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별칭: 로스 차루아스, 라 셀레스테

월드컵: 출전 13회, 우승 2회

코파 아메리카: 출전 45회, 우승 15회

컨페드컵: 출전 2회, 4위 2회

올림픽: 출전 3회, 금메달 2회

최다 출전 선수: 디에고 고딘, 146경기

최다 득점 선수: 루이스 수아레즈, 64골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라디슬라오 마주르키에비치
출생년도: 1945년 2월 14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65~1974
A매치 기록: 36경기 35실점

 

레프 야신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197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작은 키에도 멀리 튕겨내는 펀칭력과 괴물 같은 반사신경과 탄력적인 점프, 그리고 1대 1 상황에서의 침착한 전진 수비와 볼 컨트롤 능력까지 대단한 완성형 골키퍼였다.

대표팀에서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처음 참가했으며 8강에 진출했으나 오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독전에서 대패했다. 이후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팀을 4강에 올렸으며 마주르키에비치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센터 백

 

이름: 호세 나사치
출생년도: 1901년 3월 24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5kg
포지션: 센터 백, 라이트 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6
A매치 기록: 41경기


우루과이를 넘어 축구 역사에서도 최고의 수비수 반열에 있는 선수로 당시로서는 굉장한 거구로 압도적인 힘과 영리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 공격수를 잡아먹었다. 그의 튼튼한 수비력에 우루과이의 유명한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X선조차 그의 수비를 뚫지 못할 것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리더십도 뛰어나 위대한 사령관이라 불렸다.

월드컵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 최고의 축구 권위 대회인 올림픽에서 주전 멤버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네 번이나 우승했다. 그리고 초대 월드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공격수들을 제치고 MVP를 수상했다. 이후 1935년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도 우승컵과 대회 MVP를 모두 석권했다.

 

센터 백

 

이름: 호세 산타마리아
출생년도: 1929년 7월 31일
신체조건: 키 179cm
포지션: 센터 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52~1957
A매치 기록: 20경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수비수이자 1950년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유명했으며 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대인 수비 능력과 헤딩 클리어링을 자랑했으며 특히 머리로 멀리 쳐낸 공이 전방의 동료에게 오차 없이 떨어지는 묘기를 보였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짧지만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팀을 4강에 올려놓는데 공헌했으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5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에는 스페인에 귀화하며 활약이 끊겼다.

 

라이트 백

 

이름: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출생년도: 1901년 11월 22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 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0
A매치 기록: 34경기 1골

 

당대 최고의 하프백이자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꼽히며 라이트 윙 하프가 주 포지션이었으며 엄청난 운동능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이를 활용해 중원과 오른쪽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여줬다. 오늘날 다니 아우베스나 마르셀루, 주앙 칸셀루가 보여주는 플레이와 유사한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나사치, 스카로네와 함께 월드컵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 최고의 축구 권위 대회인 올림픽에서 주전 멤버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으며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했고 초대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는데 결승전에서 2-2 동점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측의 완벽한 골 찬스를 몸을 던져 블로킹해 무산시키며 4-2 역전승에 공헌했다. 이 활약이 인상적이었는지 대회 종료 이후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해 실버볼을 획득했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레프트 백

 

이름: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출생년도: 1927년 5월 2일
신체조건: 키 169cm
포지션: 레프트 백,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47~1957
A매치 기록: 42경기 3골

 

상술했던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의 조카로 1940년대와 50년대 우루과이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체력과 대인 수비 능력이 좋은 선수였으며 레프트 풀백과 레프트 하프에서 모두 우수한 기량을 보여줬다.

