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문명 카이로회담 한국 조항과 영국

댓글로 달려다가 글이 사라져서 따로 글을 파봅니다.

사실 원래 이 문제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영국이 한국의 독립을 꺼렸던 건 맞는 것 같습니다.

마치 지난해 11월 이 문제를 다룬 한 논문이 나왔더라고요.

[영국 측은] 다음으로 한국 조항과 관련해서는 미국 수정초안에 들어 있던 “우리는 일본에 의한 한국 인민의 기만적 노예 상태를 유념해, 이 국가가, 일본의 몰락 이후 적절한 시기에, 자유롭고 독립적인국가가 될 것이라고 결정한다”는 구절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가될것(shall become a free and independent country)”이라는 부분을 “일본 지배로부터 자유(해방)(shall be freed from Japanese domination)”로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회담에 참석한 중국 측 기록에는 “적절한 시기에 일본 통치에서 이탈(脫離)시킬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즉 한국이 일본 지배로부터 해방, 자유롭게 되는 것은 인정할수있지만, “독립된 국가”를 약속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은 인정하지만, 독립국가 약속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제국 체제·식민 체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 정병준, "영국의 카이로회담 인식과 카이로선언 한국 조항에 미친 영향," 역사비평, 145, pp.390-391

11월 26일 오후에 미국, 중국, 영국 측의 외교 실무진이 합류해서 영국 측 초안을 검토했다. 한국 조항과 관련해 영국 측은 원래 미국 측 초안에 들어 있었던 “일본 패망 후 적절한 시기에 그 나라가 자유와 독립의 국가가 될 것(that country, at the proper moment after the downfall of Japan, shall become a free and independent country, 成爲一自由與獨立之國家)”이라는 구절을 “적절한 시기에 일본 통치에서 이탈시킬 것(shall be freed from Japanese domination, 脫離日本之統治)” 으로 변경했다.

 

중국어 표현과 영어 표현상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는데, 원래 미국 측 초안에 있던 ‘자유와 독립’을 ‘일본 통치에서 이탈’(중국어 표현) 혹은 ‘일본 지배에서 해방(자유)’(영어 표현)으로 축소·변경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공약을 사실상 폐지하려 한 것이었다.

 

영국 측은 변경 시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국 관련 조항 전체를 삭제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1953년 대만에서 간행된 장기윤(張其昀)의 책에서 주장한 바, 카이로회담 도중 영국 외무 차관 캐도건이 카이로선언에 한국 독립 문제 삽입을 반대하며 다수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진술이 이 날 회의를 지목 한 것으로 판단된다.

 

 - 위의 논문, p.393

영국은 카이로선언에 한국 조항을 삽입하는 것 자체에 반대했으나,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시도가 무산되자 가급적 모호하고 불명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 위의 논문, p.397

영국은 무관심하고 이해관계가 없는 한반도에 개입하게 된 셈이었다. 1942~43년간 영국 정부는 영국 식민 체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중국의 한국 독립 승인 가능성을 봉쇄하는 데 집중했으며, 카이로회담에서도 한국 독립 조항에 소극적·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 위의 논문, p.398

물론 논문 하나가 언제나 정답인건 아니고 틀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마냥 신줏단지 모시듯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문가가 조사를 거쳐 근거를 가지고 내놓은 최신 논문인만큼 마냥 무시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이로회담 당시 영국이 한국 독립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했던 건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