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그거 아세요? -스포가 이렇게 해롭습니다-

5/5

사람들끼리 운신의 폭이 제한되는 폐쇄적인 공간에 있는 채로 같이 부대끼며 살다 보면 그 사람의 인성밑천이 다 보인다고 하잖아요?

대표적으로 군대, 배, 감옥과 같이...생각만 해도 꿉꿉하기 그지없는 시설에서 이런 경우를 참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저런 공간에는 남극도 포함되려나요?

2018년 러시아의 남극탐험기지인 벨링스하우젠 기지에서는 남극대륙 최초의 살인미수 사건으로 인해 연구원이 본국으로 송환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별 거 아니었는데, 바로 스포질이었습니다.

연구원 세르게이 사비츠키는 여가시간마다 기지 내 문고에서 책을 읽으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는데 기지에 상주하던 용접공이 그를 지나치면서 책의 결말을 까발려버린 것입니다.

훗날 연구원의 증언에 의하면 칼을 맞은 용접공의 악취미는 주변에 누가 책을 읽고 있는 걸 봤을때, 자기가 읽은 책이라면 결말을 술술 풀어버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말이죠.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면 족한데, 용접공은 책 읽고 있는 사람한테 대고 3절에 뇌절까지 계속 해댄 셈이죠.

같은 기지에 있었던 연구원의 말에 의하면 세르게이가 책을 읽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에이 그 책 이렇게 끝나는데~ 하면서 지나갔다고 합니다. 

벨링스하우젠 기지는 남극 본토가 아닌 킹조지 섬에 위치하여 나름 남국 본토에 비해서는 화창한 편입니다.

하절기엔 밖에서 운동도 즐길 수 있고, 따로 마련된 교회를 통해 신앙생활도 충족할 수 있을 정도로 벨링스하우젠 기지의 환경은 척박한 수준은 아니죠.

하지만...짜증나는 사람과 몇년 넘게 지내면서 삭힌 분노가 우발적으로 터지기에는 스포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아니랄까봐 술만큼은 거의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풍족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요?

벨링스하우젠 기지에는 술만큼은 보급 끊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동이 제한되어 사실상 갇혀있는 고독한 신세였으며, 이처럼 사소한 불화도 여러 가지가 제한된 답답한 환경에서 크게 번질 수 있다는 말을 증명하려는 듯이, 분노한 세르게이는 술김에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와 용접공의 가슴을 수 차례 찔렀습니다.

용접공은 가슴을 여러 차례 찔려 심장에 손상을 입었음에도 주요한 혈관은 빗맞은 덕분에 생명에 지장은 없었고 칠레로 후송을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남극대륙에서 일어난 이 초유의 살인미수사태로 인해 러시아에서는 남극에 경찰을 보냈으며, 연구원을 러시아로 송환해 살인미수죄로 구속시키는 등 한창 홍역을 치루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