1947 코파 아메리카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선 탄탄한 수비력으로 팀의 우승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팀을 4강에 올려놨다. 이후 1956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옵둘리오 바렐라
출생년도: 1917년 9월 20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 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39~1954
A매치 기록: 45경기 9골

 

당대 최고의 하프백이자 역대 반열에서도 손꼽히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피지컬과 패스 능력, 중거리 슈팅을 모두 갖춘 선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정신력을 지녔으며 동료들을 잘 지휘했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동료들은 물론 감독도 브라질의 전력과 관중들의 기세에 눌려 수비축구를 지시하는 상황이었으며 브라질의 신문들은 모두 브라질의 우승을 점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렐라는 그 신문들에 소변을 누는 퍼포먼스를 보여줘 팀을 진정시켰으며 수비 축구를 지시하는 감독을 진정시키며 본래의 페이스대로 경기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결국 용기를 얻은 동료들에 의해 우루과이는 브라질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했고 바렐라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 이외에도 그는 다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한 번 우승했으며 우승한 1942년 대회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했다. 이후에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8강 잉글랜드전에서 부상당해 준결승전에 뛰지 못했고 결국 우루과이는 매직 마자르와 접전을 펼쳤지만 바렐라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연장전에서 코치슈 산도르에게 멀티골을 주며 패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후안 스키아피노
출생년도: 1925년 7월 28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46~1954
A매치 기록: 21경기 9골

 

페냐롤과 AC 밀란에서 남미와 유럽 무대 모두 정상급 활약을 보여줬다. 우수한 테크닉과 넓은 시야, 창의적이면서 정확한 패싱력을 보유했으며 임기응변에 능해 불리한 경기를 여러 번 뒤집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두 번의 월드텁에 참가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동점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기여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공격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다. 이후에는 대표팀을 은퇴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유럽 무대를 호령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엔조 프란체스콜리
출생년도: 1961년 11월 12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레프트 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82~1997
A매치 기록: 73경기 17골

 

200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지단의 우상으로 잘 알려졌으며 공격형 미드필더가 필요한 모든 덕목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깔끔한 볼 터치와 상대의 예측을 비웃는 킬 패스가 일품이었다.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공격수로 출전해 우승했으며 소크라치스가 이끄는 브라질을 제압하고 우승에 크게 공헌해 대회 MVP에 선정되었으며 198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우승했다. 그리고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으며 브라질을 제압하고 우승을 거두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이토록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마라도나나 소크라치스를 능가하는 화려한 모습을 보였지만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다.

 

라이트 윙 포워드

 

이름: 알시데스 기지아
출생년도: 1926년 12월 22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라이트 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50~1952
A매치 기록: 12경기 4골

 

짧지만 굵은 활약을 보여줬던 당대 남미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날카로운 크로스, 그리고 뛰어난 골 결정력을 겸비했다.

1950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역전골을 기록해 브라질을 무너트리고 우루과이를 우승시켰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때의 일로 파울로 로시와 함께 브라질 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축구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조기에 끝나는데 자국 리그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폭행해 중징계를 받자 이탈리아로 출국해서 AS 로마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팀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

 

레프트 윙 포워드

 

이름: 엑토르 스카로네
출생년도: 1898년 12월 26일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3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대표팀 활약 기간: 1917~1930
A매치 기록: 51경기 31골

 

브라질엔 펠레와 호나우두, 아르헨티나엔 마라도나와 메시가 있다면 우루과이엔 스카로네가 있었다.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에서 우수했으며 특히 골 결정력과 동료들을 활용하는 플레이가 일품이었다. 1920년대 최고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다.

우루과이의 전성시대를 이끈 에이스로 1917 코파 아메리카에서 팀의 우승을 견인하며 득점왕과 MVP를 모조리 석권했으며 총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고 두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초대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92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스트라이커

 

이름: 루이스 수아레즈
출생년도: 1987년 1월 24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3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2007~
A매치 기록: 123경기 64골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201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렸다. 각종 기행으로 더 유명하지만 실력도 우수했는데 우수한 골 결정력은 물론 다이나믹한 드리블과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한 찬스 메이킹에도 능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포를란을 보좌하며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팀의 공격을 이끌며 16강에 진출에 공헌했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이탈리아전에서 키엘리니를 깨문 것이 들통나 징계를 받아 16강전에 결장하며 팀은 탈락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8강에 진출했다. 현재 우루과이 대표팀 최다 득점자를 기록하고 있다.

