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글챌린지 욕망, 초아, 그리고 죽음 - 박노자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동물인 이상 당연히 그런 것이죠. 성욕이라고 해서 꼭 죄악시할 것도 없습니다. 식욕이나 예컨대 수욕 (잠자고 싶은 욕망)과는 꼭 차원이 다르지도 않는 생리적 작용이니까요. 아마도 "늙은 수컷/암컷"이 이성의 '젊은 육체'에 대해 느끼는 성적인 욕망도 어디까지나 '자연'의 범위에 속합니다. 여자고 남자고, 그런 욕망 자체에는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노벨상을 받기도 한 망명 작가 이반 부닌의 <캄캄한 가로수길> (1943)에서는, 작가 자신의 자서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늙으막의 성욕"의 세계가 아주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성의학 차원에서도, 심리학 차원에서도 문학 차원에서도 탐구할 만한 가치가 큰 영역이지요.

그런데 다른 욕망들과 달리 성욕의 대상은 다른 인간, 타자입니다. 그래서 성욕은 필수 부득이하게 사회적으로 통제되고 절제되게 돼 있습니다. 인류 사회의 시작, 즉 원시 공동체 사회부터 그래왔죠.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 등은 계급 사회 발생 이전부터 생긴 것입니다. 계급 사회에서는 보통 성욕을 통제하는 메커니즘 중의 하나는 바로 위계질서적 신분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죠. 아무리 '개저씨'같은 위인이라 해도 예컨대 젊은 여고수나 여의사에게는 과연 함부러 "나, 키스해볼래?" 같은 식으로 달라붙겠습니까? 그러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어떤 묵시적 무의식이 이미 내재돼 있습니다. 상대방은 아무리 젊은 여체의 소유자라 해도, 그 상대방으로부터 '자, 여기 앉아보세요. 어디가 아프세요?"와 같은, 직업적 권위가 느껴지는 사무적 말투를 듣기만 하면 최악의 "개저씨"도 대개 바로 정신을 차립니다. 한데...상대방은 상냥한 말투로 "....님, 그러면 오늘 어떻게 할까요? 몇시 출발하시지요?"라고 말하는 순간, 즉 상대방을 보호할 만한 '신분'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리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정치적 의견이나 신념과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자유주의자는 물론이거니와 자칭 '무산계급 혁명가'들도 신분 위계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이상 신분 의식을 대부분 다 몸에 배는 것이죠. 체질화돼 있는 당위 의식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특정 "신념"의 내용과 무관하게, 신분이라는 보호막이 없는 젊은 여성에게는 중년/중산층/고학력 남성으로서의 '성적 특권'을 얼마든지 강요해볼 잠재적 가능성은 늘 있습니다. 맑스의 그 하녀와의 - 위압에 의한 추행으로 볼 여지도 있는 - '로맨스'가 잘 알려져 있는데, 레닌에게도 파리에서 살았던 시절 '주방 여성'과 엇비슷한 일은 있었습니다 (단, 맑스와 달리 사생의 자녀는 없었죠). 트로츠키에게는 프리다 칼로 등 "고급" 여성과의 '정식' 로맨스 이외에는 1920년대에 주변의 하급 '여직원'과의 수차례의 '일'이 있었고, 톨스토이이나 푸쉬킨 같은 경우에는 '문호' 대신' '농노 여성 상습 추행범'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푸쉬킨은 정치신념상 온건 자유주의자이었고 톨스토이는 기독교적 아니키스트에 가까웠는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건 '신념'과 아무 관계 없는 일입니다. 몸에 밴 신분 의식, 특권 의식의 결과죠. 이런 일을 사회적으로 막자면 정말로 아주 치열한, 그리고 무자비한 미투 운동은 지속적으로 몇년, 몇십년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성추행을 범한 남성의 여태까지의 '공든 탑'이 다 무너지는 광경을 지속적으로 보느라면 성적 특권 의식을 가질 만한 남성들에게는 그래도 '학습 효과'가 있을 것이니까요. 그런 사회적 학습 효과를 보통 프로이드의 용어로 '사회적 초아 (social super-ego)'라고 부릅니다. "성추행을 범하면 절대 안돼!!!"와 같은 절대 명령을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남성의 머리에 박아놓아야 미래의 비극들을 예방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 말씀드리자면....석가모니 불께서 욕망을 못이길 것 같으면 본인도 그 욕망의 대상도 해골로 화한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권고하지 않았던가요? 불가에서 이를 백골관 (白骨觀)이라고 하지요. 구라파의 천주교 같으면 자신에게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고 주문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욕망을 타고 난 동물인 동시에 모두 다 사형수들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미 사형이 내려져 있는 거죠. 특별한 점은, 이 사형이 언제 집행될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평균 수명대로 팔순, 구순까지 살겠다고 다들 생각을 하고 그렇지만, 사실 내일 모레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그래서 아무리 '몸의 욕구' 등등을 느껴도 고통의 씨앗을 뿌리지 않고 아름답게, 곱게 가자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사회적 초아의 절대 명령에 충실히 따르면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의 평등은 야소 기독이나 석가모니의 본뜻이었던 만큼 '나'의 성적 특권을 주장하는 순간 '나'는 기축 시대 이후부터의 인류의 정신적 진화를 부정한다는 생각을 해봐도 되고요. 이렇게 욕망의 지형을 관찰하고, 반사회적이 될 수 있는 욕망을 스스로 성찰, 통제하는 데에서 개개인의, 그리고 사회의 이성이 발전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vladimir_tikhonov&logNo=222028753621&navType=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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