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봄날을 향해 걸어가는 겨울의 마지막 관문: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 2차전 수원FC-부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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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유, 오늘 봄날이네!"

  거주지에서 수원종합운동장으로 직행하는 19번 버스에 오르기 직전, 등산을 가시는 듯한 어머님들이 한 마디 하셨다. 이상하게 따뜻했다. 10도가 넘는 기온은 12월치곤 너무 따스하다. 그 따스함이 경기를 보러 가는 홈팀에게도 전달될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해봤다. 시즌 중후반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11위를 기록하고 K리그2 우승을 마지막까지 노렸던 저력 있는 팀 부산아이파크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며 이른 혹한기에 빠진 수원FC에게도 '봄날'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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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축구의 뜨거움에 반해서 입문을 택한다. 구단에서 고용한 응원단 대신 나와 똑같은 자격의 팬들이 확성기를 둘러매고 북을 치며 퍼뜨리는 함성은 다른 종목보다 간절하게 느껴진다. 축구는 저득점 종목이기에 역전은 다른 종목의 그것보다 더한 기적이다. 그래서 2:1이라는 다른 종목에선 별 게 아닌 스코어에도 사람들은 열광하고 축구장은 뜨거워진다. 그러나 기실 축구는 꽤 차갑다. 축구만큼 차가운 종목도 없다. 마냥 뜨겁고 인간적일 줄 알고 그게 좋아서 입문했던 필자는 고작 두 해만에 가장 얼음장 같은 경기를 경험했다. 승강 플레이오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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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경험한 승강전의 반대편 좌석은 하나의 상징색이 아니라 무지개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생에 가장 치욕스러운 무지개였다. 모든 구단으로부터 멸시받는다는 걸 오프라인에서 육안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도, 그걸 보여준 사람들의 악의도 참 많이 차가웠지만(물론 그 와중에 서울을 포함한 K리그 전 구단에서 선수를 수급받아야 하는 군경팀 팬들은 보지 못했다. 아산 무궁화 팬들은 오히려 다음 해 개막을 앞두고 해체 반대 서명운동을 해줘 고맙다며 티켓을 한 장 보내줬고, 그게 충남아산과의 인연을 만들었다.) 결국 가장 서늘한 건 이겨도 남는 게 없고 지면 끝이라는 희망 없는 근미래였다. 저날 이후로 국내축구를 많이 좋아하는데도 다른 팀 팬에게 괜히 벽을 치게 됐고 응원하는 팀 프런트를 무작정 불신하게 됐으며 승강플레이오프는 잘 챙겨보지 않는다. 아마 그때 먼저 리드하고도 이기지 못한 부산 팬들도 차마 경기영상을 돌려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매해 승강전마다 이유는 달라도 그만큼 큰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가 울어도 참 아픈 경기라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런 경기를 졸지에 직관하게 됐다. 지인 두 명이 수원FC 팬이다. 가끔 조원동에 모여 경기를 보고 근처 치킨집에서 회식 비슷한 걸 하는 게 일종의 루틴이다. 승강전 하나 보기 싫다고 올해 마지막 모임에 빠지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그래서 조원동에 갔다. 올해 마지막 축구라는 그럴싸한 명분도 있었다. 무지개떡만 봐도 기분이 나빠지는 승강전 PTSD를 뒤로하고 19번 버스에 올랐다. 기온이 겨울치고 따뜻했지만 뿌연 대기와 잿빛 하늘은 을씨년스러웠다. 절망적인 경기에 참 잘 어울리는 날씨였다.

