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베갈타 센다이 창립사: 토호쿠 축구가 베갈타 골드로 물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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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석은 한중일 국민들이 공유하는 많고 많은 명절 중 하나다. 특히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칠석은 설날과 같이 중요한 명절로 여겨진다.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타나바타 마츠리(七夕祭り, 칠석 축제)가 열리며, 너도 나도 대나무에 탄자쿠를 달아 소원을 빈다.

 

미야기 현 센다이시에서 열리는 타나바타 마츠리는 무엇보다도 특별하다. 타나바타 마츠리의 대명사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가 성대하며, 매년 7월이 되면 센다이는 타나바타 마츠리를 즐기기 위해 전국 각지, 심지어 해외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타나바타 마츠리를 떼어 두고는 센다이를 논할 수 없으며, 센다이를 떼어 두고는 타나바타 마츠리를 논할 수 없다.

 

센다이의 칠석 사랑은 그들의 축구팀에도 영향을 끼쳤다. 센다이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 ‘베갈타 센다이’의 이름은 칠석을 상징하며, 창단 당시의 이름인 ‘브럼멜 센다이’ 또한 센다이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일본 축구팀이 대개 그러하듯, 긍정적인 지역 유착성을 팀명에 강조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긴 작명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일본 프로 축구의 태동기부터 황금기를 맞고 있는 지금까지 그들은 센다이를 대표하는 프로 축구팀으로서 센다이 시민들과 함께해왔고, 그렇기에 센다이는 언제까지고 ‘베갈타 골드’로 물들어있다. 오늘은 센다이를 넘어, 토호쿠 지방의 축구를 상징하는 ‘베갈타 센다이’의 창립사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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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브럼멜 센다이 창단 멤버)

 

 여느 J리그 팀들이 그러했듯, 베갈타 센다이는 실업팀인 ‘토호쿠 전력 축구단’을 전신으로 하고 있다. 1988년 창단된 토호쿠 전력 축구단은 1989, 1990년 미야기 현 축구 리그 연속 우승에 이어 1991년 마침내 토호쿠 축구 리그로 승격한다. 이후 그들은 3년 연속 준우승을 거두며 토호쿠 축구 리그에 신바람을 일으키고, 마침내 1994년 토호쿠 축구 리그 첫 우승과 함께 J리그 참가를 위해 프로축구팀으로 전환할 토호쿠 지역 축구팀으로 지목된다.

 

 1994년 11월, 마침내 토호쿠 전력 축구단은 ‘브럼멜 센다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여 프로 축구단으로 전환된다. 팀 컬러는 토호쿠 전력 축구단 시절과 같은 녹색이다. 팀명의 ‘브럼멜’은 영어로 ‘멋쟁이’를 뜻하는데, 이는 다테오토코(伊達男)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센다이 지방은 센코쿠시대 당시 독안룡(獨眼龍)이라고 불렸던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다스리던 지방이었는데, 멋을 중요시하고 심지어는 허세를 즐기곤 했던 그와 비슷한 남자들을 ‘다테오토코’라고 부르던 것에서 이 명칭이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사족으로 당시 ‘브럼멜이 이기면 금리가 오른다~’라는 광고가 TV 광고로 방송되곤 했는데, 후술한 내용에서 볼 수 있듯 실제로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고 금리도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브럼멜 센다이에 소속된 선수들은 감독 스즈키 타케카즈와 플레잉 코치 스즈키 쥰을 제외하고 모두 프로계약이 아닌 토호쿠 전력 사원 신분을 유지한 채로 다음 시즌에 임하기로 했다. 당시 일본 프로 축구는 아직 알을 깨고 나오는 상황이었고, 선수들은 기존 직장(토호쿠 전력)이 있었기에 나온 결과로 보인다.

 

 당시 막 JSL 리그에서 본격적으로 프로화된 J리그로 개편한 시기라(1993년 J리그 창립), J리그 참가 자격을 얻고자 하는 많은 신생 구단들과 JSL에 참가했던 구단들이 JFL(구)에 참가했다. 참가 팀들 중에서 우리들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구단들이 있다. NEC 야마가타(現 몬테디오 야마가타), 후치츠(現 카와사키 프론탈레), 토스 퓨처스(現 사간 토스), 도쿄 가스(現 FC 도쿄), 비셀 고베 등이 대표적이다. 브럼멜 센다이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고, 1월에 열린 대회에서 예선 2승 2무, 본선 2승 1패로 우승을 거두며 JFL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된다.

 

 JFL 첫 시즌에는 베르디 카와사키(연고 이전하여 현재는 도쿄 베르디가 되었음)로부터 선수들을 영입, 팀을 단단히 보강했으나 16위 중 15위라는 끔찍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러 요건에 있어서(경기장 등) 토호쿠 지방에서 J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프로 팀으로 인정받게 되어, J리그 준회원이 된다. J리그 진출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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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브럼멜 센다이 선수단. 전광판에 보이는 ‘토호쿠 최초 J리그 팀을!!(만들어내자)’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브럼멜 센다이에 있어서 1996년은 대대적인 개혁이 결실을 맺는 해라고 할 수 있었다. 라이선스를 지닌 상위 2팀이 J리그로 승격하는 당시, 개막 후 5연승을 달리며 브럼멜 센다이는 일치감치 1위를 확정 짓는 듯 했다. 그도 그럴게, 1996년을 준비하며 브럼멜 센다이는 J리그에 소속된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치바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코치 사토 쵸헤이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고, 서독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피에르 리트바르스키를 영입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94년 J리그 득점왕에 빛나는 프랑크 오어덴비츠, 명망 있는 에치고 카즈오를 영입하여 95년의 충격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선언했다.

