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독한 형사 <3장 15화 - 제발 좀 가세요!>

1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비가 쉼 없이 하늘에서 내렸다.

4인승 승용차에 탄 공 반장, 정 순경은 각자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창밖을 내다봤다.

정면엔 오늘을 위해 예쁘게 화장도 하고, 원피스까지 입은 서유미 기자가 우산을 쓴 채 멀뚱멀뚱 서있었다.

정 순경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가볍게 한 번 고개를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뚜벅뚜벅 걸었다.

한편 남명성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러 창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홀짝홀짝 커피를 마셨다.

눈앞으로 지나가는 서유미 기자와 시선을 한 번 주고받은 뒤 잔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이재웅은 골목길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서 벽을 기대고 서있었다.

마치 호랑이굴로 들어가려는 나그네를 가로막기 위해 있는 문지기 같았다.

이재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휴대전화로 기자님 위치 실시간으로 추적되고 있으니까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만일 위급한 상황이라면 우리가 준 스프레이 있죠? 그거 이용하시고……."

 

"저 괜찮거든요…오히려 긴장한 건 형사님 같은데요? 그리고 저 어릴 때 주지수 배워서 호신술도 할 줄 알아요!"

 

"흠…아무튼…문자로 틈틈이 상황 알려주시고요……."

 

알겠다고 대답한 후 그 옆을 유유히 지나갔다. 그는 돌아섰다.

점점 멀어지는 그녈 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민간인을 이용해서 범인을 잡는다는 작전은, 아무리 경험이 뛰어난 베테랑 형사라도 부담되긴 마찬가지.

골목길로 들어선 그녀가 할 일은 단 하나.

쉼 없이 걸으면서 범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리고 위험해지면 문자로 상황을 알리는 것.

계속 걸었다. 5분, 10분, 1시간이고 걸었다.

물론 아주 힘들다 싶으면 잠시 벽에 기대서 쉬었다. 그러나 오래 쉴 수는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잡아야 하기에.

더는 피해자가 생기지 않아야 하기에.

그녀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오랜만에 신은 하이힐이 상당히 불편한 모양이다.

입술을 꽉 깨문 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범인을 잡는 것은 형사의 몫이지만, 그 사람을 끌어들여야 하는 역할은 오로지 서유미, 본인의 몫.

때 마침 마주친 행인 몇 명.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 둘과 모자를 푹 눌러쓴 남성이었다.

남학생들은 서로 얘길 나누며 서 기자 옆을 지나쳤다. 서유미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우비를 입은 수수께끼의 남자. 이재웅 형사가 말한 범인의 인상착의와 비슷했다.

그녀는 걸음을 서둘렀다.

 

새로운 먹잇감을 찾으러 나온 지 약 두 시간째.

드디어 싱싱하고 맛있는 사냥감이 저 앞에 있다.

나는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사람을 죽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쫓아갔다. 남학생들이 지켜보진 않는지 살짝 확인한 뒤 곧장 뒤를 밟았다.

그녀가 갑자기 멈췄다. 나, 들킨 걸까? 이럴 때는 기둥 옆으로 숨어야 한다.

곧장 가로등 뒤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들키지 않은 것 같다.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나의 쇼는 입을 연 후부터 시작되니까.

"저기요……."

 

그녀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납작해졌다.

빗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자신을 부르는 소리.

그녀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미리 그에겐 문자를 보내놓은 상태.

이럴 때일수록 더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

신발 끝을 천천히 틀면서 돌아섰다. 본인을 멈춰 세운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네…으읍!"

 

그 순간,

장갑을 낀 범인의 왼손이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단숨에 하관을 틀어막은 후 왼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점점 밀어붙였다.

코너 쪽으로 몰린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대방이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꺼내려 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숨겨뒀던 식칼을 뽑아 오른손에 꽉 움켜쥔다. 그는 씩 웃었다.

오른팔을 살짝 뒤로 뺐다가 도로 앞으로 되돌리려는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주먹이 날아들었다.

서유미 기자를 도우러 나타난 이재웅 형사였다.

왼쪽 뺨을 얻어맞은 용의자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진다.

비가 거세게 내리치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그는, 허겁지겁 기어가서 떨어진 칼을 다시 주웠다.

그러고는 가까이 다가오는 이재웅 형사에게 휙 휘둘렀다.

상대방 멱살을 잡으려다 도리어 흉기에 찔린 이재웅 형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재웅은 인상을 팍 구겼다.

고통스럽다고 여기서 놓아버리면 다신 잡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끝까지 아픔을 참아가며 범인의 멱살을 꽉 붙잡았다.

여전히 자기 죄를 뉘우치지 않은 이의 저항은 상당히 격렬했다.

어떻게든 다시 흉기를 들어서 공격하려고 온갖 발버둥을 다했다.

그때마다 재웅은 필사적으로 상대방 팔을 무릎으로 짓눌렀다.

반성하지 않는 자에겐 그에 맞는 벌을 줘야겠다는 일념으로 주먹을 쥐고서 붕붕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연이은 폭행이 이어졌다.

 

함몰된 안면.

혼이 빠져나간 듯 축 늘어진 어깨.

두 차례 살해를 저지른 용의자의 완벽한 패배였다.