 

경기 전: 여기는 수원일까 부산일까

  구원(舊怨)이 있다 보니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수원FC 쪽에 기운 게 사실이다. 엄연히 홈 관중석인 E석에 앉아서 양옆에 수원FC의 프로 2년차였던 2014년 유니폼을 입은 채 관람하는 친구들을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닐까. 그러나 스코어는 물론이고 경기장 분위기마저 마음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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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원정 팬이 굉장히 많았다. 원정팬 자격으로 수원종합운동장을 찾은 적이 있어 이 구장 원정석의 규모나 그림을 안다. 부산이 그려낸 그림은 웅장했다. 부산 팬들은 매진에 가까운 관중수와 홈팬보다 큰 환호 및 응원으로 선수들을 맞았다. 수원FC 팬들도 밀리고 있다는 걸 짐작한 듯 부산 선수들이 워밍업을 위해 입장할 때 평소와 다르게 야유로 맞았지만, 부산 팬들의 열기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산 팬들은 여세를 몰아 그들의 대표곡 "최강 부산"을 출발시키며 경기 전부터 챈트에 들어갔다.

 

  수원FC도 더 밀리면 홈 어드벤티지를 깎아먹는 지경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의식했는지 치어리더 공연과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 가변석 서포터들의 구호까지 엮어 최선을 다했지만 1차전을 이기고 온 부산의 온도를 뛰어넘기엔 역부족으로 느껴졌다. 어렸을 적에 주워들은 말이라 누가 한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이름난 장수는 "승패는 준비 즉 전쟁 전에 갈리고, 전쟁은 그저 이미 난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여기가 구덕인지 조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분위기 앞에서 10년 전에 스쳐간 그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부산의 현재 홈 구장이 사직의 아시아드라는 건 알고 있지만, 수원종합운동장의 분위기가 부산 쪽으로 흘렀대도 아시아드는 워낙 큰 구장이다 보니 그 경기장과 헷갈리진 않을 듯해 상대적으로 경기장의 외형이 비슷한 구덕으로 비유했다.)

 

  경기 전부터 홈인데도 압도적인 공기를 연출하는 부산 팬들에게서 결과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피어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킥오프 직전 수원FC 팬들은 북채로 박자를 자르며 "수원잔류"라는 네 글자 구호를 외쳤지만, 상대가 워낙 굳세다 보니 강고한 의지보단 바람 앞의 등불처럼 느껴졌다.

 

전반전: 승패는 정말 경기 전에 갈린 걸까

  전반의 양상 또한 경기 전에 조성된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풀백 자원을 4명이나 쓰며 실점하면 안 된다는 자세로 출발한 수원FC는 의도가 무색할 정도로 불안한 경기를 치렀다. 이 팀이 시즌 중반까지 1부에서 중위권 경쟁을 했고 11위로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팀이 맞나 싶을 지경이었다. 시작과 함께 쭉쭉 밀리더니 코너킥을 헌납한 수원FC는 툭툭 끊기는 공격전개와 서로 몫을 미루는 수비로 팬들의 속을 터뜨렸다. 전반 초반, 아직 0:0이었던 시점부터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인 수원FC 팬덤의 E석에서 자꾸만 한숨과 탄식이 들렸다. 승강전 같은 부담스러운 경기에서는 흐름과 분위기가 평소보다 더 중요하다. 경기는 이제 막 시작이었지만 공기가 너무 차가웠다. 홈 팬들이 바라는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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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풀백을 네 명이나 쓰고 오인표, 박철우를 사실상의 수비형 윙어로 기용해가며 측면을 두껍게 해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려 했던 수원FC 김도균 감독의 의도는 고작 15분만에 무너졌다. 공격 전개 도중 박철우의 백패스가 이영재의 발에 닿지 못하고 김찬에게 돌아갔다. 김찬은 빠른 판단으로 우고 고메스를 제치며 단독 드리블을 시도했고, 페널티 박스에 도착하자 오른쪽의 최준에게 공을 넘겨주며 막아볼 여지가 없는 골을 만들었다. 경기 전부터 기울어가던 흐름이 완전히 부산 쪽으로 떠나는 순간이었다. 최준은 정확히 수원FC 서포터 방향을 바라보는 세레머니를 했고, 정동호는 실점 직후여서 빨리 전개하고 싶을 법한데도 최준에게 다가가 항의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마도 1차전 첫 PK를 내준 순간부터 반파됐을 팀이 가진 분위기와 힘이 점점 더 빠져갔다.

