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염기훈 최후의 날, 빅버드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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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선수단 버스가 빅버드로 들어오는 모습을 실시간 송출하는 영상에서 양형모, 이종성, 장호익의 두발이 현저히 짧아져있었다. 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선곡

 

빅버드 팬캠을 잡아줄 때 배경음악은 대체로 아이돌 노래를 쓴다. 그런데 이날은 이무진의 <에피소드>와 잔나비의 <사랑하긴 했었나요...>가 쓰였다. <에피소드>의 가사는 결국 새드엔딩이고, <사랑하긴 했었나요...>의 가사에 대한 설명은 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빅버드에서의 선곡은 장내 아나운서 투맨이 한다. 선곡이 우연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민심은 너무나 많은 곳에서 나락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경기

 

전반과 후반이 너무나 달랐다. 전반은 활발한 좌우 전환과 전방 롱패스 혹은 스루패스로 공격을 주도했지만, 후반은 수세에 몰리더니 하프스페이스 혹은 그 주변에서의 슈팅에 맥없이 연속 실점하며 침몰했다. 무승부로 끝났어도 "버막"을 피할 수 없을 상황에서, 이 정도 결과라면 결말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분노

 

6경기 무승, 5연속 패배가 확정되고 빅버드 N석은 분노에 휩싸였다. 경기 시작 전 올라온 걸개들이 다시 올라왔고, 콜리딩으로 시작된 <대답없는 메아리> 이후 콜리딩 없이 퍼지기 시작한 "염기훈 나가" 콜에 라 반다 데 우만이 합세했다. 선수단과 코치진이 N석으로 올 때 일부가 "나가뒤져라" 콜을 했지만 현장팀뿐 아니라 일반 팬들까지도 하지 말라고 제지하고 "염기훈 나가" 콜로 덮었다. 이 순간까지 염기훈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게이트를 나간 팬들은 구단 차량 출입구로 모여들었다. 예상된 "버막"의 시작이었다. 앰뷸런스, 심판 자가용, 상대팀 서울이랜드 구단 차량을 평화롭게 내보내고 나면 구단 차량 출입구는 급조된 전위대의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함께 봉쇄되었다.  

 

인사

 

100분 가까운 기다림 끝에 오후 10시 30분 경, 박경훈 단장과 염기훈 이하 코치진 등 구단 관계자들이 걸어나와서 팬들 앞에 섰다. 박경훈 단장이 "감독님이 죄송한 말씀을 하시겠다"며 발언권을 염기훈에게 넘겼다. 그리고 이어진 염기훈의 발언은 자진사퇴 선언이었다. 발언 중간에 "염기훈 나가"를 외친 팬은 다른 팬들의 성토를 받았다. 염기훈은 말을 이어나가고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강등 당일 이후 처음으로 염기훈 개인 콜이 울려퍼졌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그곳에 있던 팬들을 휘감고 있었다. 그가 나가는 것이 팀을 위해 합당하고 또 그것을 바랐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과 그에 대비되는 찬란한 과거가 주는 씁쓸함이 염기훈 개인 콜이라는 마지막 인사를 만든 것 같다. 잠깐의 개인 콜, "힘을 내라 수원" 콜 이후, 팬들은 빠르게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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