 

감독

 

이름: 오스카 타바레즈

출생년도: 1947년 3월 3일

부임기간: 1988~1990, 2006~

 

비록 월드컵 우승은 없지만 침체기를 겪던 우루과이 축구의 부활을 이끈 명장이다. 포를란과 고딘같은 대표팀 핵심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역할을 대표팀에선 종종 보여줬는데 포를란의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우수한 모습과 고딘의 리베로로서의 우수한 역량을 보여줬던 적은 오직 타바레즈의 우루과이에서만 있었다,

2006년에 부임해 우루과이를 남미를 대표하는 강호로 천천히 끌어올렸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을 이끌었으며 1970년 이후 월드컵에서 부진했던 대표팀을 다시 월드컵의 강자로 끌어올리는데 크게 공헌했다. 2006년에 다시 부임한 이래 15년간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베스트 일레븐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로케 마스폴리
출생년도: 1917년 10월 12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5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45~1955
A매치 기록: 38경기 62실점

 

1940년대와 50년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큰 키임에도 민첩하며 반사신경까지 겸비했던 골키퍼였다.

1945년 코파 아메리카에 데뷔해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결승 리그 브라질전 이전까진 실수가 많았지만 사실상 결승전인 브라질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시키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후에도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4강에 진출했다.

 

 

 

이름: 루돌포 로드리게스
출생년도: 1956년 1월 20일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0kg
포지션: 골키퍼

대표팀 활약 기간: 1976~1986
A매치 기록: 78경기 68실점

 

마주르키에비치의 후계자로 나시오날과 산투스의 전설적인 선수다. 큰 키와 긴 팔다리, 그리고 높은 점프력을 잘 활용했으며 1대 1 상황에서 침착하게 전진하며 거리를 좁히는 능력도 훌륭했으며 이런 능력을 보여줘 사람들에게 표범이라 불렸다.

1980년에 초대 월드컵 50주년 기념으로 열린 문디알리토에서 우승을 거뒀으며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우승을 따냈다. 하지만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의 모습은 아쉬웠다.

 

 

 

이름: 우고 데 레온
출생년도: 1958년 2월 27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0kg
포지션: 리베로, 센터 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79~1990
A매치 기록: 48경기

 

1980년대 하반기 남미 최고의 리베로로 넓은 활동반경과 강력한 피지컬을 활용한 수비를 펼쳤으며 빌드업에도 능했다.

1979 코파 아메리카에 데뷔했으며 초대 월드컵 50주년 기념으로 열린 1980 문디알리토에서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아쉬웠다.

 

 

 

이름: 디에고 고딘
출생년도: 1986년 2월 16일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센터 백

대표팀 활약 기간: 2005~
A매치 기록: 146경기 8골

 

2010년대 남미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뛰어난 위치 선정과 영리하게 상대를 괴롭히는 대인 수비 능력, 그리고 우수한 헤딩 실력을 앞세워 활약했다.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 데뷔했으나 2011년까진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으나 2013년 컨페드컵 이후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다. 여섯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엔 로테이션 멤버로 4강, 201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8강에서 탈락했지만 공수 양면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현재 우루과이 대표팀 최다 출전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름: 슈베르트 감베타
출생년도: 1920년 4월 14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포지션: 라이트 백, 센타 벡

대표팀 활약 기간: 1941~1952
A매치 기록: 37경기 3골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무려 열 번이나 리그 우승을 경험한 라이트 백으로 우수한 대인 방어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42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경험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의 주포 아데미르를 묶어내는 데 성공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다.

 

 

 

이름: 리카르도 파보니
출생년도: 1943년 7월 8일
신체조건: 키 167cm
포지션: 레프트 백

대표팀 활약 기간: 1962~1974
A매치 기록: 13경기 2골

 

아르헨티나 클럽인 인데펜디엔테의 레전드로 남미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프트 백 중 하나로 출중한 대인 수비 능력과 공격 상황에서 우수한 킥력으로 정확한 크로스와 세트피스를 담당했으며 활동량과 투지도 대단했다.