 

  실점 장면을 돌아보자면 박철우의 미스가 결정적이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상대팀 진영으로 넘어가 있는 공격 전개 도중 나온 백패스 미스는 상대 입장에서 너무 공격하기 좋은 장면이었다. 더구나 박철우는 급박했던 수비 복귀 과정에서 우고 고메스와 잭슨 등 이미 적잖은 선수가 막고 있던 김찬의 중앙으로 달려갔는데, 이 과정에서 정작 포지션상 본인이 커버해야 할 좌측(부산 입장에서 우측)으로 뛰어가던 최준을 아예 비웠다. 김찬의 시야가 이를 잘 잡아줬고 최준은 니어포스트 옆에 선 노동건 골키퍼가 가장 막기 힘들 방향인 파포스트를 선택하며 부산의 승격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무조건 이겨야 할 경기에서 전반 초반부터 실점하자 팬들의 원성도 더 커져만 갔다. 평소의 수원종합운동장에서, 그것도 E석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에 강등이 다가올 때의 무게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옆자리의 친구는 "내가 이딴 걸 왜 10년 봤지?" 를 읇조렸다.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다급해진 수원FC는 실점 전과는 다르게 공격을 퍼부었다. 라인업을 볼 때 당초의 목표였을 걸로 추정되는 무실점 승리는 불가능해졌고, 두 골은 잔류 확정이 아니라 연장전에 가려면 내야 하는 성과로 바뀌었다. 하프라인 앞으로 뛰어나가지 않으면 1주 전의 이웃처럼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강등을 맞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수원FC가 이날 인식의 전환이 빨랐고 평소 공격으로 경쟁력을 보이던 팀이기에 색깔의 변화 자체는 빨리 이뤄졌지만 애초의 구상과 다른 경기를 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중간에서 패스가 끊기는 건 부지기수였고 기껏 박스 근처에서 찬스를 잡아도 슈팅조차 하지 못한 채 수비에 막히는 장면도 계속 나왔다. 그나마 슛을 때렸을 때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부산의 구상민 골키퍼가 윤빛가람의 프리킥을 막아냈고, 전반 23분 김현과 추가시간 잭슨의 슈팅은 모두 옆그물을 맞히며 팬들에게 잠깐의 흥분과 오래간의 허탈함을 줬다. 지면 강등인 경기에서 그물이 흔들리는데 골이 아니란다. 얼마나 괴로운 상황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르는 팬들 사이에서 전반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합산 스코어 1:3, 침체된 분위기, 정확하지 못한 플레이. 절망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후반전: 축구에는 여전히 '절대'가 없을까

  누가 봐도 부산이 유리한 상황, 수원FC는 하프타임 교체로 로페즈를 선택하고 후반 초반부터 밀어붙였지만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골에 가까이 가고도 소득이 없는 장면을 반복하며 절망은 커졌다. 시작과 함께 부산의 코너킥이 나온 전반과는 다르게 후반전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마자 올라간 수원FC는 몇 번이고 아쉬움에 땅을 쳤다. 45분 크로스가 구상민 골키퍼를 지나치며 온 이광혁의 노마크헤더 찬스는 슛이 골대 옆으로 빗나가며 무산됐다. 직후에 나온 로페즈의 슛은 골대 상단바 아래쪽을 맞히며 수원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모두의 속을 태웠다. 50분엔 직전 찬스를 아깝게 놓친 이광혁이 구상민 골키퍼의 패스를 잘라낸 후 개인기로 수비수를 제쳐내며 결정적 기회를 만드나 했지만, 슛이 살짝 빗나간데다 골키퍼를 지나간 공이 골대 앞에 있던 윤빛가람에게 닿지 못하며 밖으로 나갔다. 바로 1분 뒤에 윤빛가람은 위협적인 슛을 때렸고 그것까지도 골대를 맞으며 어쩌면 선수들의 노력이나 팬의 열망과는 관계없이 이 경기 자체가 '안 되는 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55분, 정동호가 위협적인 오버래핑을 선보인 후 로페즈에게 한 연결은 또다시 살짝 빗나가는 슛으로 돌아오며 강등의 그림자를 짙게 했다.

