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인터뷰] 브라질·풋살 경험한 '파란만장' 축구인의 축구인생 이야기 ①

1편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990626&memberNo=6525744

2편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991075&memberNo=6525744

오랜만에 돌아온 인터뷰입니다

많이 읽어주시고

링크 많이 찾아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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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서클 | 서건 대표] 여기,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을 살고 있는 한 축구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김태우. 한국 축구는 물론이요, 브라질 생활과 풋살 대표팀까지 경험한 바 있는 그는 ‘다이나믹(dynamic)’ 축구인이다. 선수와 통역사를 거쳐 이제는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그, 그는 오늘도 자신만의 신선한 패러다임으로 축구를 대하며 인생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과연 그는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 속에서 어떤 경험을 했을까.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어떤 배움을 얻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그의 경험과 그의 배움 속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배움을 새로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축구인 김태우 인터뷰다. 2편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신선함을 느낄 수 있기 바란다.
 
 

#. 축구인 김태우의 축구인생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36살 김태우이고... 사실 한 마디로 제 모든 걸 설명하기는 어렵다. 조금 길게 하자면...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태우라고 한다. 내가 원하는 교육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어서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다. 팀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프리랜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연령대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레슨 지도자'를 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확실한 노하우가 있어야 하고, 아이들의 부족한 점과 장점을 보다 세심하게 파악해야 한다. 기술 그리고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레슨 지도자라는 직업이 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유튜브도 하고 있다. ‘풋볼아이’ 채널을 운영 중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 시작한 지 한 3년 됐다. 축구에 관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나에게 찾아오셔서 풋살이나 축구 기술에 대한 강의를 부탁하셨다. 이야기가 잘 돼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
 
맨 처음에는 축구 기술 위주의 강의를 했다. 특히 드리블에 대한 강의를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내가 브라질에서 축구를 한 적이 있지 않나. 브라질에서 관심 있게 보고 배운 다양한 브라질 축구 기술들을 구독자들에게 알려줬다.

 

 

그러다 풋살에 대한 강의도 시작했다. 풋살 경력에 대해 자신이 있다 보니 보다 적극적으로 강의를 한다.
 
그리고 풋살 시장이 넓어지면서 보다 전문적으로 풋살을 배우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요즘에는 중,고등학생은 물론 성인 분들도 풋살을 많이 한다. 또, 예전에는 조기'축구'회가 많았지만, 이제는 '풋살'동호회도 많아졌다. 소수인원으로도 공을 찰 수 있고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할 수도 있다는 점 덕분에 풋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풋살을 즐기는 분들이 많아진 덕분에 풋살을 할 때 필요한 움직임, 전술 및 드리블 기술 등에 대해 열심히 강의를 하는 중이다.
 
축구인생 이야기로 돌아가보자축구는 언제 시작하게 됐나.
 
난 축구를 좀 늦게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말에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너무 축구를 좋아했다. 정말 축구에 '미쳐서' 살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운동선수의 길이 험난하다는 걸 알고 계셨다. 그래서 축구에 길로 들어가는 것을 쉽게 허락해주시지 않았다.
 
웬만하면 부모님들이 초등학교 때 (아이가 원하면) 축구를 시켜주시는데, 우리 가족은 아니더라. 심지어 난 초등학교 때 키가 큰 편이었고, 달리기 역시 잘했었다. 동네 애들 사이에서 ‘축구 영웅’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부모님께 추천을 하셨고, 근처 축구 명문 초등학교 감독님들의 스카우트 제의도 많았다. 그럼에도 부모님께서는 축구선수의 길을 반대하셨다.
 
하지만, 부모님의 강한 반대도 내 축구 사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축구를 안 시켜주면 공부도 안 하겠다며 혼자 시위를 했었다. 당시 내 쌍둥이 형이 부모님께 나를 적극적으로 추천해주면서 부모님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결국 부모님께서는 고민 끝에 축구선수의 길을 허락해주셨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나는 레슨을 통해 실력을 길러 배재중학교에 입단하게 됐다.
 
포지션은 어디였나.
 
