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글챌린지 이스라엘 대학을 과연 보이콧해야 하는가? - 박노자

최근에 노르웨이 학계에서 이스라엘 대학을 보이콧하자는 운동은 계속 확산돼 나갑니다. 급진적 사회 운동들이 늘 그렇듯이, 박사과정생 등 학계의 주니어 구성원들이 대개 앞장섭니다. 저희 학과에서도 이스라엘 대학들과의 모든 공식적 관계를 끊자는 호소문이 지금 돌고 있으며,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벌이는 지노사이드적 행각을 생각하면, 놀라울 일도 아닐 겁니다. 이 지노사이드적 행각에 놀란 노르웨이 주민의 절반 정도는 아예 이스라엘에 대한 전반적인 보이콧이 필요하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사회주의좌파당 등 좌파 정당들이 관련 발의를 한 바 있어 이미 입법 운동까지 벌어지는 거죠. 그런 판에 이스라엘 학계/대학에 대한 보이콧이 거론된다는 게 아마도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예전에도 이스라엘이 가자를 폭격했을 따마다 이 문제가 거론되곤 했으며, 저희 학교 총학이 보이콧을 해야 한다는 결의도 몇년 전에 이미 한 바 있었는데, 총학생회 결의 사항을 대학 당국이 이행할 의무까지 없습니다. 참고 사항이 되는 거죠. 전 그 때도 지금도 이런 발의를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사실 이스라엘과의 무역 관계를 최소화시키고, 특히 이스라엘 군수 기업들을 보이콧하는 게 전 당연히 필요한 조치라고 봅니다. 그건 그렇지만 전 보이콧을 해도 학계/대학이 예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에서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립니다.

첫째, 대학은 대개 그 사회의 영향을 받게 돼 있지만, 늘 나름의 "특수성"도 보유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왜 한국에서는 1980-90년대에 "대학생"과 "데모"는 종종 하나로 연결된 단어이었을까요? 고3까지 부모/학교는 학생에 대한 아주 철저한 통제를 합니다. 그리고 입사하고 나면 대개는 데모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정상적으로 대화할 시간조차도 갖기가 힘들 정도로 매일매일 "파김치" 되어서 집에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교 졸업과 입사 사이의 그 얼마 안되는 "대학 다니는 사이"에 유일하게 모종의 "자유"를 만져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반 사회와 다르게 대학에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즉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갖춘 교수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의 대학에는 강만길이나 안병무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 때 사회 운동의 판도 좀 달랐을 겁니다. 이스라엘 대학가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회 전체에 비해서는 훨씬 개방적입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앞장서는 일란 파페 같은 아스라엘계 사학자는 지금 영국에서 교편을 잡고 있지만, 본래 이스라엘, 하이파대 교수 출신입니다. 파페는 이스라엘의 소위 "신역사가" 중의 한 명인데, 정통 시온주의의 도그마에 정면으로 도전한 "신역사가"들의 책들이야말로 나크바 등 팔레스타인인의 추방, 억압, 배제의 근원을 밝히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겁니다. 대부분의 "신역사가"나 그 제자들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보이콧을 할 경우 그들과 같은 팔레스타인인의 연대 세력들도 그 피해를 같이 받게 될 겁니다.

둘째, 대학/학계는 "국가적인" 과제만을 담당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국가적인" 과제, 즉 예컨대 무기 생산 등과 관련이 있는 학과라면, 아마 보이콧을 해도 무방할 겁니다. 한데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인류 역사를 복원해야 하는 고고학부터 인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기후 변화 연구까지 다 하는 것이죠. 예컨대 지금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유럽 연합이 러시아 대학과의 교류의 정지를 모든 유럽 대학에 명령했는데, 상당한 타격을 받은 부문은 바로 기후 변화 연구입니다. 러시아는 동토 연구, 그리고 기후 온난화로 인한 동토의 해동 과정에서 누수되는 메탄의 유출 문제 연구의 중심지입니다. 러시아 과학자들과의 협력을 하지 않으면 시베리아에서의 현지 조사 등을 포함한 해당 연구를 사실 거의 할 수 없는데, 지금 러시아 대학에 대한 보이콧은 그런, 지구의 미래를 위해 생명적으로 필요한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죠. 러시아 연구자들의 85%나 푸틴의 전쟁을 반대한다는 사실까지 생각해보면 이런 보이콧의 적절성에 대한 상당한 의문들이 제기됩니다. 네타냐후도 푸틴도 재판 받아야 할 범죄자임에 틀림 없습니다. 러시아도 이스라엘도 극도로 군사화돼 있는, 전쟁 없이 거의 존재하기 어려운 "전쟁 국가"입니다. 그것은 사실이고 러시아나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대해 그 어떤 환상도 가져서는 안되지만, 학술 연구는 어느 정도 정치 영역과 분리돼야 하지 않을까요?

셋째, 보이콧은 바로 학생과 연구자들의 "기동성"을 박탈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이콧할 경우 저희 학교가 이스라엘의 그 어느 대학과도 학생 교환 협정을 체결할 수 없게 되고, 이미 체결된 협정의 효력은 정지됩니다. 지금 러시아 대학과의 관계도 이처럼 정지된 상태에 있는 것이죠. 그러면, 과연 러시아 대학과의 학생 교류 정지는 푸틴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위한 투쟁에 도움이 됐을까요? 만약 러시아 학생들이 예전처럼 오슬로에 올 수 있었다면 그들은 여기에서 푸틴의 침략을 비판하고 푸틴의 전쟁 국가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많은 문건을 자유로이 접할 수 있었을 것이고, 전쟁 피해자인 우크라이나 난민들도 만나 그 사정을 직접 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나아가 여기에 있으면서 재외 재야 운동과의 연결할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재외 반독재 운동을 접하고 나서 본인들도 "운동가"로 자랄 수 있었을 겁니다. 한데 지금 러시아와의 모든 교류의 중지는 그들을 사실 러시아라는 군사주의적 정신병동에 그대로 가두어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교환 학생들이 여기에 올 경우, 그들이 오슬로에서 매주 일어나는 팔레스타인인 인권 옹호 시위라도 보고 노르웨이 사회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담론을 접했다면, 이는 과연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에 도움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스라엘 대학생의 약 18%는 아랍계인데, 피억압 민족인 그들의 기동성까지 박탈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스라엘은 국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만한 지노사이드 행각을 벌이는 범죄 국가입니다. 그 현실을 당연히 직시해야 하죠. 한데 그 "국가"의 성격이 여하한가와 무관하게, 만국의 연구자, 학생들의 "국제 교류의 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국가들이 뭘 어떻게 해도, 국가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연구자 사이에서의 "대화"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늘 "대화"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대화"에의 의지 등은 "연구자 사회"의 존재 조건이며 본질입니다. 그럴 일이 아마도 없겠지만, 설령 노르웨이와 이스라엘이 단교를 해도, 이스라엘 연구자들과의 대화를 계속 해 나가야 합니다. 그건 저의 굳은 신념이지만, 요즘처럼 "감정"이 주도하는 분위기에서는 제가 제 동료들에게 어디까지 "설득"할 수 있을는지 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출처] 이스라엘 대학을 과연 보이콧해야 하는가?|작성자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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