 

  여기까지만 나열해도 숨이 차지만, 안타까운 장면들의 결정판은 60분에 나왔다. 로페즈가 때린 헤더슛이 윤빛가람의 몸을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전부 일어나 환호했지만 직후 주심이 센터서클을 가리키는 대신 손을 들어올리며 '그것은 골이 아니다'라는, 수원FC 팬들에겐 사형선고와 같은 선언을 했다. 저게 오프사이드가 맞냐고 물어보는 옆사람의 어조에는 더 이상 분노나 악 같은 게 남아있지 않았다. 물어보면서도 이미 체념한 듯한, 턱없이 낮은 높이의 말에 정말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70분 나온 김주엽의 헤더까지 빗나가며 나쁜 예감은 두꺼워져만 갔다. 후반 초반부터 부산이 밀리는 경기양상에도 부산 팬들의 콜이 커져만 간 것도 이런 경기장에서 뿜어져나오는 감정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었다. 축구에 절대는 없다. 하지만 결과가 정해진 듯한, 절대가 있는 것만 같은 시간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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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까지만 해도 다소 흐려 보이던 하늘은 후반이 되니 노을과 함께 밝아졌다. 수원FC도 90분의 경기를 24시간짜리 하루로 치환하면 뉘엿뉘엿 기울어갈 시간대가 되고서야 비로소 어둠뿐이었던 홈 경기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촛불은 김주엽이었다. 투입될 때만 해도 옆자리 지인에게 "지금 수비수를 넣는 게 맞냐?"는 핀잔을 들었던 김주엽은 들어오자마자 드리블 돌파를 보여주며 침체될 수도 있던 수원FC 공격에 한 번 더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수비라는 추측과는 다르게 윙어 위치에 들어간 김주엽은 이광혁과 좌우를 전환해가며 드리블, 크로스 등의 옵션으로 투입 전부터 얻어맞고 있었던 부산의 수비를 교란했다. 그리고 잇따른 찬스미스로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수원FC에게 숨을 불어넣던 김주엽의 발끝에서 경기 동점골이자 시리즈의 추격골이 시작됐다.

 

  78분, 중원에서 활로를 찾지 못한 우고 고메스는 롱킥으로 하프라인을 넘는 쪽을 선택했다. 왼쪽 측면에서 달리던 김주엽은 이 공을 머리로 받아 자신에게 붙으려 했던 김상준을 단번에 제쳤고 뜬공 크로스가 안 통한다는 걸 이전의 찬스미스로 알았던 건지 땅볼 패스를 선택했다. 이 패스가 김현에게 오차 없이 연결됐고, 김현은 완벽에 가까운 퍼스트터치를 통해 앞의 이한도의 왼발 견제를 무력화한 뒤 슛을 날렸다. 과거 의경 시절 후임이던 주세종의 슛폼이 연상되는, 뻗은 왼팔이 멋진 자세로 날려보낸 공은 크로스바 하단을 맞힌 후 골라인 통과. 전반의 부진과 후반의 불운에 몇 번이고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던 수원FC가 기어이 추격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쉬지 않고 이어진 공격시도로 분위기를 뺏는 데 성공한 수원FC는 이 골을 만든 후 비로소 뜨거워졌다. 경기 내내 냉랭하던 운동장이 노을과 함께, 변해버린 흐름과 함께 데워졌다. 첫 골 이후에도 수원FC의 공격은 멈출 줄을 몰랐다. 한 골을 더 넣어야만 연장전에 들어갈 수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지만 1차전 이후 2차전 전반까지 오랫동안 팀을 옥죄던 두려움을 비로소 깨부순 것만 같았다. 선수들은 실점을 무서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갔고, 팬들은 강등을 떠올리지 않고 구호를 외쳤다. 실전은 기세다. 승강전은 그 어느 다른 경기보다 분위기가 중요하다. 그 미신적인 명제는 7분만에 과학이 됐다.

