나기사
노비는 18~19세기에는 개떡락했음. 오히려 그 시기는 양반이 많은 역피라미드가 문제였던 시기
양반이 너무 많아지니까 군역과 조세를 납부할 양인 숫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노비들을 양인으로 만들려 노력함
댓글
고독한아길이 작성자 2024.09.20. 09:45
 일관성
양반 많아지지 않음. 역피라미드는 더더욱 어불성설. 그건 호적에 올라온 유학 직역을 모두 양반으로 동일시해서 벌어진 일. 유학 직역이 양반을 의미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특히 19세기에 들어가면 그렇지 않음.

다만 양인 확보가 언제나 화두였던 건 맞음. 그리고 유학 직역이 늘어나는 것도 양인까지 유학 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기존과 다른 세제로 수취하려 드는 과정에서 벌어진 현상.
댓글
일관성 2024.09.20. 10:53
 고독한아길이
아하...
전에 양반이 많아졌다는 기록을 잘못 해석했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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