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글챌린지 마피아 국가? 보안기관이 장악한 국가! - 박노자

마피아 국가? 보안기관이 장악한 국가! - 박노자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3.1운동의 100주년인지라 그걸 기념하는 성대한 학회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고맙게도 토론자로 불려갔으며, 저와 함께 또 한 분의 토론자로 불려간 사람은 부산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미국 분이었습니다. 국외에서 한반도 문제로 이런저런 언론 인터뷰를 자주 하시는 분이지요. 이 분이 '동북아 지역 협력' 문제에 대해 논평하셨을 때에 역내 안보 협력이 극도로 어려운 이유로 '역내 국가들의 상이한 정치체제'를 들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역내 국가들의 체제들은 일본은 (매우 보수적인) 의회민주주의, 남한은 실질적 양당제에 가까운 의회민주주의, 중-북은 당-국가 체제, 그리고 러시아는 '마피아 국가' 체제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의 일본, 한국, 그리고 중-북 체제론에 별 이의는 없었는데, '마피아 국가'가 과연 어떤 별도의 정치-사회적 '체제'인가, '욕설' 차원이 아닌 학술토론의 차원이라면 예컨대 "안보기관 본위의 권위주의 제체"같은 용어가 낫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마피아 국가'와 엇비슷한 용어를 적극 이용한 한 명의 국내 연구자는 바로 강준만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재야 인사는 그렇다 치고 한 번 '각하'의 의심을 산 김용태 민주공화당 원내 총무 같은 여당의 주역마저도 끌려가 중정부에서 고문을 당해 초죽엄이 될 수 있었던 박정희의 국가를 '야수 국가'라고 불렀지요. '야수 국가'나 '마피아 국가'나, 거의 동의어에 가까울 것입니다.

'야수 국가', '마피아 국가'와 같은 단어들이 제 머리에 불쑥 든 것은, 몇주 전에 러시아에서 나발니가 독살의 시도로 추정되는 '변'을 당했을 때이었습니다. 사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에 제게 맨 먼저 연상된 게 다름이 아닌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이었죠. 그래서 이러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정권이란 과연 어떤 정권인가에 대해 한 번 제 생각을 정리해서 써봐야겠다, 이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러시아 같으면 이 정권은 이미 박정희 정권의 18년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됐으며, 현재 예측으로는 아마도 후계자를 세워 "10.26 새태"나 "서울의 봄"없이 비교적 제도적으로 사실상의 '정권의 연장'에 성공할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정권도 이 정권의 후계 정권도 아마도 초법적인 '정적 제거'의 방법들을 계속 이용할 것으로 보이기에, 그 '맥락'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정치 아닌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본다면 러시아는 국가 관료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국영 기업들은 전체 산업 생산의 약 40%를 차지하는가 하면, 국가가 소유하는 자산은 전체의 약 70%에 달합니다. 예컨대 우리에게 익숙한 '사립 대학' 같은 건 러시아에는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러시아 대학생의 14%만이 사립대에 다니며, 주요 '명문' 대학들은 거의 전부 다 국립입니다. 대부분 언론들을 국가나 국영 내지 준국영 기업, 아니면 친정권 재벌이 소유하기에 '언론들의 국가화' 정도도 아주 높지요. 전체 피고용자 중에서는 국가/공공 부문 피고용자들은 약 50% 정도 됩니다. 사실, 국가 주도 개발을 했다는 박정희 정권마저도 사회를 이 정도로 '국가화'시키지 못한 것이죠. 재벌이나 사립대학을 그대로 둔 정권인데, 가까이도 못갔죠. 역시 현 러시아 정권은 소비에트 시대의 유산을 활용하는 만큼 박정희 시절보다, 어쩌면 박정희의 모델이었던 일제 시대의 만주국보다 훨씬 더 철저한 국가 관료 자본주의 체제를 정비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국가'를 실제로 누가 어떻게 지배하느냐입니다. 박정희 같은 경우에는 고시를 통해 뽑힌 일반 공무원들의 사회를 군부 엘리트가 지배한 것입니다. 군이 민간 공무원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관이 전혀 아니니까 사실 그런 정권은 역사적으로 '단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비에트 국가라는 현 러시아 정권의 '모태'는 당-국가 체제이었습니다. 당은 대중을 동원시키고 인재들을 발굴, 배치, 통제하고, 각급 국가 기관들을 영도했습니다. 이 체제는 나름의 제도성, 완결성을 가지고 있어 훨씬 더 오래 갈 수 있는 것이죠. 러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군'은 그 어떤 주체적인 정치적 역할도 부여 받지 않으니까 그냥 당의 명령에 복종하는 하부 조직 밖에 안됐지만, 당 관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보안기관들이었습니다. 스탈린이 1930년대초반부터 1953년까지 보안기관들을 이용하여 당 관료들을 절대적으로, 철권으로 장악했으며, 그 과정에서는 수십 만 명의 관료들을 학살, 숙청했기 때문입나다. 그래서 스탈린이 죽은 직후에 그 후계자들은 베리야 (Beriya)등 보안기관들의 지도부 수십 명을 총살, 숙청하고서, '당에 의한 보안기관의 장악'에 올인했습니다. 소련 말기엔 보안기관들은 당 관료에 대한 수사권 자체를 갖지 못핸 거죠.