한국에서는 측면 공격을 맡았었다. 브라질로 건너간 뒤에는 측면 공격 뿐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와 최전방 공격수를 소화하기도 했다. 최전방 공격수의 경우, 양 측면으로 빠져서 플레이를 하는 임무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브라질 이야기가 나왔다브라질은 언제 가게 된 건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는 키가 크고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유리한 입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늦게 축구를 시작한 것 치고는 축구를 정말 잘한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정도 되니까 상황이 바뀌었다. 다른 친구들은 2차 성장을 통해 키가 크는데 난 많이 안 크더라. 키와 힘에서 유리함을 가져오지 못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술이나 드리블 측면에서의 강점을 더 키워야겠다.' 그래서 브라질에 가게 됐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브라질에 갔다. 고등학교 감독님께 딱 1년만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브라질에) 가보니까 배울 점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그곳에서 좀 더 배우기로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말까지 브라질에 있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 대학교 진학을 위해 귀국했다.
 
2년 정도 있었던 건가.
 
선수로는 2년 정도 있었다. 사실, 기술적인 면에서의 성장을 위해 브라질에 갔던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풋살을 경험하기 위해서 간 것도 있었다. 브라질 유학업체들 중에서 일주일에 한 번 풋살을 진행한다는 업체를 택한 것도 바로 풋살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미니게임을 좋아하기도 했고, 풋살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말에 브라질을 다시 가게 됐다. 에이전트 회사가 K리그에서 뛸 용병들과 접촉하기 위해 브라질에 직원을 파견하는 일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통역 업무를 맡기 위해 에이전트 팀과 함께 2주간 브라질에 가게 됐다. 큰 에이전트 회사에서 부름을 받은 것이었기에 그 때의 브라질 출장이 언어 공부에 대한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그 후 대학교 2학년 때 풋살 공부를 위해 브라질에 또 한 번 갔었다. 그 때는 나 혼자 떠났다. 브라질에 6개월 정도 있었고 3개월 동안은 풋살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풋살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나머지 3개월 동안에는 브라질 프로 풋살 팀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선수 은퇴는 언제 했나.
 
배재대학교 진학 이후 부상으로 1년을 쉬었다. 그 기간에 에이전트 통역 및 풋살 지도자 연수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풋살 선수로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비록 대학교 1학년 동안에는 부상으로 운동을 못했지만, 브라질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 대한민국 풋살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사실 부상 때문에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도전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당시 날 찾아주시는 감독님이 계셨고, 풋살 국가대표 선수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2007년 3, 4월 달에 열렸던 대만 아시안컵에 출전한 뒤에 미련 없이 은퇴를 했다.

 

7번 선수가 김태우 선수다.

 

22살이었음에도 편하게 은퇴를 할 수 있었다. 비록 일반 학생들만큼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으나, 내가 하고 싶었던 포르투갈어 공부와 풋살 공부를 충분히 했기에 굳이 선수를 안해도 제 2의 인생을 펼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축구 선수로는 대학교 1학년 때풋살 선수로는 대학교 2학년 때 은퇴를 한 건가.
 
그렇다. 전주에 있는 우석대학교 풋살팀에서 선수를 하다가 은퇴를 했다. 선수생활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제 2의 삶에 대한 기대와 부상부위 또한 쉽게 완쾌되지 않아 은퇴를 선언하게 됐다.
 
 

#. 브라질 이야기
 
브라질은 어떤 나라인가.
 
브라질은 정말 축구의 나라다. 쓰레기도 손으로 버리지 않고 발로 차서 버릴 정도다. 남자로 태어나면 축구선수, 여자로 태어나면 모델이 되는 게 부모님들의 꿈인 곳이다.
 
한국 체육은 엘리트 교육 시스템으로 구성돼있다. 축구를 하게 되면 공부를 놓칠 수 있어 축구를 선뜻 허락하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재능이 있어도 허락하기 힘들어하신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다. 운동선수의 길이 험하기도 하고...
 
근데 브라질은 남자로 태어나면 거의 전부가 다 축구를 한다. 그 중에 재능 있는 아이들이 축구선수가 되는 구조다. 많은 인원이 축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프로선수들이 배출된다. 세계 각국 프로리그를 보면 꼭 한 팀당 2~3명의 브라질 선수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브라질은 동등한 실력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10팀 이상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브라질 사람들은 대표팀을 부를 때 ‘선택받은 사람들’ 이라고 부른다.
 
또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응원하는 연고지 팀의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로 도시가 가득 찬다. 재미있는 광경이다. 백화점을 가도 데이트를 해도 자기가 응원하는 팀 옷을 입고 다닌다. 축구경기가 있는 날은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축제의 날이다.
 
