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빛나는 왕이 아닌 것들에 대하여

1.

 

당신은 아십니까, 한 왕의 모습을. 20년이 넘도록 한 땅을 통치해온 한 왕의 모습을. 이제부터 전 그 왕이 아닌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까?

 

저는 분명 그가 아닌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평선에 다가가는 것만큼이나 다가가는 것이 불가능한 그의 모습을 상상하시겠지요. 백발이 성행하는 나이가 무색한, 저기 동양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속 인물인 황충이라는 자의 머리에 왕관을 씌운 모습이거나, 카를로스 대제의 모습을 기록한 동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모습을 상상하셨겠죠. 아니면 영국에서 잔뜩 미화되어있는 아서 왕을 상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뤄낸 업적이나 그 일면 뒤에 숨겨진 그림자를 상상하시던 분들도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어쩌면 말하지도 않은 왕의 질펀한 여자관계를 상상하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왕이 아닌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아닌 것들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말을 했지만, 당신들은 '말하지도 않은' 왕의 모습을 상상하셨던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제가 말한 왕이 아닌 것들, 그러니깐 자물쇠를, 저의 친구를, 여왕을, 친구의 부모님 같은 존재들을 상상하셨나요? 푸른 동산을 상상하셨나요?

 

그럴 리가. 그야 왕이 아닌 것들을 말하면 너무나도 막연하니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에게 그 왕을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그건 당신의 상상이 잉태한 왕이니까요. 이상한 말이겠지만 그것은 제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숙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웃기시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만, 사실인 것을 왜곡시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게 거짓말이라면, 저로서는 최고의 노력을 덧입힌 진심어린 거짓말일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당신은 멋대로 왕을 상상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증거입니다. 그 왕은 지금 어디에 서있나요?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나요? 푸른 동산 위에 우뚝 서있습니까? 자물쇠에 갇힌 여왕을 구하기 위해 전투를 하고 있습니까?

 

그래요, 그것은 저의 숙명입니다.

 

저는 남부럽지 않은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보다 유복한 집안이었다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주위에 살던 이웃들과 비슷한 형편이었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평지에서, 남들과 똑같은 주식을 먹고, 남들처럼 개성 있는 옷을 입고, 남들과 비슷한 유행가를 들었고, 남들과 비슷하게 사랑을 했고, 남들처럼 똑같은 학교를 다니고, 남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겁니다. 저는 대체적으로 좋게 자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좋은 발음이 그 증거죠. 그렇기에 당신의 귀는 제 말을 정확히 듣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당신의 머릿속을 지나가는 것은 저의 어린 시절이 아닙니까? 그 모습은 강아지와 뛰노는 모습일 수도, 악소리가 날 정도로 자지러지게 우는 모습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저는 좋게 자라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좋은 성장의 흔적 중 초등학생 3학년 때 있었던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하려고 합니다. 제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되기 전, 가장 선명했던 기억입니다.

 

당시 어리고 어리던 저의 친구들은 누구나 여자애들을 싫어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 행동에 불과한 것이지만, 당시로써는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가치관을 다르게 정립하며 자랐으니 당연하죠. 저희가 위대한 역사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을 좋아하는 동안 여자애들은 역사 속 여왕들의 이야기를 더 선호하며 그녀들이 되기를 원해왔습니다. 우리가 황혼을 닮은 붉은색이나 황금색, 푸른 하늘을 닮은 강력한 왕조의 파란색을 좋아하는 동안, 여자애들은 여왕 같은 분홍색과 천사나 백조를 연상시키는 흰색을 좋아했습니다. 저희가 플라스틱 검이나 권총, 미니카를 가지고 노는 동안, 여자애들은 헝겊이나 솜, 밀랍으로 모양을 고정시킨 인형들 가지고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당시 저희와 여자애들의 시야에는 각자의 그것들만 보였을 겁니다. 그렇게 전혀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며 학교에서도 섞이지 않고 놀곤 했죠. 저 역시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하며, 영웅 놀이를 하며, 여자애들의 놀이에 혀를 내밀고 얼굴을 찌푸리며 역정을 내곤 했습니다.

