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내가 잘하는 스포츠 - 알까기

 

나는 몸치다.

 

그냥 몸치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을 평균 이하로 해내는 사람이다.

 

방향감각도 없고, 공간지각능력도 떨어진다.

 

눈도 나쁘고, 내 장기에서 그나마 쓸만한건 대장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 나에게도 유일하게 잘하는 스포츠가 있으니, 그건 알까기.

 

나는 바둑알로 하는 알까기에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감히, 그러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어렸을 적부터 알까기를 했는데,

 

나의 윗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셨고,

 

할아버지는 바둑 아마 초단이셨다.

 

그런 할아버지께는 나무로 된 바둑판이 있었고, 사기로 된 바둑알이 있었다.

 

그걸로 나랑 내 동생은 알까기를 했다.

 

아파트였지만, 윗집이 할아버지 집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우리는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별의 별 짓을 다 했는데,

 

그러다 지치면 알까기를 했다.

 

 

사기로 된 바둑알로 알까기를 하다보니, 당연히 바둑알은 깨지고, 

 

나중엔 성한게 몇개 없을 정도로, 수년간 우리는 알까기를 했다.

 

나중엔 하다하다 양 끝점에 바둑알을 놓고 한번에 쳐서 맞추기도 했다.

 

위에서 내가, 나보다 알까기를 잘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고 했는데, 그나마 나만큼 하는 사람을 꼽자면 그건 내 동생이다.

 

우린 거의 막상막하 (동생은 이렇게 주장하지만, 나는 내가 좀 더 잘했던 것 같은데)였다.

 

 

나중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그 바둑판은 아마도 고모부께서 가져가셨다.

 

이후 우린 알까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따금 학교에 접이식 바둑판과 알을 갖고 오는 애가 있으면 어김없이 알까기 혹은 오목판이 벌어졌는데,

 

알까기에선 나를 이길 사람이 없었다.

 

그냥 비슷하게 해내는게 아니라 난 무적이었다. 

 

아마 스포츠엔 재능 없는 손주에게 할아버지는 이것 하나 물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후 케이블 게임티비에서 스포츠처럼 알까기가 유행했을 때도 나는 이따금 알까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무적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맞추냐고 했는데, 나는 그냥 하다보니 된거다. 당신들이 몇시간씩 몇년을 알까기를 했으면 아마도 나보다 잘했을 것이다.

 

 

그 비싼 바둑알을 우리가 다 깨먹었다고 어른들께 혼난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할아버지는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알까기를 하고 있으면 그냥 옆에서 아무 말씀없이 몇시간을 바라만 보고 계셨다.

 

 

아들들이 알까기를 시작했다.

 

작년 추석쯤 부산에 내려갔을 때, 동생이 애들한테 장난감 갖고 싶은게 무언지 물어보았고,

 

그 때 작은 애가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접이식 바둑판과 바둑알로 알까기를 시작했다. 이제 1년이 다되어간다.

 

 

그래서 애들이 나랑 하자고 한다.

 

집에서 딱히 애들과 놀게 없고, 애들이 심심해하면 바둑판과 알을 꺼내오라 하고, 우린 알까기를 한다.

 

그러다보면, 괜히 생각난다.

 

할아버지의 바둑판이.

 

언젠가 고모부를 뵐 일이 생기면 혹시라도 주실 수 있을까 여쭤보고 싶은데,

 

괜히 이제와서 그런 말을 꺼내기가 좀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고모부한테도, 장인어른과의 유일한 추억이 바둑이셨기에, 그 바둑판을 가져가신 것일텐데,

 

괜히 조카가 달라고하는게.

 

그런데 다른건 다 상관없고 그 바둑판이 굉장히 그립고 갖고싶다.

 

나한테는 그 바둑판이 할아버지를 추억할 물건인 것 같다.

 

 

댓글 3

리나군 작성자 2023.07.19. 22:39
 고정닉
희안한게 있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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