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퇴보하는 2024 한국축구, 이제 트렌드는 ‘사유화’?

뒷걸음질만 치는 2024년 한국축구, 이젠 하다하다 사유화가 유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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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울산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감독으로 정해졌다. 반복되는 준우승에 울던 울산을 리핏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놓고, “울산의 레거시를 만들고 싶다던 감독은 하루아침에 자신이 전성기를 누리던 곳에서 암흑기를 겪은 곳으로 추락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새 감독 선임을 차일피일 미루며 전례를 찾기 힘든 임시 감독체제만 두 번 치른 건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된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선홍 당시 U23 대표팀 감독(현 대전)에게 A대표팀 임시 감독을 겸임시켜 갈팡질팡하게 만든 결과, U23 대표팀은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라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애초에 월드컵을 기점으로 감독 선임 및 임기 수행 사이클을 만들어 둔 협회가 정상적 임기(4)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감독을 바꿔야 했던 귀책도 자신들에게 있다. 협회는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 당시 정립해 둔 시스템을 전부 거스른 채 지도력과 최근 경력이 의문스러웠던 위르겐 클린스만을 선임했다.

 

그 결과 아시안컵에서 경기력적으로 큰 실패는 물론 황금세대를 데리고도 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때문에 저런 감독을 도무지 월드컵까지 끌고 갈 수 없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경질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협회는 결국 자신들의 귀책으로 벌어진 파국을 수습하긴커녕 무능을 반복한 끝에 K리그 우승팀에 떠넘겨 버렸다.

 

예상은 물론 상식까지 한참 벗어난 감독 선임에 뒷말도 무성하다. 울산 구단과 팬들에 대한 홍명보 감독 책임론과 협회가 홍명보 감독에게 반강제로 감독직을 맡긴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한 축구계 취재 경력이 풍부한 기자에 따르면 홍명보 감독은 현재 연락 두절 상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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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많은 뒷말 중에서 하나에 집중해 보려 한다. 특정인이 협회를 사유화한 채 결정권을 휘둘렀기에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보가 몇 년째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주어나 목적어가 홍명보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국면에서 덜 주목받고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와는 가장 큰 관련이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홍명보 감독이 정확히 누구의 뜻으로 울산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어가며 국가대표 감독에 복귀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는 브리핑에서 최종 결정은 본인이 했고, 내정 발표 전 협회장에게 알리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작부터 홍명보 감독이 정몽규 회장의 최우선적 고려 대상이었다는 뜬소문 또한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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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 증상도 있었다. 김학범 감독(현 제주)은 본인을 지원하는 협회 인사가 김판곤 전 감독선임위원장(현 말레이시아 대표팀)에서 황보관으로 바뀐 후 올림픽에서 처참한 실패를 거뒀다. U23 대표팀의 후임 감독으로는 감독선임위원회가 후보군 면접을 다 끝내기도 전에, 협회 고위층의 의중으로 커리어가 꾸준히 하향세였던 황선홍 감독(현 대전)이 선임됐고 올림픽 본선 진출조차 하지 못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A대표팀 감독(현 무직)은 선임 과정에 대해 정몽규 회장에게 감독이 필요하냐고 농담했는데, 정 회장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는 다소 충격적인 인터뷰를 남겼다. 이러한 2020년대 초반의 난맥상은 2010년대 후반 한국축구의 각급 대표팀을 성공시킨 시스템이 완파되고, 그 자리에 윗분들의 독단이 들어찼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시스템이 만능은 아니다. 실패한 시스템은 개선되어야 하고,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파기 후 새 집을 짓는 일도 필요하다. 공고히 이어져온 전례를 깨고 외부인사를 단장 및 감독으로 영입해 구단 전반을 개편하려 하는 수원 삼성이 그 예시다.

 

그러나 김판곤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2010년대 후반의 감독선임위원회 체제는 엄연히 성공한 시스템이다. A대표팀의 벤투는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U23 대표팀의 김학범은 황보관을 만나기 전까진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낸 감독이었다. U20 대표팀의 김은중은 U20월드컵 4강을 이끌었고, 여자대표팀의 콜린 벨은 여자 아시안컵 준우승을 기록했다. 사실상 모든 대표팀을 발전시켰던 시스템이 사라지고 고위층의 일방적 결정에 대표팀의 향후 몇 년을 맡기는 체제가 들어선 이상, 한국축구는 전성기는커녕 망조를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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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A가 비록 몇몇 어르신들의 비난처럼 세금을 받는 집단은 아니지만, 후원사의 스폰서십과 한국 축구팬들의 관심으로 돌아가기에 어느 정도 공적 지위를 가진 곳이다. 과정이 투명해야 할 이유가 있고 성공한 시스템을 유지해 번영을 가져올 의무가 있는 집단이라는 소리다. 그러나 현재의 협회는 시스템을 팽개쳤고, 과정은 특정 고위층의 의중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협회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지리멸렬한 행보는 누군가 협회를 사유화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좋다. U23대표팀의 황선홍과 A대표팀의 클린스만은 모두 협회 고위층의 일방적 선임 아니냐는 의구심 혹은 감독 선임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취재에 의한 사실이 있는 결정이다. 공적 성격이 존재하는 단체의 결정을 특정인이 좌지우지하는 걸 흔한 표현으로 사유화라고 한다.