 

당시 친구들 중에서는 무슨 놀이를 하든 언제나 대장을 맡던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골목대장 같은 아이였죠. 그 아이는 우리들 중에서도 제일 여자애들을 싫어했던 아이였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남자아이들 몇 명을 교실 군데군데에 배치시켜놓고서는 거기서 종이뭉치를 주고받으며 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그 배치가 워낙 절묘했었는데, 그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종이뭉치를 맞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슬려하며 섣불리 모여서 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아이는 그것을 노렸던 것입니다. 이 아이가 왕이냐고요? 잠자코 계속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아이는 그렇게 여자애들이 놀지 못하도록 교실을 장악해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수비적으로 말이죠.

 

마치 자물쇠 같았습니다. 절대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언제 종이뭉치를 뚝 떨어지게 던질지 알 수 없는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던 그 아이들의 모습은 풀리지 않는 견고한 자물쇠와도 같았습니다. 여럿의 장인이 어루만지며 복잡한 설계를 통해, 오직 하나의 존재에게만 자신을 허락하는 자물쇠 말이죠. 저는 그런 단단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에는 저 역시 그 ‘놀이’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제가 던지는 종이뭉치에 아이들을 휘어잡는다는 생각이 들게 되더군요. 어디로 던지느냐에 따라 다른 남자아이들이 움직이고, 그렇게 새로운 진형 같은 것이 형성이 될 때마다 저는 알게 모르게 쾌감을 느꼈습니다. 저의 의지가 자유롭게 발휘가 되는 것 같았거든요. 어느새 종이뭉치는 저에게 몰리게 되었는데, 그 ‘놀이’를 할 때마다 저는 종이뭉치를 가장 많이 어루만지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자유롭게 그 아이들의 배치를 조정했습니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그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늘어났고, 그럴수록 자물쇠는 정교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물쇠는 형편없이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열쇠가 아닌 외부의 것으로 말이죠. 예, 맞습니다. 절단기로 뚝 잘린 기분이었습니다. 저희의 그 ‘놀이’는 결국 여자애들이 선생님을 불러오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선생님을 부른 아이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여왕’으로 불리던 아이였습니다. 당시 저희는 재수 없는 귀부인의 이미지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보통 그런 표독스러운 여자아이를 마귀라고 불러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그녀는 비굴한 마귀와 다르게 여왕처럼 자존심이 매우 강했고, 또 늙은 마귀할멈처럼 못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마치 그 ‘놀이’를 만든 아이의 여자모습이 있었더라면 그녀였을 겁니다. 그 아이는 앞장서서 선생님에게 그 ‘놀이’를 고발했고, 그 ‘놀이’에서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던 저는 교무실에 불려가게 됐습니다. 근데 그 ‘놀이’를 만든 아이가 저와 함께 가려하더군요. 이 ‘놀이’를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결국 저와 그 아이는 그 날 부모님들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 법이었죠.

 

