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글챌린지 < 저자(author)의 사라짐, 그리고 "올바른 교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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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1. 한 권의 책이 공적 세상에 나오면, 그 책의 저자는 사라진다. 
롤랑 바르트 ( Roland Barthes)는 그의 "저자의 죽음 (The Death of the Author)"라는 유명한 글에서 '죽음'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사라짐(disappearance)'이라고 표현한다. 책이 출판되어 공적 공간에 나타나자마자, 그 책의 저자는 한 명의 독자가 될 뿐이다. 즉 저자가 자신의 책이 지닌 의미부여나 해석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성이나 담으려 하는 의미들에 대하여는 다른 여타의 독자들처럼, 저자는 자기 생각을 '하나의 의견'으로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입장에 모든 이들이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본래의도'나 또는 저자가 부여하는 '의미의 절대성'을 믿고 있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그 입장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2. 제이 맥도널드 (Jay McDonald)라는 과정철학을 하는 교수가, 내게 자신이 쓴 블로그를 보내왔다. 나의 책을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에서 교재로 쓰고자 하는데 학기 중에 스카이프로 학생들과 화상대화를 해 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연락한다고 한다. "Jesus Jazz and Buddhism"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이름의 블로그에 쓴 나의 책에 대한 소개를 보면서, 나는 '저자의 사라짐'이 여러 가지 점에서 흥미롭고 즐겁기까지 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경험한다. 이 블로그에서 표현되는 책의 의미나 저자에 대한 이해는 새로운 층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3. 학생들이 간혹 나의 책과 글에서 자신들이 발견한 통찰이나 의미들을 이야기하는데, 그러한 내용은 어떤 때는 내가 매우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이나,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부분들일 때도 있다. 이럴 때 나는 종종 어떻게 한 권의 책이 읽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천차만별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경이롭게 경험한다. 물론 저자가 책 속에 담고 싶어하는 의도와 영 다르게 왜곡하는 것 같은 불편한 경우들이 있을지라도, 나는 저자가 한 편의 글의 의미와 해석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사라짐/죽음'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고 본다. 

 

4. 서로의 관점과 입장의 상이성에 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다양한 비판적 문제 제기들과 소통하는 것-- 학문 세계만이 아니라 정치-사회에 참으로 중요한 사항이다. 이 블로그를 읽으면서 돌연히 "올바른 교과서"라는 이름의 국정교과서를 떠올린다. 그 누구도 "올바른"에 대한 절대적 해석과 의미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러한 중요한 문제가 외면된 "올바른 교과서"라는 발상은, 국가적 인식의 미숙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댓글 5

rraccoon 2020.06.13. 09:40
뜬금없는 소리일 수도 있는데
이거보니까 갑자기 롤링 아주머니 생각남요.
제발 해리포터 설정 붕괴시키는 발언 좀 그만 했으면 좋겠음.
댓글
Gaius 작성자 2020.06.13. 09:43
 rraccoon
자식을 낳고 하나부터 열까지 통제하는 부모 같은건가?
댓글
rraccoon 2020.06.13. 09:55
 Gaius
팬들이 세계관 내의 핍진성까지 고려해서 설정을 이미 메운 상황인데, 한 마디씩 하면서 팬들의 분노를 유발하심.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데...
댓글
금개구리 2020.06.13. 09:51
그렇기에 합리적이고 차분한 논의가 오고 갈 수 있는 공적 공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생각지 못한 부분에 독자가 깊은 인상을 받는 경우는, 저도 경험하거나 지켜본 일이라 공감합니다.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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