 

 하지만 순항의 기쁨은 잠시, 팀은 패배 행진을 거듭하며 결국 시즌을 6위로 마무리했으며, 감독 사토 쵸헤이는 사퇴하기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5위로 마무리했다는 말도 있으나, 당시 순위표를 조사해본 결과 대부분의 사료가 5위 콘사돌레 삿포로가 6위 브럼멜 센다이를 8점차로 앞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승격 실패라는 공황에 빠진 브럼멜 센다이는 다시 한 번 개혁을 단행한다. 前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브랑코 엘스너 감독을 선임했으며, 나나키타 공원에 신구장인 센다이 스타디움(現 유어텍 스타디움 센다이)을 건설하며 다시 J리그로의 도약을 노린다. 하지만 10R에서 이미 팀은 3승 7패로 바닥을 기고 있었고, 브랑코 엘스너 감독은 전임 감독 사토 쵸헤이와 마찬가지로 감독직을 떠난다. 구단은 키퍼 코치로 일하던 밀로스 러스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 시켜 재도약을 노렸으나,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지난 시즌보다 2계단 아래인 8위로 시즌을 마쳤고, 러스 감독도 팀을 떠난다. 일부 사료에서는 당시 코치로 있었고 덴노배에서 감독대행을 맡던 토시야 미우라가 러스 감독이 떠난 이후 잠깐 팀을 맡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

 

 어쨌든 다시금 승격에 실패한 브럼멜 센다이. J리그가 1999년 J2리그 발족을 공언함에 따라 구 JFL 리그는 1998년을 기해 역사로 사라지는 것이 결정되었다. 이에 1998년은 그들이 J1로 승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작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브럼멜 센다이 초대 감독인 스즈키 타케카즈 감독을 다시 모셔온다. 유스 육성으로 소문난 이키 요지 감독을 총감독으로 선임하며, 구 JFL에서 J1로 승격하기 위한 싸움에 총력을 다한다.

 

 18승 12패를 기록하며 1996년과 같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1997년 개편된 승점 룰로 인해 정작 승점은 1996년의 56점보다 13점 낮은 43점으로 마무리했으며, 순위도 7위로 전 시즌에 비해 큰 반등을 일구어내는 것에는 실패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96년 당시에는 승리할 경우 승점 3점, 연장전에서 패배할 경우에는 승점을 얻지 못하지만 승부차기에서 패배할 경우 1점이 주어지는 승점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반면, 1998년에는 90분 내에 승리할 경우 승점 3점, 연장전에서 승리할 경우 2점, 승부차기에서 승리할 경우 1점, 패배할 경우에는 승점이 주어지지 않는 승점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연장전 승리(5승)을 기록하고 있었던 브럼멜 센다이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시즌이었고, 결국 J1이 아닌 J2 리그에 참가하며 정든 구 JFL을 떠나게 된다. (이후, JFL은 현재의 JFL로 개편되어 재창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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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베갈타 센다이 20주년 창단 기념, 베갈타 OB와 유벤투스 레전드의 친선경기)

 

 J2리그의 창립 멤버로 새 시즌에 임한 브럼멜 센다이. 하지만 상표권의 문제로 ‘브럼멜’이라는 팀명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새로운 팀명을 구색하게 된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베갈타’. 칠석의 상징, 견우와 직녀.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그들이 견우성(알타이르)과 직녀성(베가)으로 여름하늘에 남았다고 믿는다. 당시 브럼멜 센다이 사업부 과장이자 JFL 운영위원으로 일하던 탄지 요시노부(現 베갈타 센다이 강화 육성 본부장)는 센다이의 명물 타나바타 마츠리(칠석 축제)에서 힌트를 얻었으리라. 베가(ベガ, 베가)와 알타이르(アールタイル, 아루타이루)를 조합하여 베갈타(ベガルタ, 베가루타). 색상도 기존의 초록색에서 ‘베갈타 골드’라고 불리는 고유 색상으로 변경한다. 이후에 만들어진 독수리 마스코트 베갓타도 알타이르가 있는 독수리자리에서 기인했다. 그렇게 ‘베갈타 센다이’는 J2 창립 멤버가 되었고, J리그에서의 그들의 역사는 바야흐로 시작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딛고 4위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일본 축구를 본다는 사람들도 그다지 눈여겨볼 팀이 아니었을 팀이었지만, 그들은 지난 덴노배 결승에 진출했다. 우라와에게 패배했지만 그들은 토호쿠 팀의 저력을 보여주었고, 다시금 토호쿠 축구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J리그 팬들에게 알렸다.

 

 2020 시즌이 시작되기에 앞서 몬테디오 야마가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아쉽게 승격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신 키야마 타카시 감독을 영입했고, 7년 연속 두 자리 수 순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타파하기 위해 변화를 노리고 있다. 2020 시즌 베갈타 센다이의 슬로건은 熱結 -Link to the future-. 불타오르는 열정으로(熱)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실력을 다져서 더 나은 미래로 이어지기는 것을 영위하자(結)는 뜻이라고 한다. 덴노배 준우승이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타나바타 마츠리가 열리는 센다이의 밤하늘에서 빛나는 것은, 견우성과 직녀성뿐만 아닌 그들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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