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고독한 검사 <Chapter 1 - 2>

Prologue : 

https://www.flayus.com/107064531

 

1화 : 

https://www.flayus.com/107282101

 

서부지검 앞에서 플랜 카드를 들고 시위 중인 여성과 잠시 만나고 온 서이도는 운전하는 내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조수석에 앉은 미정혁은 검사의 눈치를 살폈다. 잠시 신호가 바뀌어서 차들이 멈춘 사이 미정혁이 입을 열었다.

"그녀와 무슨 얘길하고 오셨나요?", 질문이 있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침묵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사관이 창문을 열었다.

대답을 듣긴 어렵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옆에서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정혁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서로 갈 길을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찾겠다고 했고요."

 

"찾아요? 뭘요?"

 

서이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는 정말로 대답을 들을 수 없겠구나, 라고 느낀 그가 고개를 푹 떨군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이 어떤 얘길 나눴는지.

 

신호가 바뀌자 다시 자동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검사님."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미정혁이 말을 이어갔다.

 

"말씀하세요"

 

"제가 감히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결정을 똑바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운전대를 잡은 서이도의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가 옆에서 조언하자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수사관의 시선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돌아가신 선배의 죽음을 파헤치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단순 사명감을 느껴서 사건을 조사하는 겁니까?"

 

평소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보이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수사관이 옆에서 계속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느낀 걸까? 기분이 살짝 나빠진 서이도는 차를 갓길로 몰아갔다.

그리고는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그의 눈에선 살기가 감돌았다

 

"지금 저한테 훈수 두시는 겁니까?"

 

"훈수가 아닙니다. 검사님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돕겠지만 검사님부터 마음을 제대로 정하라는 뜻입니다."

 

서 검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리세요."

 

상대방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정혁은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서이도의 차는 그대로 수사관을 버려두고 먼저 떠났다.

미정혁은 떠나는 차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평일 내내 바쁘게 지내느라 아이와 놀 시간이 부족했던 서 검사 부부는 오랜만에 동네 주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란 점을 감안해도 산책로에는 사람이 부쩍 많았다.

서이도는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부인과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돌아가신 선배의 죽음을 파헤치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단순 사명감을 느껴서 사건을 조사하는 겁니까?"

 

지난번 수사관이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뱉은 말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았다.

서이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사명감과 진실 중 무엇을 선택할지 깊은 고민에 빠진 것이다.

 

"아빠!"

 

그것도 잠시,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이 서이도를 꼭 껴안는다.

 

"우리 딸, 엄마 아빠랑 산책해서 기분 좋아?"

 

부녀가 서로를 마주 본다.

 

"응, 좋아! 근데 아빠가 쉬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그랬어? 아이고."

 

서이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날 저녁, 서이도는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주방에선 아내가 요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손시계 끈을 조이며 거울을 바라봤다.

 

"돌아가신 선배의 죽음을 파헤치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단순 사명감을 느껴서 조사하는 겁니까?"

 

그 말을 듣고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사명감이든 진실이든 무엇이라도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가방까지 챙긴 서이도는 방 문을 열기 전 생각했다.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다시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에서 검사가 되어야 하는 숙명에 놓인, 서 검사가 다소 굳은 얼굴로 문을 천천히 열었다.

딸은 식탁 의자에 앉아있다가 아빠가 보이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빠, 빨리 밥 먹고 싶어요!"

 

"우리 딸…미안한데 아빠가 일이 생겨서 말이야."

 

그가 한 번씩 부인과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밥이라도 먹고 나가요. 당신이 좋아하는 참치 김치찌개인데."

 

그의 아내가 냄비 뚜껑을 열면서 말했다.

 

"아냐, 별로 배가 안 고프네. 딸, 아빠 없어도 엄마랑 잘 수 있지?"

 

"응…일찍 들어올 거지?"

 

그녀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당연하지. 일찍 들어올게. 여보, 나 다녀올게."

 

서이도는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었다.

아내가 서이도의 왼쪽 뺨에다 입술을 갖다 댔다.

 

"예설이는 내가 잘 재울 테니까 걱정 마."

 

"고마워…빨리 끝내고 돌아올게."

 

식탁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딸을 향해 서이도는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예설이, 아빠 다녀올게!"

 

딸 서예설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들른 서이도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스피커 너머에서 몇 차례 통화음이 이어졌다.

 

-여보세요?

 

모처럼 침대 위에서 잠을 자던 미정혁 수사관이 한쪽 손으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이도입니다. 지금 시간 되십니까?

 

미정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황금 같은 주말에 검사께서 친히 연락하자 다소 놀란 것이다.

 

-검사님이 주말엔 웬일로?

 

-지금 유성주 검사가 살던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이쪽으로 오시죠.

 

일방적으로 전화를 걸어놓고 뚝 끊어버리는 그.

미정혁이 기지개를 켜며 화장실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오늘은 늦잠 자기 글렀네!