며칠 후, 그 여왕과 제가 말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든 그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인이 어루만진 것 같던 자물쇠를 망가뜨린 것에 대해 너무나도 화가 났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자존심이 높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더군요. 그녀는 절대로 말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세에 밀리던 것은 저였습니다. 그 때, 그 ‘놀이’를 만들었던 아이가 제 옆에 오더군요. 그러고는 옆에서 절 거들어주는데, 둘은 무리였던 것이겠죠. 결국 여왕은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이 자신의 패배로 인한 억울함인지, 여자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모습에 당황한 저희는 그 아이를 달래주고, 결국 저희 역시 그녀에게 사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더 이상 교실에서는 자물쇠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자물쇠의 존재 역시 머릿속 어딘가의 수평선으로 파도처럼 사라지게 되었죠. 그러나 그 이후, 그 아이는 제게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그 아이는 저와 친해지려 한 것일까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째서 이 아이는 저를 변호해준 것일까요? 이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그 자물쇠를 처음에 조립했던 아이들 속에 저는 없었는데 말이죠. 저는 그 자물쇠가 정교해지게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참여한, 반 친구 중 하나였을 뿐인데 말이죠. 당시 9살의 나이로 의리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이 들지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자라면서 봐온 모습을 보아 그 아이는 과감한 리더십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버릴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인물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손익을 잘 계산하던 아이가 부모님의 신뢰보다 저를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 아이는 예측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아이는 언젠가, 그러니깐 적어도 몇 년간, 언제 같이 놀 수 있고, 언제 같이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언제……. 관둡시다. 제겐 이런 말장난 같은 것을 조리 있게 말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격은 저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여튼 그렇게 그 아이와 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희 둘은 성격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같은 음식을 좋아했고, 같은 노래를 부르며 지냈습니다.

 

사실 우정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어떠한 계기가 있으면 그것이 촉매작용을 해서 진득한 사이로 번져나가는, 쉽게 변하는 만큼 쉽게 찢어지는, 그러나 다시 붙는 찰흙과도 같은. 그런 흔들리는 것 같으면서 몇 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2.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같이 갈 데가 있다고 했습니다. 어디냐고 물었지만, 그 아이는 가보면 안다면서 저의 손목을 붙잡더니 끌고 가듯 저를 데려갔습니다. 처음 타는 롤러코스터를 경험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죠. 그러나 곧 목적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한 건물이었습니다. 앞에서 봤을 때는 어떤 모양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매우 거대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석조물은 저를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잠기게 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여전히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죠.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저는 까치발을 한 채, 해엄치는 사람이 되어, 결국은 가라앉을 것 같았습니다. 당시 근처에 사람이 많았었는데, 그들 역시 분위기가 되어 그런 느낌에 일조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는 하나가 되어 무거운 공기처럼 저를 압박했습니다. 사실 당시 사람들의 분위기는 매우 밝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불안감을 느꼈던 것은 아마 그렇게까지 많은 인파를 직접 본 것이 처음이어서일 것입니다. 그 아이는 인파 속을 요리조리 다니며 자신의 부모님에게까지 인도(引導)했습니다. 지금 생각하건데 그 인도는, 제 손목을 놓지 않던 그 손목은 아마 지도였던 겁니다. 그의 부모는 제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든 시발점인 셈이죠. 그들은 전부 하늘색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들 뿐 아니라 당시 인파의 대부분이 하늘색의 뭔가를 몸에 달고 있었습니다. 간혹 금색의 날개를 형상화한 뭔가를 몸에 단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치 여름하늘처럼 파랬습니다.

 

그들은 그 아이와 뭔가를 얘기하더니 저에게 친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처음에 경계했지만 곧 제 친구를 보고 경계를 풀었죠. 그들은 제게 재밌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쉽게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죠. 그들의 안내를 따라 그 건물 안에 들어섰을 때, 저는 전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태껏 알고 있던 것들에서는 전혀 유추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은 동산으로부터 뿐이었습니다. 건물의 구조물들을 지나치자, 향긋한 풀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더군요. 마치 꿈과 같았습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보였습니다. 그래요, 그곳은 바로 축구경기장이었던 것입니다. 동산같이 잔디가 가득한 그 모습에 저는 넋을 잃었습니다. 처음 건물의 겉면을 봤을 때 느끼던 압박감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천국의 동산을 탐사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응원가와 함께 선수들이 입장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가지의 과정을 거친 이후,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결과는 기억나지가 않군요. 그러나 당시 그들의 모습만큼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들이 뛰는 모습에 저는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자물쇠다.

