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글챌린지 <음악--자유, 평등, 연대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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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1. 나는 무수하게 공간이동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여러 나라를 옮기며 살기도 하고, 한 나라에서도 여러 자리를 옮겨가며 살아왔다. 오랫동안 맡아 오고 있던 국제기구들에서의 역할 때문에, 미국의 대학으로 온 이후에도 일 년에 평균 3-4번 이상 미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로 공간이동을 하면서 지내야 했었다. 내가 집을 떠나서 호텔이나 컨퍼런스 장소의 숙소에 도착하면, 짐을 풀어 정리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예식이 있다. 맨 먼저 가방에서 컴퓨터를 꺼내어 늘 가지고 다니는 작은 여행용 스피커를 연결해 음악을 트는 일이다.  낯선 공간에 내가 택한 음악을 틀어 놓고, 그 소리가 방에 가득해지면서 비로소 나와 그 공간 사이의 연결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저 낯선 ‘잠자는 곳 (shelter)’ 이 아니라, 일시적이지만 나의 공간인 ‘홈 (transit home)’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음악이 내게 이러한 자유의 느낌, ‘고향성’의 느낌, 그리고 ‘아직 오직 않는 미래’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2. 인간이 지닌 ‘동물성’에도 불구하고, 동물 생명과 인간 생명이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음악’을 창출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음악은 ‘언어 너머의 언어 (language beyond language)’이다. 말의 언어나 글의 언어가 전달하고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담아내어 느끼게 한다. 음악은 우리의 상상력을 흔들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을 키우게도 하고, 묻혀 있던 기억을 꺼내어서 슬픔과 눈물, 또는 행복감이나 잊고 있었던 희망을 새롭게 되살리게도 한다. 음악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감정들을 우리의 언어 세계를 초월하여 표현하며 담아낸다. 내가 음악을 ‘언어 너머의 언어’라고 표현하곤 하는 이유이다. 음악은 ‘중성적’인 것 같지만, 그 음악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서 다양한 기능을 한다. 특정한 가치를 확산하기도 하고,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이용되기도 한다. 현실에 개입하게도 하고, 동시에 현실에서 도피하게도 한다. 

 

3. 폴리쳐상과 그래미상을 받았고 예일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작곡가 데이비드 랑 (David Lang)은 “크라우드 아웃(Crowd Out)”라는 제목의 새로운 양태의 음악을 작곡한다. 2014년 여름 베를린 필하모니 문화 축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건물 근처 광장에서 이 ‘새로운 음악’은 연주되었다. 이 ‘음악’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곡되거나 연주되지 않는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웹사이트에 가면 이 연주를 영화화한 필름이 있다. “크라우드 아웃—1,000개의 목소리를 위한 작곡 (Crowd Out-A Composition for 1000 Voices” 라는 제목이다. 베를린 광장에서 ‘연주’된 이 음악을 작곡하고 구상한 데이비드 랑은 축구 게임이 열리던 스타디움에 갔다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할 때, 개인들은 과연 무엇을 느낄까. 관중이 되어 ‘함께’ 환호하며 응원도 하고 탄식하기도 한다. 이러한 ‘함께’라는 경험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어떤  개인들의 마음속에는 고독, 외로움, 좌절의 느낌이 있을 수도 있다. “크라우드 아웃”에는 1천여 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연주자이며 동시에 관객이다. 또한 성악 전문가도 있고 아마추어도 있다. 다양한 성별과 나이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베를린 공연에서는 21개의 전문 또는 아마추어 합창단이 초대되었다고 한다. 이들 연주자/관객은 ‘따로’ ‘나는 (ich)’ 으로 시작하는 이런저런 말을 하기도 하며, ‘함께’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있기도 하고, 각기 흩어지기도 한다. 지휘자도 그룹에 따라 여러 명이다. 이 새로운 양태의 ‘연주’는 이후 영국의 버밍햄에서도 연주되었고 미국 LA의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는 3천여 명이 모여서 연주되었다.  

 

4. 나는 이 실험적 ‘음악’인 “크라우드 아웃”을 보면서 현대세계에서 음악이 우리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크라우드 아웃”은 내게 인간의 자유, 평등, 그리고 연대라는 중요한 가치에 대하여, 동시에 ‘다양성의 수용과 확장’의 의미를  다시 상기하게 한다. ‘다양성의 수용과 확장’은 자유, 평등, 연대라는 세 가지 가치를 체현하고, 제도화하고, 확장하는 데에 중요하다. ‘자유’는 인간이 한 개별인(singular being)으로서 누려야 하는 가치이다. 반면 ‘평등’은 그 개별인들이 타자와의 관계에 선 존재(general being)로서 보장되어야 하는 가치이다. 개별성(singularity과 일반성 (generality)은 한 인간이 이 세계에 두 존재 방식이다.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서 ‘함께’의 ‘연대’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혁의 원동력이 된다. 

 

5. 음악이 다양한 존재 방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나 다양한 언어, 느낌, 감정과 경험을 경험하게 하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렇게 모든 개별인들이 다양한 존재방식을 그대로 인정받으면서 살 수 있는 세계에 보다 가까이 가기 위해서 자유와 평등의 세계에 대한 꿈꾸기를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 개별인의 삶에, 그리고 내가 연결되어 살아가는 이 사회적 삶에서 진정으로 ‘따로따로-함께’의 존재방식이 가능한 세계를 상징하는 이론과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형성중에 있다. 요즈음 이 세계에, 또한 한국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위기상황을 보면서, 한 편의 음악이 보여주는 상징적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


*** 다음의 링크에서 <크라우드 아웃 (Crowd Out-A Composition for 1000 Voices>이라는 필름을 볼 수 있다.
https://www.digitalconcerthall.com/en/film/228#

댓글 1

리나군_주니어 2020.06.18. 21:14
자유와 평등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한 함께의 연대라니.
참 말이 좋으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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