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독한 형사 <3장 11화 - 인연? 악연?>

1

 

수업을 마친 초등학교 교문 쪽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나온다.

집까지 뛰어가는 학생, 친구와 나란히 길을 걷는 학생 등 다양한 군상의 초등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하교 중이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학생은, 자기 앞을 지나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멀뚱멀뚱 서있었다.

일부 학생은 그녈 보곤 놀자고 하였으나 그녀가 거절했다.

매일 자신을 데리러 오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부모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는 바닥에 쪼그려앉았다.

남은 건 본인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선 땅바닥을 쳐다봤다.

개미 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머리 위로 그림자가 비쳤다.

부모님이 왔나 싶어 머리를 높이 치켜세웠다.

아쉽게도 어머니는 아니었다.

햇빛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한눈에 봐도 어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승용차로 보이는 자동차가 시동이 켜진 채로 있다가 얼마 안 가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2

 

조용했던 도봉서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작전을 나갈 때 대부분 사용하는 경찰 버스 여러 대가 정문을 지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서너 대의 버스 앞문이 차례대로 열렸다.

강력반에서 일하는 정 순경, 공 반장, 남명성이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엔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경찰서로 견학 온 초등학생들이 있었고,

정 순경을 따라서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남명성은 양손을 모아 입 쪽으로 가져갔다. 두 줄로 서달라며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담임 선생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저학년 초등학생들을 인솔하기 위해서였다.

대충 질서가 잡히자 공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는 의미.

선두에 선 정 순경이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다.

경찰서 로비엔 학생들을 기다리다 지친 이재웅 형사가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다.

사방에서 소음이 들려오자 이재웅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기지개를 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린 양들의 똘망똘망한 시선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정 순경과 공 반장이 그 곁으로 왔다.

그 사이 반대편에선 남 형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화장실 가고 싶은 학생들 두 줄로 제 앞에 서세요!

 

“우리 없는 사이 별일 없었지?”

 

“별일 있길 바라세요?”

 

“서 기자님, 선배님이 괴롭히진 않으셨죠……?”

 

“넌, 선배를 안 챙기고 기자를 챙기냐?”

 

“네…뭐 코 고는 소리 빼고는 괜찮았어요!”

 

따르릉, 따르르릉.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공 반장의 바지 왼쪽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발신자를 확인하곤 오른쪽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여보세요? 아…네…민원실…네네…아이가 납치당해요…? 그래서요…? 네네…협박 전화까지 왔다는 거예요? 흠…알겠습니다…제가 지금 동료들 보낼 테니 피해자께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전해주십쇼…네네…….

 

“무슨 일이에요? 납치에 협박은 무슨 소리고요?”

 

막내 정 순경의 물음에, 공 반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이재웅…견학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민원실 가서 피해자 좀 만나고 와라…….”

 

아이들을 견학시키는 귀찮은 일을 남에게 맡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재웅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거절한 이유가 없었다.

알겠다고 말한 후 손을 흔들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3

 

 

민원실 출입문 앞.

옷을 바르게 고쳐 입은 뒤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벤치에 앉아서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중년 여성이 보였다. 그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여성의 시선이 위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그 순간, 지나가다 아는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이 형사가 말을 얼버무린다.

그녀는 모르지만 그는 안다.

오래전, 그 사건을 통해서 만났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피고 남성구에게 징역 ••형을 선고한다.”

 

판사의 말 한마디에 재판장이 수군거렸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재판을 지켜본 이재웅 형사는 눈길을 돌렸다.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죽인 피고인에게 형이 내려지자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콸콸 터뜨리며 오열하는 어느 여성.

바로 피고의 부인이었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녀를 여기서 만날 줄 누가 알았으랴.

 

“도봉서 강력팀 이재웅입니다. 얼추 상황은 들었습니다. 아이가 납치되고 협박전화까지 왔다면서요?”

 

“네…매일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는데…오늘은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학교에 늦게 도착했고…애가 보이지 않아서 경비원과 선생님한테도 수소문했지만…그분들도 모르신다고 해서…….”

 

“통화 내용은 기억나십니까?”

 

형식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밑으로 기울었다.

지난 일을 천천히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애 아빠한테 휴대폰을 전달하라 했어요…근데…….”

 

아이 아빠한테 휴대폰을 전달하라는 용의자의 전화.

형사로서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동안 들었던 내용을 잘 정리하여 머릿속으로 떠올려본다.