 

그래요. 그들의 모습은 자물쇠와도 같았습니다.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오더군요. 저와 그 아이가 주도했던, 여왕이 부셔버렸던 그 자물쇠가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의 정교함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고, 견고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에 저는 쾌감을 느꼈습니다. 축구장을 처음으로 간 것이 벌써 그렇게 됐군요.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이렇게 제 감각 속에 잔존합니다. 동산의 이미지와 함께 말입니다. 물론 그때로부터 긴 세월이 지났으니 확실하게 보존해왔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왜곡의 정도는 심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산의 이미지를 그라운드와 겹쳐놨기에. 자물쇠의 기억도 한 몫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이상의 왜곡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그 팀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 팀의 이름은 SS 라치오였죠. 저는 라치오 주에서 살아왔고, 그들의 팬인 채로 쭉 자라왔습니다. 자라오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저의 부모님 역시 그 팀의 팬이셨습니다.

 

그것은 저의 숙명이었나 봅니다.

 

부모님은 라치오 팬들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 만한 서포터즈였다고 하더군요. 어머니께서 저를 낳은 이후, 여러 가지 사정상 경기장에 발을 끊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축구로 깊어지다 다시 일상으로, 세속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저 때문에 말이죠. 그들은 200년을 넘긴 라치오의 존재보다, 그 푸른 공간에서 황금빛 날개를 자랑스럽게 뽐내는 독수리의 존재보다 저를 택하신 것일까요? 어쩌면 기록관에 기록되어 이름을 남기게 될 영광을 얻는 것보다 저의 신변을 택하신 것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라치오 팬들은 세계에서 가장 거친 팬들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을까요?

 

모릅니다. 어찌 됐든 저는 라치오의 팬이 되었고,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이 되었습니다.

 

라치오의 팬이라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자가 있습니다. 저 역시 그의 존재를 10살 때, 그러니깐 축구를 알게 된 첫 해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늑대를 아십니까? 달이 뜨면 길게 목을 뽑고, 긴 목처럼 긴 소리를 길게 뽑는 그 동물 말입니다. 요즘 그 동물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만, 저희 마을에는 아니, 제 나라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늑대가 있습니다. 저희의 시조인 로물루스와 그의 형제인 레무스의 어머니 말입니다. 그들이 갓난아기였을 적, 그 늑대는 젖을 먹이며 어머니가 되어준 이야기죠. 그리고 로물루스가 세운 나라가 저희의 전 왕조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제국 중 하나인 로마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도의 이름이기도 한 그 이름말입니다. 그리고 그 늑대를 마음대로 사용한, 근본 없는 이방인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예전에 그 치욕스러웠던 파시스트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이죠.

 

그들은 건방지게도 옛 위대한 왕들을 의미하던 붉은색과 금색을 멋대로 차용했고, 쭉 이용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가 가진 고유의 색이었던 하늘색과 황금색을 무슨 권리라도 가진 것 마냥 업신여겼죠. 그리고 그들의 선봉에는 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축구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사정없이 데뷔했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저의 운명과도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죠.

 

그래요, 그는 저의 운명이었습니다.

 

저는 언제 그를 의식하게 된 것일까요? 아마 축구를 처음 접한 지 6번째가 되던 해, 그러니까 98년 11월에 담겨있을 것입니다. 데르비 델라 카피텔라(로마더비)였죠. 당시 저는 당신들과 함께 저기 저 야만인들을 야유하며 우리의 팀을 응원했습니다. 옆에는 제 친구도 있었죠. 그래요, 그 푸른 연기와 하얀 연기 속에서 저희는 같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시 98년 말, 3월 코파컵의 우승으로 인해 저희의 분위기는 여전히 굉장했고, 그들의 분위기는 매우 침울했으니까요. 저번 시즌서도 그들을 완전히 짓눌렀기에 저희는 이번에도 이기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경기가 시작되자, 저희는 절망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전반전 25분 때 그 야만적인 팀의 포워드였던 델베키오의 골로 저희는 순식간에 충격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니까요. 근 2년 동안 져오지 않았기에, 이렇게나 빠르게 실점했다는 것에 대해 매우 놀랐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안도했었죠. 저희의 믿음직했던 자물쇠의 선봉장 만치니가 로빙패스를 원터치로 만회골을 넣었으니까요. 그렇게 분위기는 후반전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만치니가 프리킥 상황에서 역전골을 터뜨렸습니다. 10분 후에는 살라스가 패널티킥으로 한 골을 더 추가했었죠. 그 순간 저는 이번에도 이기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친구가 말하더군요.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는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고요. 하지만 저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누가 감히 저희의 아니, 저의 자물쇠를, 제가 제일 동경하던 장인들이 만들어낸 자물쇠를 해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곧 그건 저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방언이, 그러니까 진심을 담은 거짓말 같은, 그 무거운 진실이 그것의 시초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당시 했었습니다.