그리고 브라질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것도 없다.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고민이나 단점이 브라질에서는 고민이나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어떤 고민이나 단점을 가지고 있었나.
 
음... 스무 살 때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키가 크지 않고 얼굴이 잘생기지 않은 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브라질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사람들은 항상 날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해줬다. 물론 장난이 심하고,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또, 축구 스타일이 나와 정말 잘 맞았다. 한국에서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나 체력적인 부분이 강조된다. 물론 정신적인 부분과 체력적인 부분도 분명 중요하긴 하다. 근데 축구를 배우는 과정에서 그런 게(정신, 체력) 너무 강조되다보니 기술적인 축구를 하지 못하기도 했고, 주눅이 들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브라질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축구를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기술적인 패스나 멋진 드리블이 나오면 코치나 감독님, 동료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주며 윙크를 해줬다.
 
적지 않은 브라질 선수들이 K리그에서 적응문제로 실패를 했었는데반대의 경우에도 비슷한 적응실패 사례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브라질에 적응하는 데 있어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나.
 
브라질은 축구를 정말 잘하는 나라다. 동양인들이 축구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브라질 선수들을 제치고 주전으로 뛰는 게 정말 어려웠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 태권도를 배우러 와서 한국 선수들을 제치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니겠나. 그러나 어려웠던 만큼 잘하는 선수들을 보고 배우는 점도 많았다.
 
또, 인종차별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장난기가 심한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화를 내지 않으려 했다. 내 나라가 아니기에 그냥 참는 경우도 많았다.
 
원래 브라질이 약 올리고, 속이고, 깔깔 웃고 하는 장난스런(?) 문화가 있는 나라다. 변칙적이어야 하고 너무 정직해도 안 되는 곳이다. 생각해보면 축구에서도 그런 문화가 묻어나오는 것 같다.
 
치안의 경우, 관리 받지 않고 아무 곳이나 막 돌아다니면 문제가 생긴다. 메이커 옷을 입어서도 안되고, 좋은 핸드폰을 쉽게 내보여서도 안 된다. 선수로서 갔을 때, 난 관리를 받으면서 브라질에 있었다. 치안 부분에서 문제를 느끼진 못했다. 지도자 연수를 위해 브라질을 홀로 찾았을 때는 밤에 함부로 외출하지 않았다. 나가도 친구랑 나가서 별 문제는 없었다. 다만, 밤에 나갈 때는 친구와 함께 있더라도 항상 주위를 살피면서 다녀야 했다.
 
브라질 어디에서 있었던 것인가.

 

브라질 지도

 

처음에는 상파울로 주에 있는 곳을 갔다. 상파울로가 정말 크다. 아마 우리나라보다 클 것이다.(실제로 상파울로 주는 248,808제곱km로, 220,847제곱km인 한반도보다 크다.) 거기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상카를로스에서 살았다. 사실 조금 떨어져 있다고들 하지만, 자동차로 무려 4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정리하자면, 상파울로 주에 있는 상 카를로스라는 도시에서 살았다.

 

 

두 번째 갈 때는 월드컵과 올림픽이 열렸던 리우 데 자네이루를 갔다.

 

 

세 번째 갈 때는 남부지방 쪽을 갔다. 남부 지방은 ‘브라질의 유럽’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곳의 포르투 알레그리라는 도시로 갔다. 거기에서 유명한 팀으로는 호나우지뉴가 있었던 ‘그레미우(정식 명칭은 그레미우 풋볼 포르투알레그렌시)’와 파투가 있었던 ‘SC인테르나시오나우’가 있다.

 

 

남부지방엔 겨울이 있다. 그리고 풋살은 실내축구다. 그래서인지, 남부지방에 명문 풋살팀들이 모여있었다.
 
어느 지역이 가장 기억에 남나.
 
남부지방이 가장 좋았다. ‘브라질의 유럽’이라고 불리는 만큼 70%~80%가 백인이었다. 그러다보니(브라질에 거주하는 백인들은 브라질에 거주하는 타 인종들에 비해 비교적으로 돈이 많다.) 지역 인프라가 비교적으로 잘 구축돼있었다. 치안도 좋았다. 다른 지역의 경우 강도나 절도의 위험이 비교적으로 크다.
 