 

운전석에서 문이 활짝 열렸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검사 서이도였다.

오래된 고층 아파트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그가 고개를 높이 들었다.

 

'부장까지 다셨으면서 이런데서 사셨던 건가.'

 

그는 경비실을 찾아가 경비원에게 말을 걸었다.

 

"검찰청에서 나왔습니다. 106동 1510호의 집을 좀 방문하고 싶은데요."

 

"106동 1510호라면 최근 경찰 오고 그랬던 곳 아니오? 뭐 또 둘러볼 일이라도 있소?"

 

흰 머리숱이 유독 눈에 띄는 노년의 경비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상대방과 말다툼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 서이도가 대답하기 위해 입을 벌리려는 순간, 갑자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서이도의 연락을 받은 미정혁이었다.

 

"현장에서 놓고 온 물건이 있어서 아직 남아있나 둘러보려고 왔습니다. 번거롭겠지만 부탁드릴게요."

 

경비원의 뒤를 수사관과 검사가 좇았다.

 

약속 장소에 마침내 도착한 서이도가 손잡이 쪽으로 손을 천천히 뻗는다.

옆에 서 있는 미정혁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열리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집 안 내부.

돌아가신 선배와 그의 가족이 살던 아늑한 공간에 외부인 둘이 발을 디딘 것이다.

사람이 죽은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집 상태는 꽤 깨끗했다.

 

"청소는 잘하고 갔네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미정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이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조금이라도 사건의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선배의 집을 들른 그가 귀신에게 홀린 듯 주방 안쪽으로 들어간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느끼는 바가 다른지 미정혁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뭐 중요한 거라도 나오셨어요 검사님?, 사람이 물어도 도무지 대답이 없는 그.

 

"……."

 

무응답으로 일관하던 그가 눈을 살며시 감는다.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지검에 들른 선배와 오랜만에 만난 날.

 

한 손엔 가방, 한 손엔 투명 봉투를 든 유성주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 시작한다.

 

"여보, 나 왔어."

 

거실 소파에 앉아서 TV를 시청 중이던 부인이 현관에서 걸어들어오는 그에게 다가가 짐을 건네받는다.

 

"웬 샌드위치예요?"

 

"승우, 야 유승우!"

 

유승우는 그의 아들 이름이다.

유성주가 아들이 자는 방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문을 덜컥 열자 안에선 시끄러운 게임 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아버지가 오거나 말거나 헤드셋을 끼고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어, 아버지 오셨어요?"

 

어머니가 아버지 곁으로 오자 그제야 관심을 가지는 아들.

유성주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있으니 억지로 인사하는 거라고.

 

손잡이를 잡은 유성주의 오른손에 힘이 세게 들어갔다.

 

"나와서 밥이나 먹어라."

 

모처럼 온 식구가 식탁에 모여 앉았다.

 

유승우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린다.

저녁 식사로 나온 샌드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

 

"뭐야, 이 맛없어 보이는 샌드위치는?"

 

"잔말 말고 먹어라."

 

유성주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아들인 유승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샌드위치를 한 입 깨물어 먹는다.

아내는 샌드위치 모서리 끝을 살짝 뜯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어머, 이런 맛있는 건 어디서 가져왔대?"

 

"유승우, 마지막으로 물으마. 여전히 사과할 맘 없어?"

 

유성주의 매서운 시선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저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다 얘기 끝난 거 가지고 그만 좀 하세요!"

 

잔뜩 화가 난 아들이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지긋지긋해.", 작지만 분명했다. 

아들의 혼잣말을 듣고 유성주는 알았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머지는 이 아비가 알아서 해결하마. 너는 이제부터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그때 옆에서 갑자기 신음이 들린다.

남편과 아들이 싸우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아내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선 

바닥에다 피를 토하는 것 아니겠는가.

놀란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왜 그래요!"

 

그러나 유성주만큼은 침착했다.

 

눈앞에서 엄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 아들이 이번에는 좀 전의 그녀처럼 피를 토한다.

마치 몸 안으로 악마가 들어온 것처럼 발작까지 일으키면서 말이다.

 

우엑 - 하고, 피를 토한 아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유성주는 고개를 돌렸다.

 

싸늘한 시신이 된 부인과 자녀를 한 번씩 쭉 둘러보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우리 셋 다 천국엔 못 가겠네."

 

그의 얼굴엔 씁쓸함이 묻어났다.

 

아무런 일도 없단 듯 자연스럽게 빵을 꿀꺽 삼킨다.

 

유성주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존경하는 선배가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사람처럼,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린 서이도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나를 만나러 온 날, 먹으라고 줬던 샌드위치가 그럼…….'

 

선배와 만난 날.

그는 한 손에 투명 봉투를 들고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일찍,  봉투의 정체를 알았더라면 일가족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서이도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한숨 소리가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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