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사춘기 소녀의 성장기, 그리고 보편적 트라우마 : <벌새>

솔직히 이거 잘 쓰고 싶은데 잘 쓸 자신은 없고, 그렇지만 리뷰하고는 싶어서 그냥 씁니다.

엄두가 안나지만 <벌새> 리뷰, 시작합니다.

1. 이별의 지속과 중첩

사귀던 남자친구 지완은 바람을 피우고,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지완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시 은희와 헤어지고, 

단짝 친구 지숙은 두려움에 은희를 배신하고,

자신을 좋아한다며 따라다니던 후배 유리는 좋아했던 것은 지난 학기의 일이었다며 은희에게 거리를 둔다.

가장 마음을 줬던, 믿었던 존재들에게 당하는 이별과 배신은 유리같은 것이다.

2. 끝없는 불안

은희의 부모는 서로 죽일 듯 싸우지만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TV를 보고, 은희의 세계는 한 번 무너진다.

문구점에서 절도를 시도하던 은희와 지숙은 문구점 주인에게 현장에서 잡히고, 지숙은 은희의 부모에 대해 실토한다.

문구점 주인과 은희 아버지의 통화를 통해, 은희는 친구로부터 버림받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경험을 한다.

상처를 입고 깨지고 배신당하고 버림받는 아픔을 겪는 사춘기 소녀 은희의 멘탈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3. 영지 선생님

한문학원 선생님으로 만나게 된 영지선생님은 어딘가 어른스럽고,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다정하다.

세상을 배워가며 불안과 아픔을 경험하는 은희에게 영지는 훌륭한 멘토이자 좋은 친구이자 언니이다.

영지는 깨지고 배신당하고 버림받아 벌어진 은희의 상처를 다시 꿰매주고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

어른스럽게.

4. 1994년, 보편적 트라우마

은희의 94년은 아픔이 참 많고, 혼란스러웠다. 지속적인 이별, 끝없는 불안.

외삼촌이 죽고, 김일성이 죽고, 성수대교가 붕괴한다.

은희의 언니는 천만 다행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영지는 그러지 못했다.

그 커다란 다리가, 어떻게 그 다리가 무너질 수가 있나.

5.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손가락을 움직여 보라

<벌새>는 김보라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듬고 영화적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사춘기 소녀의 세상 인식과 거기에서 비롯하는 혼란, 외로움, 아픔을 잘 그려낸 작품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의 보편적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 어마어마한 트라우마가 휘갈퀴고 간 자리에 우리는 다시 살아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손가락을 움직여보라.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