당시 시대상 해외에서 뛰는 선수는 국가대표팀에 발탁하지 않아 활약상은 적지만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드디어 발탁되었다. 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파보니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름: 네스토르 곤칼베스
출생년도: 1936년 4월 27일
신체조건: 키 178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대표팀 활약 기간: 1956~1970
A매치 기록: 50경기 1골

 

페드로 로차, 알베르토 스펜서와 함께 페냐롤의 전성기를 이끈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예측력을 바탕으로 한 인터셉트와 클리어링을 보였으며 우수한 태클 능력을 보여줬으며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과 정확한 패싱력을 앞세워 빌드업에도 크게 관여했다.

대표팀으로서는 1957년과 1959년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으며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57년 대회에서는 3위를 기록했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8강에 올랐다.

 

 

 

이름: 파블로 벵고에체아
출생년도: 1965년 6월 27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5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1986~1997
A매치 기록: 43경기 6골

 

광활한 시야와 정확한 롱 패스, 그리고 공격과 수비를 조율하는 훌륭한 지휘 능력으로 1990년대 우루과이의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했으며 득점력도 대단해 1997년에는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의 득점왕도 경험했다. 세비야와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대표팀에서는 1987년 코파 아메리카와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두 번 우승했으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이름: 페드로 로차
출생년도: 1942년 12월 3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 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61~1974
A매치 기록: 52경기 17골

 

우루과이의 펠레라 불렸던 1960년대 말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필요한 덕목을 모두 갖춘 것은 물론 우수한 신체 능력과 우수한 득점력마저 겸비해 상대팀의 목숨을 한 순간에 끊어버린다는 뜻의 사형집행인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펠레는 그를 두고 "내가 붙어본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라는 평가를 했다.

1962 칠레 월드컵부터 1974 서독 월드컵까지 네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6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5경기 3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해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기에 부상당해 하차했으며 이에 우루과이는 공격 전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름: 루이스 쿠비야
출생년도: 1940년 3월 28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포지션: 라이트 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59~1974
A매치 기록: 38경기 11골

 

1960년대 최고의 윙어 중 하나로 손꼽히며 우수한 신체 밸런스와 측면에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과 뛰어난 슈팅력과 발기술을 자랑했던 선수였다.

대표팀에서는 세 번의 월드컵에 참여해 1970 월드컵에서는 로차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공격진영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팀의 준결승 진출을 도왔다. 다만 바르셀로나와 리버 플레이트 시절에는 전성기를 구가했음에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이름: 앙헬 로마노
출생년도: 1893년 8월 2일
신체조건: 미상
포지션: 레프트 윙,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대표팀 활약 기간: 1911~1927
A매치 기록: 69경기 28골

 

1920년대 우루과이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아홉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여섯 번이나 우승했으며 특히 1917년 대회와 1920년 대회에는 득점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1924 파리 올림픽에서는 주전 멤버로 금메달 사냥에 성공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A매치 60경기를 돌파했으며 69경기에 출장하며 당시 A매치 출전 횟수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었다.

 

 

 

이름: 이사벨리노 그라딘
출생년도: 1897년 7월 8일
신체조건: 키 172cm
포지션: 레프트 윙

대표팀 활약 기간: 1915~1927
A매치 기록: 73경기 17골

 

1910년대 우루과이를 대표하는 윙 포워드로 엄청난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를 돌파했다. 본업인 축구 선수 이외에도 부업으로 육상 선수로 활약했는데 우루과이 무대에서 400m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남미 육상 선수권에서는 200m와 400m 종목에서 총 다섯 번의 금메달을 획득했을 정도로 빠른 선수였기에 축구 역사상 가장 빠른 선수로 추정된다.

대표팀에서는 1916년 초대 코파 아메리카의 우승과 득점왕, MVP를 동시에 석권했으며 1917년에도 우승에 기여한다.

 

 

 

이름: 페드로 페트로네
출생년도: 1905년 5월 11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4kg
포지션: 스트라이커

대표팀 활약 기간: 1923~1930
A매치 기록: 29경기 24골

 

포병이라 불렸던 막강한 슈팅력의 소유자로 20년대 최고의 센터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다. 슈팅력 이외에도 당시의 센터 포워드들과는 달리 드물게 후방으로 내려와 인사이드 포워드들과 연계에도 힘썼다.

