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감독은 도전하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지고 증명하는 자리입니다

"월드컵 대표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대실패로 끝난 2014 브라질 월드컵 직후 이영표 당시 KBS 해설위원이 남긴 말이다. 메신저에 대한 감정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메시지 자체는 맞는 말이다. 기실 월드컵 대표뿐 아니라 승부를 내고 결과로 책임져야 하는 자리는 모두 '증명'하는 자리다. 그 외의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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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은 10년 전의 실패로 깨달은 게 없던 걸까. 면접조차 하지 않아 논란을 자초한 뒤 얻은 국가대표 감독직을 '자신의 축구 인생 마지막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감독은 팀을 경쟁력 있는 도전자로 만드는 직책이지, 개인적 도전의 대상이 될 자리가 아니다. 팀을 총괄하는 자리에 책임보다 '나의 도전'을 앞세우는 건 자리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 백 번 양보해 규모가 큰 팀의 감독을 맡는 것을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맡은 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확신보다 개인의 야망을 우선한 결정이어선 안 된다.

 

"왜 수호신에서 아무런 (항의) 움직임이 없으신지 모르겠다. 더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올해 FC서울에 부임한 김기동 감독이 홈 5연패 시기 수호신 연대에 먼저 털어놓았던 말이다. 감독직의 덕목은 도전보다 책임에 있다는 걸 훌륭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기동 감독은 '내가 이 팀을 맡으면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서울에 왔다. 도전을 할 것이었으면 ACLE 티켓이 있고 서울보다 전 시즌 순위가 훨씬 높으며 스쿼드 변수는 많은 포항에서 하는 게 도전의 의미에 부합했을지 모른다. 다만 팀이 바뀌는 시기는 더뎠다. 해당 팀의 경기를 매주 보는 입장에서 방만한 스쿼드나 4년 연속 파이널B를 겪은 선수단의 멘탈 문제가 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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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기동 감독은 누가 항의하기도 전에 사과부터 했다. 속터지는 기량을 누구보다 자주 볼 입장에서 이유를 대려면 얼마든 댈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감독은 그런 자리다. 선수단을 책임지기에 다른 어떤 가치보다 책임과 증명이 필요한 자리. 김기동 감독은 '선제적 사과'로 책임을 졌고 이후 리그 5연승으로 증명을 했다. 바뀔 거란 확신이 있어서 책임을 졌고, 바꿀 만한 실력이 있어서 증명할 수 있었다. FC서울의 이번 시즌을 보면 감독의 자격은 책임과 증명이라는 걸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기간이 길든 짧든 감독의 결과가 없으면 일찍 책임을 질 수도 있다. 사퇴하려고 했다."

김기동 감독은 물론 명장이지만, 그의 자세가 다른 모든 지도자보다 특출나게 좋아서 책임을 진 건 아니다. 감독이라면 마땅히 책임져야 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건 상식에 가깝다. 충남아산의 사무국장에서 내부 승격(?)한 김현석 감독은 부임 후 고작 1로빈 12경기 동안 결과가 나오지 않자 대표이사에게 사퇴를 통보했다. 냉정히 말해서 상위권 전력을 갖춘 팀은 아니었고, 감독 또한 프로감독 자체가 처음이어서 구단이나 언론이 책임론을 제기하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사퇴 카드를 꺼냈다. 물론 대표이사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김현석 감독은 팀을 PO권으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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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원래 그런 자리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보여주지 못하면 책임지는 게 옳고, 개인의 욕심이 우선돼선 안 되는 자리. 김현석 감독은 능력에 비해 과분한 기회를 얻어온 황선홍, 홍명보 감독과 같은 세대다. 그러나 프로 감독직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독직 부임 이후 인터뷰에서 "오래 기다렸고 너무나 갈망했다"며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간절했지만 그런 마음을 팀의 부진보다 앞에 둘 순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취임 일성이 "내 축구인생 마지막 도전"이라는 어떤 지도자와 대조되는 행보다. 

 

"사과한다" (X) "이해한다" (O)

도전하는 자리가 아닌데도 도전을 언급한 홍명보 감독은 졸전을 펼치며 증명에 실패했고, 책임조차 지지 않았다. 역대 최고의 스쿼드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 대표팀이다. 전쟁통에 팀 훈련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소속팀이 없는 선수가 선발 명단에 포함된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홈에서 0-0 무승부라는 스코어를 냈으면 이유를 따지기 전에 증명에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3차예선의 한국 조에서 팔레스타인보다 FIFA 랭킹이 떨어지는 팀은 쿠웨이트 한 곳뿐이다. 증명 실패를 넘어 운영 실패를 부채질할 수 있는 상황을 어제의 홍명보 감독은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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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책임질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홍 감독은 경기력 부진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경기와 무관하게 현장에서 나온 비판에 대해선 '사과' 대신 '이해'를 언급했다.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팬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해한다는 말은 책임일 수 없다. 잘못을 당한 사람이 한 사람을 두고 이해한다고 할 순 있어도, 반대의 경우는 그래선 안 된다. 경기장 밖에서 벌어진 일까지 본인 책임으로 만든 사람이 '이해를 구한다'도 아니고 '이해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홍명보 감독은 감독이라는 자리를 둘러싼 모든 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선임의 정당성은 진작 깨졌고, 실력이 있느냐는 말이 많았지만 어제 경기를 봤을 때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감독이라는 직책에서 가져야 할 마인드는 올곧을까. 개인의 도전을 선택 이유로 밝히고 홈에서 정상적인 훈련도 할 수 없던 원정팀을 상대로 무득점해 증명과도 멀어졌으며 책임져야 할 때 '욕하는 당신들을 이해해요'라며 딴소리로 넘기는 모습을 보면 그마저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면에서 부족한 감독을 왜 선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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