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글챌린지 < “내가 나일 때, 나는 너다”: 삶의 주인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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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1. “내가 나일 때, 나는 너다 (I am you, when I am I).” 
파울 첼란 (Paul Celan)의 시구이다. 

‘너’와 함께 하는 삶은 ‘나’를 지켜내고, 확장하고, 가꾸는 것을 꾸준하게 해나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너’에 대한 연민과 연대, 그리고 ‘함께 살아감’의 전제조건은 내가 ‘나’를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그 ‘나’를 성숙하게 하고, 그 나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악은 비판적 사유의 부재”라고 하면서, ‘비판적 사유란 내가 나와 가지는 대화”로부터 시작된다”고 한 배경이다.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타자를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이 ‘나 사랑’인가는 각자가 씨름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즉, 타자의 희생에 근거한 이기성이 아니라, 나를 가꾸고, 확장하고, 나의 삶의 의미와 행복을 확장하는 의미에서의 ‘나 사랑’의 고정된 매뉴얼은 없다는 것이다. 

 

2. 계몽주의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나’라고 하는 개체적 존재를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개체성(individuality)’의 인식이 지금 우리가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제도화하는 민주주의, 인권, 사회보장, 그리고 종교개혁, 노예제도 폐지, 봉건적 신분제 폐지, 여권운동, 민권운동 등 다양한 사회변혁 운동을 가능하게 한 인식론적 토대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적 사회, 진보적 정치, 진보적 교육, 또는 진보적 종교는 이 ‘나’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기에, 그 나의 세계를 심오하게 만들고, 그 세계를 가꾸어가서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책임’이다. 그 어떤 외부요인들이 ‘나’를 대신해서 나의 세계를 자동적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우를 기다리며>는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는 그 “고도우(Godot)”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는 엄중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그 “고도우”가 신이든, 정치가이든, 또는 그 어떤 제도이든 ‘나’의 외부세계에서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3. 어디에 살든 또는 어떠한 삶의 정황에서 살든 ‘나의 세계’를 지켜내고, 가꾸고, 확장하기 참으로 힘든 시기다. 광화문의 ‘전광훈’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종교의 타락과 그의 이름과 연결된 ‘기독교’의 미신화,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개별인들의 개체성의 박탈 , 미국의 ‘트럼프’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정치 권력의 남용과 그 추악성, 인간의 생태파괴로 인해 벌어지는 끝을 알 수 없는 다층적인 팬데믹 위기 현상들 등 열거하기 어려운 정도로 한국과 세계가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외부세계’에의 개입은 나의 ‘내면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때 그 진정성을 지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타자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복제하면서, 이 세계에 대한 냉소적 분노,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무작정 혐오를 확산하고, 재생산하고, 재현할 뿐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나’를 대면하고, 나의 세계를 가꾸고, 나와 대화를 하고,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나의 ‘행복’을 창출해 가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4. ‘나’ 외부에 있는 그 어떤 존재가 나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주거나, 나의 행복을 자동적으로 가져다주지 않는다. 나의 삶의 주인은 오로지 ‘나’라는 것이다. ‘나’를 구원해 주는 것은 종교적 신, 위대한 정치가, 사회적 명사나 멘토, 또는 소위 ‘시대의 스승’도 아니다. 나 자신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서 스스로의 멘토가 되고 스승이 되어서 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파울 첼란이 상기시켜주듯, 내가 나일 때, 비로소 무수한 ‘너’와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이라도 알아차리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5. 나는 강의실에서 종종 “진정성은 냄새가 난다 (you can smell the authenticity)”는 말을 한다. 예를 들어서 특정한 텍스트나 사상 또는 사건에 스스로 치열한 개입을 하지도 않고 그럴싸한 개념이나 사상가들의 이름의 나열들로 포장하는 발제를 들을 때, ‘진정성’이 아니라 ‘지적 허영’의 냄새를 맡게 된다. 선생이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스스로 속에 체현(embody)하지 않고 화려한 개념으로 포장만 할 때, 학생이 그 진정성의 냄새를 맡기 어렵다. 진정성이 부재한 ‘배움’에서 ‘정보’는 모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관점의 변화를 가져오는 ‘인식적 변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6. 삶의 의미와 행복, 그리고 이 다층적 위기의 세계에서 나를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는 ‘생명 에너지’를 가져다줄 ‘고도우’는 결코 오지 않는다. 나 스스로 그 ‘고도우’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읽기, 쓰기, 성찰하기로 나의 세계를 가꾸고, 나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무엇이 나의 살아감의 의미와 행복감을 주는가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말고, 또한 나의 몸과 마음의 ‘안녕 (well-being)’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하루’들을 살아가기 시작 할 때, 비로소 나는 ‘너’와 만나고, 너와 연대하면서 보다 나은 나의 삶, 너의 삶, 그리고 이 세계를 향하야 한 걸음씩 나아갈 토대를 구성하기 시작하게 된다.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경험하는 이 지독한 위기의 시대에, 우리 각자가 ‘나’를 부여잡으면서 무수한 ‘너’들과 만나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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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도표는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21세기 페미니즘에 관한 7가지 질문> (한길사, 2020) 16쪽 에 나온 것이다.

 

FB_IMG_1597715700866.jpg

댓글 2

리나군_주니어 2020.08.18. 13:42
나에 대한 사유와 이를 통한 확장에서 연결되어지는 타인과의 연대를 말씀하시는군요.
외부의 개입에 무저항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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