대표팀에서는 두 번의 올림픽 금메달과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우승한 1923년과 1924년 대회에서는 모두 득점왕에 오르는 맹활약을 펼쳤지만 초대 월드컵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이름: 디에고 포를란
출생년도: 1979년 5월 19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포지션: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대표팀 활약 기간: 2002~2014
A매치 기록: 112경기 36골

 

우루과이 축구의 부흥을 이끈 스타플레이어로 탁월한 슛 테크닉과 파괴력 넘치는 중거리 슈팅을 앞세워 라 리가에서 두 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했던 선수며 소속팀과는 다르게 국가대표팀에서는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보여주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데뷔했으며 이후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한 번의 컨페드컵,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활약했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우수한 공격수들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자볼라니를 신기에 가깝게 다루며 자볼라니 마스터라 불렸다. 그 대회에서 포를란은 4위를 차지했으며 공동 최다 득점자와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대회 MVP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토르난테 선정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25인 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리저브 명단 (추가될만한 선수들)

 

토르난테 선정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리저브 멤버

 


* 국가대표팀 역대 올스타 시리즈의 선정 기준은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50%와 선수 자체의 위상 50%를 합산해서 올스타 팀을 짭니다.

* 국가대표팀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는 당연하게도 선정에서 제외합니다.

* 과거 다수의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더 많은 활약을 한 국가대표팀으로 선정합니다. 고로 안드레올로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선정되었으며 스키아피노, 기지아, 산타마리아는 우루과이에서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더 활약했으므로 우루과이 대표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현역 선수들의 스탯은 2021년 8월 10일 기준입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에펨네이션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블로그 박수용의 토르난테 관리자
페이스북 페이지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관리자
페이스북 Futball Creator United 회장
다음카카오 브런치 작가

 

박 수용

 

원 출처: https://dongneazesoccer.tistory.com/139

댓글 15

아디오스v 2021.08.10. 22:21
오 레코바는 무조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ㄷㄷㄷ ㄷ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1.08.11. 13:46
 아디오스v
스키아피노나 프란체스콜리는 역대 공미 톱 30안엔 무난하고 로차도 그에 못지않죠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1.08.11. 13:46
 경남뼈주먹
1920~50년까지 우루과이가 강해서 그쪽 멤버들이 많죠
댓글
블루스 2021.08.10. 23:18
혹시 저 티스토리 블로그 주인이신가요?

여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가요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1.08.11. 13:47
 블루스
넵 맞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댓글
블루스 2021.08.11. 16:04
 FCU회장
궁금해서 안에 직접 드가서 몇 글 뒤져봤는데 동생이랑 같이 재밌게 봤습니다. 정말 우리가 몰랐던 선수가 많더라구요.

우리가 모르는 선수가 베스트 일레븐에 등극되서 공감하기 힘들지만 막상 적어주신 설명글들을 보면서 생각하니 굉장한 선수들 뿐이더라구요.

여튼 정말 잘 읽었습니다. 수준 높은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1.08.11. 19:55
 블루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지금 주류인 유럽이 아닌 과거의 주류인 남미에 1920~30년대 옛날에 전성기를 맞은 팀이라 더 공감이 잘 안될수도 있다고 봐요
댓글
블루스 2021.08.11. 20:01
 FCU회장
네 사실 그게 좀 더 강하게 느껴지는게 없진 않죠 ㅎㅎ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1.08.11. 20:02
 블루스
사실 20~30년대면 야인시대 초반부 배경이죠 ㅋㅋ
댓글
블루스 2021.08.11. 20:28
 FCU회장
우린 일제강점기였으니 ;;;
댓글
설기현주엽 2021.08.10. 23:33
월드컵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 최고의 축구 권위 대회인 올림픽에서 주전 멤버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으며

- 이게 지금 우루과이가 별 4개 단 이유구만 FIFA에선 2개 지우라고 하던데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1.08.11. 13:47
 설기현주엽
원랜 피파랑 합의된걸로 아는데 또 이야기가 달라졌군요
댓글
FCU회장 작성자 2021.08.11. 13:47
 육상천재방예나
35인으로 넓혀도 쉽지 않죠 모레나나 세아, 외팔이 카스트로도 있어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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