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독한 형사 <3장 13화 - 장마>

1

 

교도관의 안내를 받으며 면회실로 들어간 김재혁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유리창 너머에 비친 어떤 존재를 보곤 살짝 놀란 것이다.

바로 자신이 납치했던 남성구의 딸이었다.

남성구의 딸, 남규빈 옆엔 하루 휴가를 낸 이재웅 형사가 서있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의미.

이를 본 김재혁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창틀을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이 형사 옆엔 남성구의 딸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김재혁은 눈길을 슬쩍 옮겨 규빈을 바라봤다.

똘망똘망한 눈에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규빈아…재혁 삼촌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맘껏 해도 돼…재혁 삼촌…형사 삼촌 친구거든……."

 

"네…그럼 하나만 물을게요…삼촌, 몇 밤 자면 나올 수 있어요?"

 

초등학생다운 질문.

김재혁은 일부러 눈길을 피했다.

그녀 옆에 앉아있는 이재웅의 얼굴을 슬쩍 확인하곤 다시 눈의 방향을 그쪽으로 고정하였다.

이재웅은 코끝을 슥 만졌다. 지금의 상황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니라.

김재혁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응…삼촌이…이번에 좀 큰 잘못을 저질렀어…그래서 깊이 반성해야 하는데…어쩌지…규빈이 심심해서……."

 

"괜찮아요…저도 엄마가 말 안 들으면…혼내시거든요……

그날…삼촌과 논 날…제일 재밌었어요…아빠는 못 만났지만……."

 

"정말…재밌었어?"

 

"네…저는 아빠랑 논 적이 거의 없어서…삼촌과 놀면 우리 아빠하고 노는 것 같았어요!"

 

김재혁이 고개를 떨구었다.

깊은 상실감에 빠진 듯 눈빛을 내리깔았다.

이재웅은 눈치를 살폈다.

규빈과 재혁의 상태를 천천히 살핀 후 말을 이어갔다.

 

"규빈과…삼촌이 재혁 삼촌과 좀 할 얘기가 있는데…잠깐 밖에서 기다려줄 수 있을까?"

 

"네…알겠어요……."

 

"응…고마워……."

 

딸깍.

출입문이 끝까지 닫히는 걸 보고 나서야 비로소 돌아서서 말하기 시작하는 그.

김재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부턴 어른들의 시간.

 

"재혁아…이건 형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야…형사로서 하는 말이니 잘 들어…

세상은…너에게 돌팔매질을 할 거고…손가락질도 할 거야…심하면 너의 가족까지 거론하겠지…

하지만 그건…죄를 지은 자가…마땅히 짊어져야 할 숙명이고…난…형으로선 널 용서하지만…

경찰로선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그러니까…그러니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재혁의 시선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알아…무슨 말인지…형 원망 안 해…오히려 고마워…나의 마음속에 있는…악마를 멈추게 해줘서……."

 

재웅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곧장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규빈이 아버지…아니 남성구…사망했어…내가 조금 전…왜 그 말을 했는지…네가 더 잘 알 거라 생각해……."

 

살인청부업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다쳤었던 남성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갤 떨구는 김재혁. 그의 두 어깨가 들썩거렸다.

범행을 저지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는 높이 고개를 들었다. 천장을 한 번 훑었다가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이재웅 형사의 표정을 살피고는 입을 뗐다.

 

"형 말대로…내가 짊어져야 할…숙명이니까……."

 

"그래…나도 슬슬 가야겠다…몸조리 잘해…부모님껜 안부 전해줄게……."

 

무릎을 한 번 짚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을 보인 이재웅을 빤히 쳐다보며 김재혁이 말했다.

 

"형…규빈이하고…규빈 어머니…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 좀 잘 부탁할게…나 나갈 때까지만이라도……."

 

이재웅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향했다.

 

"그래…너도 밥 잘 먹고…시간 날 때 또 올게……."

 

 

 

2

 

대한민국 과학수사가 총망라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입구 앞에 웬 남성이 멀뚱멀뚱 서있다.

키가 크고, 어두운색의 티셔츠를 입고선 청바지로 포인트를 준 건장한 30대 청년의 검은 눈동자가

정문 쪽으로 천천히 날아들었다.

도봉 경찰서 이재웅 형사였다. 그 옆엔 공 반장도 있었다.

두 형사가 발을 맞추며 길을 걸었다.