스탈린은 보안기관들을 동원해 당을 '숙당', 장악했지만, 당-국가 메커니즘은 여전히 계속 작동했습니다. 보안기관이 아닌 각급 당위들은 각급 행정기관에 계속해서 지침을 하달하고 그 수행을 감시했습니다. 정치적 출세의 길 역시 입당과 당 안에서의 승진 이외엔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국가가 이미 해체된 토양에서는 드디어 스스로 집권한 보안기관 요원들은 국가 관료 자본주의 사회를 이제 당이라는 총괄적인 조직 없이, 스스로 지배해야 했습니다. 당의 지배는 극도로 제도화돼 있었던 것이죠. 예컨대 나발니가 걔속 폭로해온 부정 축재나 친인척에 대한 특혜 등은, 일부 지방 당 조직은 모르지만, 중앙 당 조직에서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상호 통제, 감시도 철저했지만, 당 관료들의 사명의식도 만만치 않아, 적어도 중앙 조직은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 국가 관료 자본주의의 새로운 '관리자'가 된 보안요원들에게는 이런 제도적 전통 같은 게 잘 없습니다. 당은 그 성격상 공적 조직이었지만, 보안기관들은 비록 공공부문에 속하지만 그 모든 사업은 원칙적으로 거의 다 대외비입니다. 결국에는...과거 당의 상부기관의 (문서화된) 지침을 지금 대신하는 것은 '각하'의 (구두) 명령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당의 징계 절차나, 과거에 '반소 선전선동 행위'에 대한 공적 처벌 (징역형, 유배형 등)을 대신 한 것은? 맞습니다. 차 한 잔에 넣은 독극물입니다. '은밀한/비밀스러운 폭력'에 훨씬 더 익숙해진, 그리고 제도성이 부족한 관료군이 장악한 나라에서는, 이제 초법적 '제거'가 일상이 된 것입니다.

저들이 장악해버린 국가 조직을, 그렇게 쉽게 떠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보안 관료들에 의한 국가 관료 자본주의 체제 운영은, 아마도 장차 상당한 기간 동안 이루어질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국의 군사 정권은 30년 정도 갔지만, 이건 그 두 배나 되지 않을까, 전 그런 예감입니다. 물론 야수성은 점차 줄어들 수도 있긴 합니다. 독극물은 재야 인사만 죽이는 것도 아니고, 관료 조직 안에서도 계속해서 이런저런 '의문사'들이 벌어지고 해서, 이건 사실 집권 관료들의 입장에서도 꼭 바람직한 조직 운영의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 지배자들의 버릇을 고칠 수 있는 것은 결국 러시아 민중일 뿐입니다. 한 도시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초법적인 국가 운영'에 대한 대규모 항의 집회들이 벌어지면 결국 정권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러시아의 각종 재야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면, 이는 이번 '정권'을 넘어선, 보다 장기적인 한-러 우호에 좋은 기여가 될 것이지요. 야수 정권이야 수십년 가더라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만, 두 이웃 나라는 서로에 관심을 갖고 그것보다 훨씬 더 장기적으로 서로 교류해야 하는 것이죠.

 

 

출처 : 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

 

 

댓글 1

조현수 2020.09.22. 13:21
잘 읽었습니다 살짝 의문 드는 대목이 있긴 했는데 굳이 이 글에 나와야 할 이야기는 아닌듯하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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