 

  우고 고메스가 하프라인 뒤에서 또 한 번 길게 공을 보냈다. 중원에서 안 되는 전개를 시도하느라 시간을 잡아먹느니, 앞에서 공을 잡을 수만 있다면 미드필더들도 전방에 가세해서 공격 찬스를 만드는 게 골이 필요한데 잔여시간이 없던 그때의 수원FC에게는 나은 선택이었다. 이한도와 경합한 김현이 공을 페널티박스 바로 뒷편으로 보냈다. 거기에 이영재가 있었다. 1주 전 같은 경기장에서 열린 제주전에서 믿기 힘든 프리킥골을 만들었던 수원FC의 주장 이영재는 또 한 번, 후반전이기에 그때와 같은 위치의 골대를 향해 달렸다. 뒤에서 쫓아오던 박동진과 옆에서 마크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서있던 이승기는 모두 쇄도하던 이영재를 막을 수 없었다. 직전에 김현과 경합한 후 같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느라 미처 슛을 때릴 선수가 누군지 파악하는 게 늦은 이한도도 마찬가지였다. 졸지에 디플렉션 시도가 늦어버린 이한도와 영역이 겹친 최준도 이영재가 때리는 공에 발을 갖다대지 못했다. 분명 수비숫자는 많았는데 전부가 각자의 이유로 상대의 킥 에이스를 놓친 대가는 원점으로 돌아가버린 경기. 상황과 판단, 실력이 겹쳐 네 명을 전부 피한 이영재의 왼발 슛은 오른쪽 골망 그물을 부드럽게 때리며 내내 속이 터진다던 수원FC 팬들의 눈물을 터뜨렸다. 현상유지만 해도 90분에 강등이라는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다.

 

  동점골까지 터진 후 양팀은 운명을 가를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부산 라마스가 위협적인 위치에서 슛을 날렸지만, 이용에게 막히며 무산됐다. 결국 선제골 이후 부산 팬들이 확신할 만도 했던 90분 강등은 결정되지 않았고, 수원FC 팬들이 소원으로 바랐을 연장이 다가왔다.

  (다만 라마스의 슈팅 직전인 94분 있었던 잭슨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승기의 얼굴을 발로 가격하는 장면에서 나온 심판진의 대처는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을 걷어내려고 한 잭슨의 의도나 이승기가 잭슨의 클리어링 판단 내지는 소유권 확보 이후에 경합을 시도했다는 심판진의 판단으로 추측되는 논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파울콜은 선수보호가 우선이 될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에 맞는 결정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발에 얼굴을 맞고 공이 하프라인을 나갔다 들어와 부산의 슈팅으로 이어질 때까지 이승기가 일어나지 못하던 상황에서 경기 중단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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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에 절대는 없다. 가끔 우리는 그게 언제나 들어맞는 진리인가 헷갈려한다. 현격한 차이, 도무지 바꿀 수 없을 것만 같은 분위기. 그런 여러 가지 상황을 맞이하는 순간 절대 뒤집힐 수 없는 뭔가는 존재하는 것만 같다. 마음이 약해진다. 이날 경기의 후반은 존재의 위협을 받던 진리가 '진리'라는 언어에 걸맞는 힘으로 위상을 회복해가는 과정이었다. 축구에 절대는 없다. 절대 바꿀 수 없는 위기는 없다. 180분 경기에서 반올림하면 170분을 뒤진 수원FC는 남은 12분 동안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180분보다 훨씬 가치가 클 30분을 새로 얻어냈다. 그렇게 다시 '절대는 없다'는 말은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갔다.

