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남아공의 축구에 대해서 알아보자 - 1- 남아공 축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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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들 아프리카 축구하면 무엇을 떠올릴까요? 대개는 디디에 드록바나 사무엘 에투, 투레 형제와 같이 주로 프랑스어권(서아프리카)에서 온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다재다능함을 뽐내는 선수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축구강국을 뽑자면 보통 어디가 뽑힐까요? 보통은 이집트나 알제리 등 주로 북아프리카의 아랍권 국가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서아프리카나 중앙아프리카에도 축구강국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동네 선수들의 평균적인 이미지에 비하면 자국의 축구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란 말을 들을 수준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축구 시스템이 가장 안정적으로 잡힌 나라는 어디일까요? 전통적으로 수준높은 선수들이 많은 서아프리카? 전통적으로 강세였던 북아프리카? 전혀 아닙니다. 바로 남아공이 아프리카에선 가장 안정적인 리그,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남아공하면 솔직히 축구부터 떠올리진 않잖아요? 앞서 언급한 드록바만 예를 들어도 사람들에게 코트디부아르를 말하면 백이면 백 드록바 내지 투레 형제부터 떠올릴겁니다. 반면에 남아공의 유명한 축구선수 누구 떠오르나요? 기껏해야 에버튼과 토트넘에서 뛴 스티븐 피에나르 정도만 떠오를 것이고, 이를 떠올리는 사람은 적겠죠. 주로 남아공하면 악몀높던 과거의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와 그 정책을 철폐한 넬슨 만델라, 그리고 월드컵까지만 떠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남아공 축구, 이번엔 그 축구의 역사에 대해서 한번 논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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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축구가 전파된 것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19세기 말에 영국 해군 장병들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의 축구는 케이프 타운 일부 지역에서만 퍼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엔 남아공의 일부만이 영국의 식민지였고, 네덜란드 이민자들의 후예인 보어인들이 만든 나라들과 원주민 줄루족의 국가가 남아있었기에 그랬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어 전쟁으로 보어인들의 나라는 모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마찬가지로 줄루족의 국가 등 원주민 국가들마저 정복하고 1910년에 통합 국가인 남아프리카 연방이 형성되어 축구는 남아공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그 시절에 남미를 돌면서 여러 팀들과 친선경기를 가지고, 잉글랜드인과 스코틀랜드인 이민자 출신 공무원과 은행가들을 중심으로 8개의 팀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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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시기는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이 깔렸던 시기이기에 백인들은 유색인종과 같이 경기를 뛰길 거부하고 축구협회를 따로 차리게 됩니다. 그로인해 남아공의 인종 구분에 따라서 인도인 축구협회, 반투인(남아공 흑인 부족들이 반투어 계통의 언어를 써서 이렇게 불렀음) 축구협회, 컬러드 축구협회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유색인종들의 축구협회는 또 합쳐지고 피파에 가입하고 뭐하고 엄청 개판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엔 본격적으로 남아공 축구에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1950년도 중반,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이 슬슬 독립국이 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아프리카 축구 협회(CAF)가 창설되고 57년엔 최초의 네이션스 컵이 수단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은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하여 CAF의 창립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강제 실격처리가 되고 맙니다. 물론 이정도는 양반이었습니다. 58년엔 CAF에서 남아공을 추방시키고, 60년엔 FIFA도 인종차별 정책을 이유로 추방시켰기 때문이죠. 이후 남아공이 CAF와 FIFA 재가입까지 무려 32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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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의 축구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습니다.  59년에는 최초의 프로리그인 내셔널 풋볼 리그(NFL)가 생겨났습니다. 물론 이 리그는 백인 전용 축구리그였습니다. 사실 인종차별로 인해서 흑인들은 프로리그를 만들 여력도 없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백인들은 영국에서 온 다른 스포츠인 럭비나 크리켓을 더 좋아했었고, 이 축구리그는 결국 시한부 축구리그에 불과했습니다. 뭐 그래도 나름대로 오래 버텨서 1977/78시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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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흑인들도 마찬가지로 리그를 만들게 됩니다. 유색인종들의 축구협회인 SASF에서 62년에 남아프리카 사커 리그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 리그는 66시즌을 마지막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정보가 좀 부족해서 저도 잘 모르지만 아마도 재정 문제가 아니였을까 싶네요. 그 당시 유색인종들의 수입이 백인들의 10%밖에 안되던 시절이니까요.