 

물론 그러니까 누가(내지는 어떤 한 사람이) 문제야!”라는 식의 일차원적인 비판 내지는 비난을 뿌려놓고 글에서 퇴장할 생각은 없다. 황선홍과 클린스만까지는 최고위층의 독단이라는 정황만 보이지만, 홍명보 감독 선임을 놓고는 다른 기류도 감지됐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고위 관계자만이 아니었다. 외국인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것을 식민 통치로 생각하기라도 하는 건지 외인 선임 및 후보군 포함 자체를 탐탁잖아하는 지도자들이 있었다. 성적이 최우선이라고 보기 어려운 U20월드컵에서의 성과를 두고 한국인 감독의 우수성을 주장하며 외국인 감독을 언제까지 고집할 건지 답답하다는 의견을 내는 단체가 있었다. 비슷한 주장은 전력강화위 내부에도 존재했다.

 

정확히 누구의 압박과 결정으로 판이 어그러졌는지는 알기 어렵다. 일개 방구석 백수인 필자에게 취재력이 있지 않고, 기실 기자들도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부 공개하기는 부담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축구협회가 누군가가 감독 선임 과정을 사유화해 망가뜨렸다는 비판을 피하는 것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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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 정당성보다 고위층이 원하는 감독이 중요하다는 쪽이나, “한국 대표팀엔 한국인 감독을 세워야 한다는 쪽이나 그들 개인의 뜻을 위해 멀쩡히 돌아가던 시스템을 망가뜨린 건 똑같기 때문이다.

 

지금은 2024년 하반기다. 벤투호의 황금기가 남긴 것들을 발전시키려면 충분히 할 수 있던 시간이 지났다. ‘유럽, 남미에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한국축구같은 것을 쓸 줄 알았던 지금 개인의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 나아가 한국축구 사유화를 다루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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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현장과 다를 바 없는 협회에서 고개를 돌려 리그를 응시하니 또다시 뒷목을 잡게 된다. 사유화는 심지어 협회만의 난장판이 아닌 것 같다. 3월 홈개막전 때 여론의 몰매를 맞고 끝날 줄 알았던 충남아산FC붉은 유니폼 사태는 놀랍게도 7월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구단 엠블럼도, 홈구장의 VAR 카메라를 보호하는 천막도, 심지어 구단이 내놓는 SNS의 탬플릿조차도 파랑색과 노랑색으로 이뤄져 있지만 선수단만 빨강색 유니폼을 입는 촌극이 세 달 넘게 반복되고 있다. 이유는 계속 바뀐다. 유니폼 발표 때는 이순신 장군의 장군복을 형상화했다던 구단은 논란이 되니 연 기자회견에선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정신을 계승하고 싶었다며 말을 바꿨다. 최근에는 이 유니폼을 입고 진 적이 없다고 해명을 또 번복하며 팬들의 복장을 터뜨렸다.

 

팬들은 이에 대해 정치적 개입 아니냐는 의문을 보내고 있다. 홈개막전에 연고지 시장과 도지사가 참석했다는 점, 해당 경기를 앞두고 서포터즈에게 붉은 깃발을 주려고 하면서 서포터즈와 무관한 응원가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는 주장이 있는 점이 의혹을 키운다.

 

사실 이 문제도 원인보단 다른 게 중요할지 모른다. 매번 바뀌는 이유는 그것이 이유가 아님을 증명할 뿐이다. 그렇다고 정치적 개입으로 단정 짓자니 총선이 끝난 후 해당 유니폼을 입은 빈도가 훨씬 많고, 다음 선거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최근에는 이 사태를 주도한 쪽이 축구팬들이 아는 사람과 다르다는 설도 흘러나온다. 길이 너무 다양한 방향으로 나 있다면, 하나를 택하는 것보다 여기로 오게 한 이유가 뭔지 뒤를 돌아보는 게 더 필요할 수 있다.

 

축구협회는 그나마 세금으로 돌아가는 집단이 아니지만, 이 구단은 공적 자금을 60억 원이나(충청남도 30+아산시 30) 지원받는다. 그런데 그래서라도 논란 없이 운영되고 이미지 실추가 없어야 할 구단에서 내부의 누군가가 시즌 내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목적이 뭔진 몰라도 사유화 소릴 듣기 딱 좋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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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색과 정확히 반대의 색을 시즌 내내 반발을 무릅쓰고 입히는 이유는 파악하기 어렵다. 정치 때문이라고 하자니 실효성과 시간 관계가 잘 맞지 않는다. 자꾸 바뀌는 해명은 해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선 이유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이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공적 성격을 가졌기에 덜컹거림이 있어선 안 될 단체에 파동을 일으켰기에 명백한 사유화라는 것이다.

 

2022, 대한민국 대표팀은 월드컵 16강에 복귀했다. 다음 해부터 K리그 관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표팀과 리그가 모두 최전성기를 구가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그 장밋빛 미래는 코로나19 같은 역병도 아니고, 다음 국제대회에서의 추락도 아니고 고작 누군가의 월권 때문에 망가지는 중이다.

 

2024년쯤 되면 대표팀은 일본처럼 메이저 대회 입상을 노리고, 리그가 영화관이나 OTT와 경쟁할 때가 됐다는 칼럼을 쓸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양쪽 모두에서 사유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글을 쓰는 필자의 모습이다. 이딴 게 협회와 리그를 가리지 않고 유행이라니, 한국축구는 명백히 퇴보한 것이 맞다.

 

댓글 4

베론 2024.07.08. 23:08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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