 

연장전: 우리는 왜 축구를 못 끊을까

  우리는 축구를 욕한다. 뜨거움을 기대하고 들어간 경기에서 지울 수 없는 패배나 원치 않던 순위테이블같은 차가움을 맛보면 축구를 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주 볼수록 절망하는 빈도가 늘어가고, 우승을 경험하는 팀의 팬들조차 팀을 신뢰하지 못하고 비판하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끝까지 축구를 보는 이유는 뭘까? 비록 괴로워하는 시간보단 훨씬 적지만, 힘들어하면서도 붙잡았던 축구가 생각지도 못했던 드라마를 쓰는 날이 오면 누구보다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FC 팬들에게 이날 경기의 연장전은 그런 드라마와도 같았다.

 

  수원FC는 감독과 대부분의 선수들이 바뀌었지만 구단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공격축구를 통해 기억을 만들어가는 팀이다. 2015년 첫 번째 승격과 2016년 구단 첫 K리그1 시즌의 팀컬러는 이른바 '막공'이었다. 두 번째 승격을 이룬 2020년 이후론 승점 동률 시 다득점을 득실차보다 앞에 두고 순위를 결정하는 K리그에 맞춘 팀 색깔인지 실점이 많아도 득점을 많이 하는 축구를 해왔다. 이러한 축구가 불안불안했음에도 이어져 어느 정도 통한 결과가 지난 두 시즌의 5위-7위였다. 60실점에 가까운 기록으로도 중위권에 자리잡은 건 팀에게 긍정적인 신호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한계가 드러났다. 도합 80실점이라는 말이 되지 않는 기록이 나왔고, 뒤에서 너무 심하게 흔들리니 앞에서도 안정적으로 득점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주요 공격자원이 이탈하는 바람에 팀 득점은 50득점으로 줄었다. 17실점을 더 하고 6득점이 줄었다. 살아남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팀의 부진이 장기화되며 라인을 내리는 경기는 늘어갔고, 그럼에도 실점과 패배 또한 늘어갔다. 팀컬러를 잃으면서도 실리를 얻지 못하는 최악의 과정에 놓인 것이다. 어쩌면 승강플레이오프 1차전과 2차전 전반도 그 연장선상일 수 있었다. 1차전에선 막판 밀집수비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페널티킥 두 개였고, 2차전에선 풀백 네 명을 선발로 기용하고 15분만에 실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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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이야기하지만 수원FC는 구단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공격축구로 결과와 좋은 기억을 만들어왔다. 선수단은 이날 후반에 들어서야 그걸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후반 막판에 가서 두 골을 뽑아낸 수원FC는 체력부담에도 불구하고 거칠 것이 없었다. 연장전이 시작되자마자 로페즈가 페널티박스까지 달려가서 모두가 철렁할 만한 슛을 날렸다. 이게 빗나갔지만 홈팀의 공격은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뒤가 없다면 잘 하는 걸 하는 게 맞다'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사실을 자각한 것 같은 극적인 경기력이었다. 전진패스와 페널티박스 안으로의 공 투입은 계속됐고, 고작 5분만에 결과가 나왔다. 연장 교체투입된 정재용의 원터치패스를 받은 이광혁이 역시 90분 이후 그라운드를 밟은 김정환을 제치고 이한도 앞에서 때린 슛이 안쪽으로 감겨 골대 왼쪽 끝으로 빨려들어갔다. 김정환이 박스 안쪽이라는 걸 의식한 듯 수비 도중에 양손을 들고 파울이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갑작스럽게 로페즈에서 이광혁으로 마크맨이 바뀐 이한도가 찰나의 시간에 이광혁의 슛 타이밍을 예상하긴 어려웠다. 정규시간의 7/9가 지날 때까지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역전이 일어났다. 수원FC 팬들도 하루종일, 어쩌면 몇 주 동안 졌을 불안을 그제서야 내려놓은 채 환호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쩌면 정말 대본으로 나와도 작위적이라고 욕을 먹을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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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환호가 끝난 후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내 수비가 무너져 결국 경기당 2실점이라는 자동강등이 이상하지 않을 기록을 목도했으니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수원FC는 이 불안감도 연장 전반이 끝나기 전에 지웠다. 101분 부산이 하프라인 인근에서 패스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모습이 있었다. 민상기의 전진패스를 받은 이승기가 이영재의 압박에 급하게 리턴을 줬는데, 이 패스가 목적지로 가는 동안 윤빛가람이 민상기를 향해 달려나갔고 민상기의 다음 패스를 잘라냈다. 이후 윤빛가람은 스텝이 꼬이며 휘청이면서도 자신의 커트와 함께 앞으로 달려나가던 로페즈에게 전진 패스를 전달했고 로페즈는 전진하다가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수비 3명을 직접 상대하는 대신 반대편의 정재용을 선택했다. 김찬-최준으로 이어진 부산의 선제골과 비슷한 과정으로 수원FC의 쐐기골이 터졌다. 정재용이 왼편으로 달리면서 왼발로 결정하는 게 자연스러운 각도였지만, 몸을 틀어 주발인 오른발로 마지막 슛을 하는 디테일을 보여준 건 덤이다. 경기 스코어 4:1, 시리즈 스코어 5:3. 이제는 내내 불안해했거나 해탈한 채 경기를 지켜본 옆사람들조차 선 채로 환호했다. 끝내 수원종합운동장의 공기가 3면 홈 팬의 공기로 바뀌었다.