 

하지만 얼마 안가서 69년에 리그가 다시 생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하나가 아니라 두개가 생겨나게 되었죠. 하나는 컬러드-아시아인 리그인 페더레이션 프로페셔널 리그(FPL)이고, 또 다른 하나는 흑인들의 리그인 내셔널 프로페셔널 사커 리그(NPSL)입니다. 그리고 NPSL 창설 이후 다들 한번씩은 들어봣을 축구팀이 창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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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늘날까지도 남아공에서 가장 인기있는 축구팀인 카이저 치프스가 창단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프로리그였던 NASL에서 뛰던 카이저 모타웅이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뛰던 팀인 애틀란타 치프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이 팀은 창단하자 바로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랜도 파이리츠와 같이 리그를 지배하게 되었고, 이들의 더비 매치인 소웨토 더비(두 팀의 홈구장이 요하네스버그의 흑인 거주지인 소웨토에 위치했음)가 인기를 끌면서 축구는 흑인들에게 최고 인기 스포츠로써 입지를 굳히게 되었으며, NPSL도 이전과는 다르게 오래 버틸 기초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도 남아공엔 축구선수가 만든 팀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뉴욕 코스모스에서 뛰던 조모 소노가 똑같이 조모 코스모스라는 팀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NPSL은 백인들의 축구 리그인 NFL이 망하고 백인 팀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최초로 흑인이 백인을 이긴 사례니 나름대로 성취라면 성취일 수 있겠죠. 백인 팀들의 합류로 인하여 NPSL은 최초로 비인종적 리그가 되었고, 당시 백인 팀들은 리그에 들어오면서 팀당 흑인 선수를 세 명까지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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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리그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84년, 카이저 치프스를 비롯한 흑인 팀들이 불공정한 수익 배분을 문제삼고 리그를 탈퇴해 새 리그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1985년에 또 다른 축구 리그인 내셔널 사커 리그(NSL)이 생겨났고, 올랜도 파이리츠와 카이저 치프스등 많은 흑인 팀들이 건너가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1990년엔 따로 갈라져나왔던 FPL을 흡수하며 규모를 불려나갑니다.

 

그리고 NPSL은 독립적인 리그로 모든 리그가 통합되는 1996년까지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부터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기 시작했고, 새로이 생긴 통합 축구협회인 SAFA는 92년엔 다시 FIFA와 CAF에 복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넬슨 만델라가 1994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축구 리그의 통합도 가속화되었습니다. 덤으로 96년 네이션스 컵의 개최권도 확보했고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서 우승도 했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는 맥을 못추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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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1996년에 최초로 남아공에는 통합된 축구 리그인 PSL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부 리그는 PSL이 되었고, 2부 리그는 내셔널 퍼스트 디비전, NFL로 통합되어 현재도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후 PSL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정 구조가 뒷받침되면서 바로 아프리카 클럽 축구계의 맹주로 등장하게 됩니다. 꾸준히 성적을 내고 돈도 쓰는 몇 안되는 리그 중 하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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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유리한 조건들은 1999년, 아약스가 남아공의 축구 팀인 케이프 타운 스퍼스와 세븐 스타즈를 인수해 아약스 케이프 타운이라는 축구팀을 세우면서 남아공 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PSL이 아프리카에서도 수준급 선수들이 뛰는 무대이니만큼 좋은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 팀을 만들게 된 것이죠. 뭐 실제로 스티븐 피에나르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 이 팀은 아약스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뿐더러 남아공 축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렇게 남아공 축구는 인종차별로 인해 시작된 우여곡절들을 겪고 오늘날까지 왔고,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리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몇몇 인기팀들만 재정적 여유가 된다는 것이고, 아직도 하부리그 팀이나 비인기 팀들은 임금 체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파산해서 하부리그로 강등당하는 팀들이나 사라지는 팀들도 만만치않게 많죠. 또한 재정적 이유로 좀 더 큰 도시로 연고이전을 하는 경우도 아직까지 있습니다. 게다가 남아공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져가는 것도 불안요소 중 하나고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PSL이 그나마 아프리카에선 가장 가능성이 있는 리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아공이 경제나 치안, 정치같은 여러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안정적인 것도 있지만, 그동안 인종차별에 뭐에 온갖 위기를 다 겪고 그 모든 것들을 극복했는데, 이정도는 솔직히 쉬운 문제에 속하니까요.

 

 

다음 편으로는 구단 소개로... 읍읍

 

 

 쉬벌 글 좃도 못쓰는데 읽어줘서 ㄳㄳ

 

댓글 12

아방뜨 2018.08.17. 03:57
아약스 케이프타운 강등~~~~
댓글
아방뜨 2018.08.17. 03:59
 타가메_겐고로
ㅅㅓㅇ남도 바로 승격할 줄 알았죠...

농담입니다 진지빨고 우승할 듯 ㅇㅇ
댓글
아방뜨 2018.08.17. 12:36
 타가메_겐고로
올릴거임 ㄱㄷㄱ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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