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에비야의 더 레전드] 론 웹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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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전드 11 : Der Legend 11]

 
더비 카운티의 레전드 선수들을 알아보는 시간, 더 레전드("Der"by county Legend)입니다.
 
역대 베스트 11인은 2009년에 공식으로 선정된 멤버들입니다.
 
이 컨텐츠는 비정기적으로 업로드됩니다.
 
세 번째 선수는, 라이트백인 론 웹스터 (Ron Webster)입니다.
 
2편 데이비드 니쉬 : 펨네 참조
 
토니 아담스, 파올로 말디니, 그리고 론 웹스터. 이들의 공통점을 혹시 아시나요?
 
그들은 모두 수비수이지만, 원클럽맨이기도 합니다.
 
미네소타 킥스로 단기 임대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그는 더비 카운티의 암흑기, 부흥기, 전성기, 쇠퇴기를 모두 함께한 원클럽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론 웹스터는 1960년 15세의 나이로 지역팀인 더비 카운티에 입단하게 됩니다.
 
그는 1943년 6월 21일 더비셔 주에서 출생했기에, 자연스럽게 지역 연고팀인 더비 카운티에 입단하게 된 것입니다.
 
1960년 더비 카운티에 입단하여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스팀에서 큰 두각을 드러냅니다.
 
1962년 3월 24일 베리전, 그동안의 기대를 인정받아 18세의 나이로 프로 무대에서 데뷔하게 됩니다.
 
베리전에서 굉장히 단단한 수비를 보여주며 팀의 0-0 무승부를 이끌었고, 그는 이후 남은 5주 동안 7경기를 출장하며 61-62 시즌을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62-63 시즌과 63-64 시즌은 부상으로 단 11경기만을 출장했습니다.
 
웹스터가 복귀하기 전까지 62-63시즌과 63-64시즌 더비 카운티는 최하위권에 머물며 팬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웹스터는 이 시기부터 라이트백 보다는 하프윙으로 많이 출장하게 됩니다.
 
64-65 시즌 웹스터가 복귀하며 더비 카운티의 수비와 공격은 전 시즌보다 향상되었고, 순위 또한 18위(62-63), 13위(63-64)에서 9위로 오르며 웹스터는 그의 중요도를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팀의 전체적인 수비는 아직도 불안정했고, 공격 또한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팀 워드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그는 많은 돈을 쓰고도 끔찍한 성적을 보여주며 경질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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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2월 12일 아스날전 (원정) 0-0 무승부 당시)
 
1967-68 시즌, 새로운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가 부임하고 론 웹스터는 다시 라이트백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시즌 더비 카운티는 전 시즌보다 더 안좋은 성적인 18위를 기록했습니다.
 
브라이언 클러프 역시 많은 영입을 했기에, 수많은 비난이 그에게 쇄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비난은 금방 사라졌는데, 다음시즌인 68-69 시즌에는 우승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브라이언 클러프는 팀을 1부리그로 인도했고, 더비 카운티의 전성기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론 웹스터는 67-68 시즌 38경기를 출장하며 브라이언 클러프 아래서 그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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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8월 27일 노팅엄 포레스트전 (원정) 3 - 0 패배 당시)

 

1971-72 시즌, 더비 카운티는 초반 12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며 이 시즌의 결과를 예측하게 했습니다.

 

론 웹스터는 4경기를 제외한 전 경기에 출장했으며, 특히 우승 경쟁팀인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헤더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72-73 시즌 웹스터는, 고질병인 부상과 영건 스티브 파월의 등장으로 단 26경기에서만 출장합니다.

 

팀은 7위로 좋지 않은 시즌을 보냈으나, 유로피안 컵에서는 4강까지 진출하며 또 다른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 브라이언 클러프가 나가고, 론 웹스터는 다시 윙 포지션과 라이트백 포지션을 병행하며 뛰었습니다.

 

특히 더비 카운티가 다시 우승컵을 되찾은 74-75 시즌에는 공격쪽에서도 수비쪽에서도 매우 훌륭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남은 시즌 동안 그는 후보 선수로 뛰며, 팀의 쇠퇴기를 지켜보았고 미국 무대를 임대를 통해 도전하며 1978년, 35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의 훌륭한 태클 능력과 팀에 대한 헌신은 많은 더비 카운티 팬들이 그를 사랑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케빈 헥터 다음으로 팀내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출장하며(리그만 455경기) 아직까지도 많은 더비 카운티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댓글 1

Papacito 2019.03.08. 17:50
캬 이때가 좋았지 태클팍팍해도 머라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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