 

공 반장과 이재웅 형사의 걸음은 '부검실'이라고 적힌 방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저기 오시네……."

 

공 반장의 왼손 검지가 허공을 가리켰다.

미리 연락을 받은 법의학자가 그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이재웅은 목덜미를 한 번 까딱거렸다. 말보단 한 번의 태도가 그 사람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법이니까.

법의학자와 이재웅의 낯빛을 한 번 살핀 후 공 반장이 들어가자고 말하였다.

법의학자가 앞으로 걸어나와선 문을 활짝 열었다.

 

마치 제습기 안에다 가글을 넣은 것처럼 코끝이 찌릿찌릿하다.

진한 알코올 향을 맡은 이재웅은 코를 훌쩍거렸다.

공 반장은 팔짱을 꼈다. 본인 앞에 있는 시신을 보고선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이니라.

 

"그럼…지금부터 부검한 것을 정리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이름 유한나…나이 29세…직업은 인터넷 방송인입니다…

사인은 여러 번의 자상으로 생긴 출혈성 쇼크이며…발견 장소는…○○동 먹거리 골목이었습니다…

뭐 이 정도는 아실 거 같고…여길 보시면 자상의 흔적이 보이시죠?"

 

일회용 장갑을 낀 법의학자의 오른손이 시신의 신체 일부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칼에 찔려서 생긴 여러 개의 흉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전문적이지는 않지만…가해자는 피해자를 흉기로 찌를 때…꽤 여러 번…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부위를 상당히 많이…찌른 것으로 보입니다…그 외 추가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가해자는 피해자를 제압할 때…앞에서 한 손으론 입을 막고…나머지 한 손으로 복부를 찌른 것으로 보이며…

아마 피해자는 고통 속에서 고성도 지르지 못한 채…계속 흉기에 찔려가며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범인은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흉기를 사용했다는 말씀입니까?"

 

"예…아 그리고…여기 뒤통수 쪽에 보시면…피가 고인 흔적이 보이시죠?

이건…보통 무게 중심이 뒤쪽으로 쏠렸을 때…그러니까 딱딱한 벽이나…기둥에 부딪칠 때 생기는 상처인데…

아마 가해자는 피해자를 벽 쪽으로 몰아간 뒤…흉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르르릉.

때 마침 걸려온 전화 한 통.

 

"나머지는…재웅아…네가 해라……."

 

마스크 한쪽을 벗으며 그가 걸어나갔다.

 

얼 마 안 돼서 부검실을 나온 이재웅.

그가 자판기 앞에 서 있는 공 반장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방금 용희하고 통화했는데…일대 CCTV와 블랙박스를 전부 수거했더니…CCTV는 그날 비가 와서…

화질이 너무 안 좋고…블랙박스는 보긴 봤는데…범인이 지나치게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도무지 인상 확인이 불가능하단다……."

 

"당시 차림은 어땠습니까?"

 

"얘기하는 거로는…마스크로 입을 가렸고…우비를 입었다 하더라고…아, 그리고…

더 의심스러운 건…당시 입고 있던 옷이야…일반적인 브랜드 옷이 아니래…뭐라고 하더라…커스텀?

그 왜…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입는 옷…그런 거 있잖아……."

 

"아마…우리가 옷에 대해서 조사를 할 수 있으니…그걸 대비해서 일부러 그런 옷을 택한 거 같은데요……."

 

"내 생각도 그래…부검 결과는?"

 

"예…자상은 들었으니 됐고…뒤통수 쪽에 부딪치면서 생긴 흉터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 외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고요……."

 

"왠지 불길해…뭔지 모르겠지만…예감이 너무 안 좋아……."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답답한 지 서로 한 번씩 한숨을 내쉬었다.

 

 

 

3

 

습기를 동반한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벌건 대낮의 어느 날.

긴 머리를 머리끈으로 질끈 묶은 채 그 밑에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선

한 손에 우산을 든 30대 여성이 터벅터벅 길을 걷고 있다.

꽤 정성 들여 꾸몄는지 얼굴엔 화장도 좀 되어 있었다.

예쁘게 화장한 그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아우…뭔 비가 이렇게 내려……."

 

뚜벅뚜벅.

 

저기요 -

자신의 뒤에서 들려온 나지막한 목소리.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네?"

 

그 순간,

악마의 부름을 받은 검은 손이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두 번째 잔혹동화가 시작된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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