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서 시를 읽는 방법, 안태운의 「얼굴의 물」을 예시로

1. 들어가기에 앞서

 

 

친구들이나 후배들과 이야기를 할 때 시는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옛날 시와 다르게 은유인 것 같지도 않고, 행갈이도 이상하고, 편하지 않다

 

그렇다. 얼핏 보기엔 옛날 시, 그러니까 윤동주나 김소월 같은 시대의 시와 다른 문법으로 쓰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를 읽을 때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게 있다는 걸 알면 시의 핵심적인 건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시는 쓰이기 위해 존재한다.

당대 사회현실이건, 개인적으로건 일상에서 뱉지 못한 말들을 자신을 투영하여 보내는 개인적인, 동시에 읽힐 수 있는 언어라는 것. 그러니까 언어이지만 언어 바깥의 언어이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시는 처음부터 읽히기를 위해서 태어나기 보단 쓰여지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는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가 쉽다 생각하는 시들을 정말 쉽게 읽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감성이라 느끼는 시는 없다.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만약 우리가 윤동주에 대해 교육 받지 않고 윤동주의 시풍에 대해 교육 받지 않았으면 "오늘도 별에 바람이 스"친다는 표현에 공감을 할 수 있을까?

몇 광년은 떨어진 우주적 고열 가스덩어리에 지구의 극동아시아의 반도에서 안전하게 느낀 미세한 대류 현상이 스치는 것도 아닌데.

 

명말청초의 화가 석도는 감성은 늘 이성보다 앞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창작자의 입장이다.

창작자는 감성이 발현된 뒤 이성을 덧입힌다.

그걸 수용하는 입장은 창작자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시가 어렵다고 하는 건 잘못 된 게 아니다. 읽기 위한 글을 주로 접해온 우리에게 쓰이기 위한 글을 교육 없이 보기란 힘든 일이니까.

 

그러나 어렵다고만 치부할 것도 아니다. 마음이 가서 조금만 더 배우면 어떻게든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게 시니까.

 

 

2. 본문

 

이 글은 그런 방법 중 하나인 기호학적 독법으로 접근하려는 글이다.

 

다음 시를 예시로 들어보자.

 

그는 안에 있고 안이 좋고 그러나 안으로 빛이 들면 안개가 새 나간다는 심상이 생겨나고 그러니 밖으로 나가자 비는 내리고

비는 믿음이 가고 모든 맥락을 끊고 있어서 좋다고 그는 되뇌고 있다 그러면서 걸어가므로

젖은 얼굴이 보이고 젖은 눈이 보이고 비가 오면 사람들은 눈부터 젖어 든다고 그는 말하게 되고 그러자 그건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드나들게 된다

얼굴의 물 안으로

얼굴의 물 밖으로

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차오르고 얼굴은 씻겨 나가 이제 보이지 않고

 ̄「얼굴의 물전문

 

 

 

기호학적 접근은 이론적인 프로젝트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기호학적 비평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이뤄졌으나 실제비평의 적용 사례는 드물다. 문학 연구에서 이상 시의 기호학적 접근과 같은 몇몇 사례들이 있을 뿐이다.

다음 사례는 필자가 구색에 불과한 기호학적 접근을 시도해본 것이다. 이 작품은 안태운 시인의 얼굴의 물이라는 시다. 다음 시의 구조를 그레마스가 제시한 기호학적 사각형이라는 모형에 적용하고자 한다.

 

그레마스 사각형.PNG

 

 

그레마스의 의미론의 기초는 이항대립이다. 대립의 차이에서 기본적 층면 4항이 있고, 4항은 각각 2항의 대립으로 짝을 이루어 사각형 모습으로 구조화된다.

 

 

1행에서 우리는 이라는 세계와 이라는 세계, 안에서는 밖의 비로 인한 자극이 없고’, 밖은 비로 인한 자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행부터 작품의 동작주는 안에서 밖으로 이동된 상태다, 여기서 자극을 받아 맥락이 끊어지는 비를 그는 수용한다. 자극이 없는 안이 좋음에도 그는 자꾸 자극이 있는 밖을 향한다. 이로 인한 결과물로 3행부터 드나들게되는 행위를 하면서 안이든 밖이든 물이 가득한 상태에 놓인다.

공간상으로 볼 때 는 안이 좋아서 안에 있으나 그렇다고 맥락을 끊고 있는 비가 싫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좋아한다. 즉 그는 어디에 속할 수 없는 결렬된 상태에 놓여있다 볼 수 있고 또 그는 어떤 결렬을 찾아낸다.” 그는 밖에 나와 비를 맞으며 자극을 자신 안으로 들여보낸다. 그 순간 밖의 자극의 물은 몸 안의 자극 없는 물에 속하고 이 순간 안과 밖은 그의 밖에 있는 게 아닌 그와 세계로 바뀐다. 즉 안과 밖은 모두 밖이 되고 그의 몸은 안이 된다밖에서 흠뻑 비에 젖고 나면 안에서 보이던 것과는 다른 것을 경험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얼굴의 물 안으로/ 얼굴의 물 밖으로 비는 계속 내리면서 얼굴은 씻겨 나가고 만다. “밖에서만 내리는 줄 알았던 비는 얼굴의 안과 밖 모든 곳에 내리는데 밖과 안을 구분하던 경계가, 이를 구분해주는 시선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내 버려졌던 자극 없음의 세계는 무너지기 전까지 무의미한가? 그건 아니다.

 

얼굴로 차오르는 것이 빗물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얼굴의 물 안으로얼굴의 물 밖으로는 행갈이로 구별된다. 얼굴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물이 원래 얼굴의 물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부의 자극 없음의 물은 자극의 물을 받아 섞이게 되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상 구조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젖은 눈 속에 물이 차올라 넘치는 순간, 눈에 비치는 대상이 넘쳐흐른다(대상이 사라진다). 얼굴까지 씻겨 나가 보이지 않게 된다(주체가 사라진다). 얼굴이 씻겨 나갔으므로 물론 눈까지 사라졌다고 보아야 한다(시선이 사라진다). ‘나는 세계를 바라본다는 환상을 모두 하나씩 취소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기호학이라는 구색에 맞춰본다면 내부, 외부, 구분 없는, 섞이는, 흘러넘치는의 기호인 에 대해 환유적 놀이를 시행한다고 볼 수 있다.

 

 

 

3. 마치며

 

이렇게 작품을 "물에 대한 환유적 놀이"라는 결정으로 읽으면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생길 수도 있다.

 

왜 이렇게 쓰지?

그래서 이 시로 말하고 싶은 게 뭔데?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어떤 감정을 기존 평범한 문어로 말할 수 없어서, 그 문법 바깥의 문법으로 그나마 유사하게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로 할 수 없는 걸 말로 한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는 은유이고 환유이지만 역설이기도 하므로.

 

두 번째 의문의 경우 우리는 시를 시집으로 접한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시 하나가 이렇게 끝난다고 다른 시들이 똑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뒤 나오는 시들을 보면서 이와 비슷하게 생각하거나 좀 더 이완된 방법으로 읽으면서 우리는 시인이 보는 대상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읽는 방법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굳이 이렇게 프로젝트처럼 구성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단지 하나의 방법이고, 내가 이 시를 읽는 방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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