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문명 명나라의 해금령을 충실히 지킨 조선의 원양항해 기준
- 깔바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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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정책(海禁政策)을 고수했던 조선정부는 대명률을 근거로 외양항해를 금지하였다. 외양항해금지령을 어겼을 경우 뱃사람뿐만 아니라 해당지역의 수령이나 병수사(兵水使)도 처벌하였다. 낮에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목표물을 통해 방향을 잡았고, 밤에는 별자리를 관측하여 항해하는 것이 연안항해의 일반적 항해술이었다.
연안항해를 규정하는 것은 조류와 바람이었다. 바람이 없을 경우 소형 선박들이 뒤에서 노로 밀어 대형선박의 운항을 돕기도 했다. 야간이나 안개가 끼었을 경우 나침반을 활용하여 방향을 잡았다. 야간항해도 주간항해에 비해 위험했지만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조선후기에는 선박의 규모가 점차 커졌다. 대형선박이 수심이 낮고 암초가 많은 해역을 통과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외양항로를 택하여 운항하였다. 외양항로는 바람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연안항해에 비해 훨씬 빨랐다. 외양항해는 18세기 후반 대형선박을 소유한 경강선인(京江船人)과 선상(船商)이 선도하고, 조운선과 지토선과 어선이 합류하면서 19세기에는 점차 보편화되어 갔다. 특히 연해지역의 개발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선점하려는 연해주민들의 모험심이 외양항해를 더욱 촉진시켰다.
고려시대에 비해 후퇴했지만, 조선시대의 해운은 정체 상태로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개항이후 서양 기선이 주도하는 외양항해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조선의 뱃사람들도 외양항해의 이점을 충분히 인지하여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시대 해운이 도달한 수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해운에서 조선사회의 내재적 발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원양 기준이 개판이라 백령도,대청도, 한산도 같은 섬도 원양으로 침
남해안 섬들도 내륙과 섬 사이 수로면 모를까 외부로 나가면 원양으로 여김
조선시대 선원들도 조수간만 심하고 암초 많은 내부수로보다 외부로 도는게 오히려 더 빠르고 안전한거 아는데도
안흥량이니 뭐니하는데 조운선이 침몰한 이유 = 원양항해 하면 안되니까
조운선 항로 정할때 조정에서 정한 포인트를 지나야하고 지나간 섬들 기록하게 만듬
조정에서 선원들 말 무시하고 저렇게 함
물론 중기이후쯤되면 무시할놈들은 ㅈ까하고 외양으로 돌긴하지만 일단 정부에서 막아놓은게 큼
명에선 북경과 거리먼 지방에선 응 먹고살려면 해운할꺼야하고 관리들도 우리애들 해운안해요하면서 묵인했고
융경제처럼 해금풀고 해운장려한 놈 튀어나왔고
청나라에선 정성공해결이후 해금풀었지만
조선은 그런거 없다였음
롤모델이 송이나 원이었음 그래도 나았을거고
차라리 지방장악력 모자랐음 지방에선 알아서 했겠지만
롤모델이 중팔이와 주체의 명나라고 쓸데없이 지방장악력은 뛰어나서 망함
참고로 고종이 기범선 도입하면서 원양항해 열었더니 곡가안정 세수증가함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