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하루키 월드의 시작, 하루키의 문학적 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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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명 작가의 첫작품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일이 많다.

 

최은영 작가를 좋아하면서도, '쇼코의 미소'를 가장 늦게 읽었으며, 나쓰메 소세키와 조지 오웰을 좋아하면서도 그의 첫 작품을 읽지 않았다. 오정희 작가의 완구점 여인도, 가장 늦게 읽었다.

 

모두 같은 이유인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어설펐던 과거를 마주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내용적으로는 좋지만, 첫 작품들을 보면 대개 그 문장 혹은 구조의 덜 다듬어진 부분들이 와닿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게 싫다.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아마, 얼마 전 읽었던 가라타니 고진의 책에서 언급되지 않았다면 영원히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하루키의 책을 하나도 읽지 않은 사람이 읽는다면 굉장히 피상적으로 읽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하루키는 이후의 작품에서 보여줄 자신의 모든 개념을 제시한다.

 

이 소설의 '쥐'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쥐'의 일반적 속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의 묘사는 나열 그 이상도 아니다.

 

그가 제시하는 숫자들은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들이다. 

 

그렇게 그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문학적 테제를 제시한다.

 

 

그러면서도 이 안의 내용들은 충분히 상호작용하는데, 

 

하루키가 처음에 이야기하는 소설을 쓰는데 필요한 '잣대'와 화성에서 사람이 듣는 바람의 소리, 그리고 죽은 여자친구와 들은 바람 소리, 소설의 '그녀'와 듣느 바람은 모두 상호 관계한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는 '죽음'의 개념도 여기서 분명히 제시되는데,

 

결국은 마주할 것이며, 이를 피하려는 사람에게는 손쉽게, 다만 다가가는 사람에게는 조금 어렵게 마주할 뿐이다.

 

결국 하루키는 소설을 통해 주변의 소리, 시간의 간극을 조금 다르게 마주하게 해준다.

 

이 것이 하루키 월드의 시작이자, 그가 주장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섹스는 통째로 들어내도 된다.

 

다만, 왜 섹스를 집어넣었냐고 묻는다면, 그저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면과 그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기에 알몸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에.

 

그의 섹스는 묘사로 보면 될 일이다.

 

 

문장이 조금씩 어설퍼보이긴한다.

 

하지만, 분명히 이 소설에서 하루키는 시작했고, 그래서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하루키의 허무 (이따금 평론가들은 '젊은 시절의 편린'이라고 표현하던데)는 이 책에서 상대적으로 얕다.

 

아마도 그의 문장이 덜 다듬어 졌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강하게 표현하지 못한게 아닐까.

 

이 다음 작품인 1973년의 핀볼에서는 아주 강하게 그런 젊은 시절의 허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싫다. 다만 읽는 맛은 확실히 이런 부분이 좋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강하게 흐려놓는데 천재적 소질이 있는 것 같다.

 

 

 

하루키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설 5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노르웨이 숲, 1973년의 핀볼, 애프터 다크, 해변의 카프카)와 여행 에세이 한권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거죠)를 읽었다.

 

시인 서정주를 싫어하지만 그의 시집을 두권 정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서정주 쪽이 훨씬 더 싫다.)

 

그냥 읽는 맛이 있고, 읽으면서 들어오는 생각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대로 읽으면 그대로 좋다. 그래서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땐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려한다.

 

하지만, 이 책은 초기작이라 그런지, 좀 더 명확하고 덜 다듬어진 문장으로 자신의 세계를 펼쳐놓았다.

 

이게 과연 소설일까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어쩌다 보니,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 가장 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쓰게 되었는데,

 

솔직히, 하루키 초기 입문작으로 이 책을 읽기보단, 다른 책들을 읽은 뒤, 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읽기에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나처럼 그 재미를 몇배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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