일을 마무리 지은 이재웅은, 양손으로 땅을 짚으며 벽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제야 몰려오는 통증.

몸 안의 장기가 뒤틀릴 것만 같다.

 

"혀…혀…형사님!"

 

이를 가까이서 지켜본 서유미 기자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등을 벽에 기대었다.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데도 계속 옆에선 괜찮냐고 묻는다.

저 멀리, 동료들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공 반장은 정 순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 용희…어서 119 불러! 어서!"

 

"야 xx야…그러게 같이 가자니까…괜찮아?"

 

남명성이 입고 있던 옷의 일부를 뜯어 복부에 칭칭 감았다.

 

 

 

 

2

 

병원으로 향하는 앰뷸런스 안이 소란스럽다.

한쪽에선 서유미 기자가 울고 있지, 또 한쪽에선 공 반장이 잔소리하고 있지, 반대편에선 정 순경이

목놓아 오열하고 있지, 친구라는 남명성은 어차피 안 죽는다며 동료들을 꾸짖고 있지.

정말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재웅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아오…여기가 뭐…장례식장이냐? 아주 쌍으로……."

 

"저…저…크흐흑…형사님…좋아…좋아한단 말이에요!"

 

"이 사람…왜…왜 이래…어이…기자님…나…참……."

 

갑작스러운 고백.

어이없단 표정을 지으며 검지를 슥 내밀었다.

저 사람 좀 말려봐!

그녀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는 아예 등을 돌렸다.

차라리 칼에 찔려서 기절한 게 나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어우…왜 저래…정말……."

 

남명성은 팔짱을 꼈다.

 

"여자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지 마라…내가 아무리 양아치처럼 살아도…여자 맘은 누구보다 잘 알아……."

 

"뭐…뭐…뭐라는 거야……."

 

"선배님도 이제 새로 시작하셔야죠……."

 

"둘이 잘 어울리는데 뭘!"

 

후배와 선배가 동시에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몸을 돌린 이재웅 형사가 번쩍 고갤 들어 선배 공 반장을 노려보았다.

그쯤 하시라고요, 거참!

 

3차 사건으로부터 며칠이 더 흘렀다.

평소처럼 경찰서로 출근한 서유미 기자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오늘,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이제는 가족 같은 형사님들이 그곳에 계셨다.

 

"엇, 이 형사님은 어디 계세요?"

 

"아…잠시 화장…어 오셨네……."

 

정 순경이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수술을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온 이재웅 형사가 그녀 곁에 서있었다.

그는 손을 덥석 잡았다. 마치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손을 잡자 자기도 모르게 흥분한 것이니라.

자판기 커피가 있는 부스 앞, 상대방 손을 놓은 이재웅 형사가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본다.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왜 이곳에 날 데려왔을까? 설마 고백을 받아주려고? 무슨 말로 나를 흔들어 놓을까!

 

"이제…그만…오십시오……."

 

지갑을 꺼내서 신사임당 몇 장을 쥐여주곤 차갑게 대답하는 그.

서유미는 눈을 내리깔았다. 오른손에 쥐어진 돈뭉치를 보고는 믿어지지 않는단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제발…제발…그만…그만 좀 오시라고요!"

 

여태껏 본 적 없는 그의 모습.

주먹으로 벽을 한 대 때린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놈의 수리비…백 장 천 장이고 줄 테니까…그만…꺼지라고요…좀!"

 

차갑게 굳은 그녀의 얼굴.

 

"형사님…저는…저는 말이죠…처음엔…그래요…수리비 때문에 온 거 맞아요…그런데……."

 

"난 분명 말했습니다…내일부터…오지 마십시오……."

 

그가 옆으로 지나갔다.

그녀는 등을 돌렸다.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서일까, 모진 말을 해서일까? 눈시울이 점점 붉어진다.

 

 

 

3

 

강력팀 4인방은 순댓국집을 들렀다.

저녁 끼니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정 순경이 눈치를 살폈다.

남명성은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공 반장의 시선이 이재웅에게 향했다.

 

"뭐야…왜 안 먹어?"

 

수저를 이용해서 국물과 깍두기를 한 입 깨물어 먹는 이재웅 형사.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선 대답한다.

공 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웅아…설마…지윤이 때문이냐……?"

 

"아씨…내 앞에서 그 얘기 하지 말랬지…이 썅…오늘 다 왜 이래……?"

 

평소 선배 말이라면 항상 따랐던 후배 정 순경도 이번 일만큼은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웬만하면 받아주시죠…그리고…선배님…이러시는 모습…저희는 너무 불편합니다……."

 

"뭐 xx야? 하…xx…계산은 내가 하고 갈 테니까 드시고 가쇼……."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식탁에 올려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을 나온 이재웅은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캄캄한 밤.

밤하늘을 쳐다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내가 너무 몹쓸 짓을 한 건 아닌지.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건 아닌지.

그리고 내가 정말 마음을 받아줘도 되는 건지.

 

깊어가는 밤.

깊어가는 고민.

깊어가는 한숨.

 

-다음 편에 계속-

댓글 4

리나군 2024.05.27. 20:14
이 소설 마무리를 이 갤에서 볼 수 있을까요
댓글
리나군 2024.05.27. 21:32
 조자룡조영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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