 

1. 용의자는 아이의 얼굴을 알고 있다.

어쩌면 아이도 용의자를 알고 있을지 모른다.

 

2. 협박의 주 내용은 아이 아빠를 찾아가서 휴대폰을 전하는 것.

 

재웅은 팔짱을 꼈다.

조금 전, ‘근데’하고 말을 끝낸 그녀에게 시선을 던진 것이다.

 

“저희 애 아빠가…교도소에 있는데…….”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용의자는 아이의 얼굴을 알고 있으며 아이 아빠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만일 내 추리가 맞는다면…

이건…원한에 의한 강력 범죄…성추행 전과가 있는 자로서…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형사님…우리 애 좀 찾아주세요…….”

 

“일단 저와 함께 교도소로 가시죠…그쪽에 상황을 알리면 교도소 측도 협조해 주실 겁니다…….”

 

곧장 주차장으로 가서 자동차 시동을 켰다.

초등학생 자녀를 구하기 위해 아이 엄마가 형사의 승용차 보조석에 올라탔다.

그는 액셀을 세게 밟았다.

 

한참을 달려서 마침내 도착한 ○○ 교도소.

피해자와 동행한 이재웅 형사는, 접견 대기실에서 남성구가 나오길 기다렸다.

꼿꼿이 허릴 세운 후 출입문을 빤히 바라봤다.

아이 엄마는 오는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마치 지금의 현실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듯.

덜컥, 쇠로 된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플라스틱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마침내 한곳에 모인 이재웅, 남성구, 아이 엄마.

마크가 그려진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교도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화가 이뤄졌다.

이재웅은 시선을 던졌다.

부인보다 본인에게 더, 관심을 쏟고 있는 남성구와 기싸움을 벌이는 것이니라.

 

“여보…이렇게 와줘서 고마워…보고 싶었…….”

 

“보고 싶어서 온 거 아니야…우리 규빈이…구하려면 이 방법밖엔 없어서 온 거야…….”

 

“응…얼추 들었어…짭새…우리 딸 못 구하면…내가 너…….”

 

말 끝에 ‘내가 너’,라는 단어가 귀에 쏙쏙 박혔다. 당장 뛰어 들어가서 죽일 것처럼 살기를 품으며 남성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윤이를 죽인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고작 저것뿐인가?

그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신 앞에 놓인 건…아내분이 사용하던 휴대폰입니다…용의자는 분명 당신에게 연락을 해올 것입…….”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냉큼 통화를 받으려는 남성구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스피커폰으로 받으세요…내용을 알아야 저희가 상황을 인지하고…잡을 수 있습니다…….”

 

“누가 몰라? 여보…걱정 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남성구 씨…지금쯤이면 소식은 들으셨겠죠? 규빈이 구하고 싶으면…내일 오전 10시까지○○동 골목길로 오십시오…

안 그럼 당신 딸은 죽습니다…….

 

-잠시만요…우리 규빈이…괜찮은 거 맞죠?

 

-끊습니다…아 그리고…같이 있는 형사가 같이 와도 죽습니다…….

 

순간 뇌리가 스쳤다.

엉덩이로 의자를 밀친 이재웅 형사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복도를 뛰는 그의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배배 꼬인다.

 

‘처음부터 우릴 지켜보고 있었어…그래서……!’

 

교도소 정문을 열라는 신호를 손을 휘저어 다른 교도관에게 알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아주 먼 거리에서 어두운색의 SUV 차가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그는 한껏 인상을 구겼다.

 

“시x!”

 

접견실에서 들은 통화 내용을 천천히 떠올리며 휴대전화를 귀에 갖다 댔다.

 

-어…정 순경…여기 주소 불러줄 테니까 인근 CCTV 영상 구해서 이 시간대 빠져나가는 모든 차량들 다 알아봐 줘…아아…그리고…

차량 번호를 불러줄게…렌트카 같은데…어디서 빌린 차인지도 알아봐주고…내일 오전 10시…○○동으로 범인이 나타날지 몰라…

그쪽으로 지원 좀 해줘…그래…끊는다…….

 

통신을 끝낸 그의 시선이 살짝 가라앉았다.

 

‘○○동…거긴 분명…지윤이가…살해당한 장소…아니야…아니겠지…….’

 

자꾸 불길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 규빈을 납치한 자가 설마 ‘김재혁’은 아닐까,라는 조바심.

그런 사소한 걱정과 근심이 계속 양쪽 어깨를 짓누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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