 

  사흘 전 머나먼 부산에서 90분을 뛰고 돌아와 치른 120분 경기. 지치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수원FC는 유효한 공격을 이어나가며 오늘 경기의 첫 골 이전에 겪은 168분이 몇 해 전으로 보이는 양상을 고수했다. 로페즈와 이광혁이 한 번씩 더 뛰어나가 유효슛을 만들었고, 구상민 골키퍼가 전부 몸을 날려 막아내며 마지막 희망을 이어갔다. 조금 전과 정반대의 처지가 돼 어떻게든 골을 넣고 봐야 하는 부산은 점유하며 공격장면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수원FC는 상대의 실수가 있을 때마다 하프라인을 넘어 페널티 박스 근처로 공을 몰고가며 부산이 맘대로 전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아직 모른다'는 수원FC 팬들의 불안감은 조금 늦긴 했지만 현실이 됐다. 114분 최준이 박스 안에서 올린 크로스가 마크맨이 유일하게 없던 김정환의 머리로 정확하게 들어갔고, 김정환은 수비에서의 아픔을 만회하듯 노동건 골키퍼가 움직이지 못하는 코스로 공을 때려 만회골을 만들어냈다. 합산 스코어 5:4. 연장을 치르는 몸보다도 순식간에 경기가 뒤집히는 걸 지켜본 속이 더 아플 텐데도 끝까지 달리는 부산의 에너지 또한 대단했다. 5골을 넣고도, 120분 중 6분만을 남겼음에도 긴장이 떠나갈 줄을 몰랐다. 종료 후 지인들은 승리의 기쁨보다도 평소의 축구 관전보다 훨씬 심각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그럴 만한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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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피로감이 끝까지 박빙이었던 승부로 긴장한 결과인지, 정말 다 끝나는 시간에도 계속된 골 폭죽으로 좋아했던 여파인지는 그들만 알 것이었다. 116분, 조금 전 추격골을 얻어맞은 수원FC의 간담을 조이는 이승기의 코너킥이 노동건 골키퍼에게 잡혔다. 윤빛가람이 노동건에게 손짓해 얻은 공을 수비 두 명을 가로지르며 패스해 앞쪽에서 달리던 이광혁에게 뿌렸고 이광혁은 전진하다가 페널티아크 바로 앞까지 뛰어온 윤빛가람을 다시 찾았다. 부산이 동점골을 뽑아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수비 숫자가 많지 않았다 보니 전진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윤빛가람이 감아때린 공은 구상민 골키퍼가 집중력을 보이며 다이빙 세이브에 성공했지만, 공이 글러브에 맞는 순간 뛰어들어간 로페즈까지 막기는 힘들었다. 합계 6:4, 남은 시간 3분. 양팀 선수단이 사흘 동안 부산과 수원을 오가며 총 207분을 소화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스코어 변동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로페즈 또한 양팔을 연신 가로지르는 세레머니를 펼치며 '게임 셋'을 선언했다.