또, 남부지방에서 내가 좋아하는 풋살을 전문적으로 배웠던 시기여서 그런지 남부지방, 그러니까 포르투 알레그리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축구 이야기로 돌아가서브라질 선수들을 두고 탄력적이라고 말하는 축구인들이 많다실제로 그런가.
 
그렇다. 몸이 유연하다. 뛰어난 폭발력, 민첩성, 그리고 기술력을 자랑하던 선수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또, 선수들이 점프나 헤더를 굉장히 잘했다. 탄력이 있었다. 동물적 감각이 대단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 선수들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그건 바로 ‘골 감각’이다. 한국 축구와 브라질 축구의 가장 다른 점은 바로 '골 넣는 감각'이다. 브라질 선수들의 문전앞에서 골 넣는 감각이 정말 좋았다.
 
지금 대구FC에서 활약하고 있는 에드가 선수가 유학 당시 같은 팀에 있던 동료였다. 그때도 큰 키를 가지고 있었고 또 골도 굉장히 잘 넣었었는데, 이제는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더라. 정말 잘 성장한 선수다.

 

이번엔 언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브라질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쓴다어떻게 포르투갈어를 익힐 수 있었나.
 
부모님께서 당부하신 게 있었다. 브라질 가서 현지 언어를 익혀오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브라질에서 적응을 하려면 그 나라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운동만큼 언어공부도 열심히 했다. 회화 위주로 익히다 보니 입하고 귀가 ‘뚫렸다.’
 
이후 에이전트 통역으로 다시 브라질을 갈 수 있게 되자 포르투갈어의 힘을 알게 되었고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학교 1, 2학년 때 다시 포르투갈어 공부를 시작했다.
 
운이 좋기도 했다. 내가 있었던 대학교 팀의 코치님이 브라질 분이셨다. 당시 내가 부상을 당해서 운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브라질 코치님의 통역을 도우면서 팀과 상부상조할 수 있었다.
 
보통 팀에서 부상으로 운동을 못하게 되면 감독님과 코치님, 그리고 선배들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내 역할이 확실히 존재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언어능력을 살린 게 주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난 언어능력에 대한 욕심이 더욱 많이 생겼고, 주말에 집에서 과외까지 받으며 포르투갈어를 배웠다.
 
포르투갈어를 익히고 나니 몇 군데 프로팀에서 제의가 왔다. 용병 선수들의 통역을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통역가로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됐다.
 
대전 시티즌에서 통역가를 맡게 됐는데, 선수 및 코치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과도 소통을 해야 했다. 10명이 넘는 이들을 ‘케어’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언어능력을 살려 프로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구단 프런트에서 일을 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분야(축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궁금한 게 있다스페인어를 쓰는 사람과 포르투갈어를 쓰는 사람은 서로 말이 통하나.
 
대전 시티즌에 있으면서 다양한 스페인어 구사자들을 만났다. 아르헨티나 선수나 콜롬비아 선수, 칠레 선수들을 만났다. 대화가 통했다.
 
비록 다른 언어지만 똑같은 단어, 비슷한 단어들이 많이 존재한다. 표준어와 제주도 방언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둘 중 하나를 잘 하면 나머지 언어를 배우는 데 3개월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도 포르투갈어 덕분에 스페인어를 할 수 있게 됐다.
 
브라질 포르투갈어(이하 브라질 포어)와 포르투갈 포르투갈어(이하 포르투갈 포어)의 차이는?
 
억양이 다르고 몇몇 단어의 발음도 다르다. 80% 정도는 비슷하나, 공부하지 않으면 가끔 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 표준말과 부산 사투리 정도의 차이 같다.
 
내가 듣기로는 포르투갈 포어보다 브라질 포어가 더 영향력이 있다고 한다. 우선, 쓰는 인구 수가 브라질 포어가 더 많다. 또, 축구계에서는 브라질 선수들이 각국에 포진돼 있어 브라질 포어가 더 주목을 받는다고들 한다. 한국제 전자제품 및 한류문화의 남미시장 진출로 대한민국에서도 브라질 포어가 적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정리하자면, 어느 게 더 좋은지는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브라질 포어가 더 널리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축구인생 이야기와 브라질 생활 이야기를 전한 축구인 김태우 지도자는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인 풋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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