 

  부산은 1주 전까지 K리그2 우승으로 인한 자동승격이 가장 유력했던 팀이다. K리그2 득점왕이나 MVP가 K리그1로 이적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듯, K리그2 우승팀도 K리그1에서 경쟁력을 증명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곳에 가까이 갔던 부산의 경쟁력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넘어갔다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수원FC가 전반에 보여줬던 맥을 끊는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 뒤집거나 동률을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에 심적으로 무너질 만한 지점이 와도 포기 같은 건 알지 못했다. 박스 혹은 인근으로의 공 투입이 이어졌다. 라마스는 마지막 실점 이후 세 번이나 주발인 왼발로 슛을 때렸다. 살짝 빗나가거나 노동건 골키퍼가 정면임에도 잡지 못하고 쳐내는 등 위협적인 상황은 계속됐다. 마침내 온 종료휘슬 직후 수원FC 선수들이 죄다 쓰러져버린 건 자신들이 극적인 경기를 해 목표를 이뤘기 때문도 있지만, 부산이 아무리 큰 펀치를 얻어맞아도 다시 달려들어 목에 칼을 휘두르는 장면을 목도하며 힘이 빠졌기 때문도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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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분 39초, 수원FC의 노동건 골키퍼가 골킥을 차기 직전. 김종혁 주심의 종료 휘슬로 210분짜리리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수원FC는 K리그1에 남을 자격을 정규시간 종료 12분을 남기고 퍼부은 화력전으로 증명했고 부산은 K리그2 위너 및 K리그1 승격 컨텐더가 되려면 가져야 할 끈기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양 팀 모두와 별 관계가 없는 입장에서도 2023년 최고의 경기라고 망설임 없이 꼽을 수 있는, 내내 휘몰아치는 한 판이었다. 내내 축구를 욕하면서도 '이래서 계속 본다'는 말을 할 때 내놓을 만한 경기였다.

 

경기 후: 믿지 못할 드라마 끝에 온 수원FC의 봄

  수원FC는 이날 경기의 78분이 오기 전까지 너무 이른 혹한기를 치렀다. 수원 출신으로 원천중-수원고를 거치고 축구부 숙소가 수원에 있는 제주국제대에서 뛴 로컬보이 장재웅의 프로 데뷔골로 후반 막판까지 리드했던 1차전을 페널티킥 두 개라는 말 같지도 않은 수비력부족으로 넘겨줬고, 누가 봐도 팀의 에이스인 이승우는 불필요한 신경전이 화근이 돼 퇴장당했다. 2차전에 들어가서는 서리와 삭풍이 더 심해졌다. 실점하지 말자는 의지로 짠 사실상의 6백 라인업을 두고 15분만에 선제실점했다. 이유가 의욕이든 체념이든 집중력 부족이든 자멸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후반 내내 공격을 시도한 끝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5골 폭탄을 터뜨리며 잔류에 성공했다. 경기의 초반까지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위치에 선 것이다. 오후를 지나 저녁으로 가는 시간이 되어 경기가 마무리됐지만, 날은 여전히 12월에 두기엔 너무 따스했다.

 

  "아유, 오늘 봄날이네!"

  경기 전에 수원FC의 홈 경기장으로 향하는 버스 문앞에서 들었던 말이다.

  때이른 한겨울을 맞았던 조원동엔 그렇게 선수단과 팬들이 그득하게 지핀 불이 뜨겁게 타오르며 봄날이 왔다.

댓글 5

Aimyon 2023.12.10. 22:43
아이묭 - 봄날 좋읍니다 많이 들어주세요
댓글
나사로 2023.12.11. 15:11
정성이 대단한 글이네요. 수원이 끝까지 안심하지 않았고 부산도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아서 120분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느라 명치가 아파온 경기였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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