 

후반전 중반이 그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갑자기 패스를 주고받던 그 야만인들 중, 10번을 가진 선수가 난데없이 슈팅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슛팅은 겨우 막히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워하던 그의 눈빛은 매우 강렬했습니다.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더군요, 제 마음속의 자물쇠들은 그 선수의 존재감으로 인해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플레이를 펼칠지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겠죠. 그렇게 78분, 에우제비오가 그들에게는 희망이었고 저희에게는 절망의 시작과도 같았던, 추격골을 넣었습니다. 그 골의 시작은 그 10번이었죠. 그 좁은 박스 내에서 3명을 제치더니 달리던 방향과 반대쪽으로 패스를 주고, 에우제비오가 골을 넣었죠. 저희는 그 플레이에 매우 놀라고, 우리의 수비진을, 저의 자물쇠를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그 10번의 플레이에 매료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 창의적인 모습에서, 어떤 플레이를 할지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솟아나는 매력. 그리고 4분 후인 82분, 그 선수, 로마의 10번이 골을 넣은 것입니다. 그의 골은 매우 약이 오르는, 조용한 슛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녀린 슛은 너무나도 절묘해서 골키퍼는 도저히 만질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에 아려오더군요. 그렇습니다. 칩샷이었죠. 그 조용하고도 간교한 슛은 골라인 직전에서 얄밉게 튀기더니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순간 야만인들이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가 전광판에 높이 빛났습니다.

 

10. Francesco Totti (프란체스코 토티)

 

그래요. 그 이름은, 그는 저의 운명이었습니다.

 

3.

 

이제 그 운명에 대해, 숙명에 대해 말할 차례군요.

 

아시다시피 저는 한 서점에서 일하는 청년입니다. 대학도 아니고, 고등학교도 아니고, 도서관도 아니고, 동물원도 아니고, 바로 서점입니다. 아버지가 제게 물려주신 곳이죠. 다양한 기록들을 보관하는 공간입니다. 과거의 기록부터 현재의 기록, 미래를 추측하는 기록(그마저도 과거지만)들을 보관하는 공간 말이죠. 지루해보이지만 멋진 직업입니다. 출세, 명예, 고수익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지만 말이죠. 그 어떤 정치인도 팬 대를 꺾을 수 없고, 출판을 막을 수 없지만 저는 그 출판물을, 피땀 흘려 고생한 결과물을 가장 먼저 접하고, 가장 먼저 평할 수 있으며, 그들의 밥줄 중 하나를 막을 수 있는 자물쇠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요 저는 자연스럽게 자물쇠를 지니고 사는 것입니다.

 

제가 일하는 서점은 그렇게 거대한 서점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장한 서적들도 그것들에 비해 많이 없죠. 수익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중학생 때 아르바이트로부터 시작된 이 일을, 10년이 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점입니다. 동물원이 아니고요. 그래서 매우 고요한 곳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고요와 함께 깊어진 곳일 수도 있겠군요. 또한 수익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은 손님들도 많이 없다는 뜻이겠죠. 특정한 때를 제외하면 손님 수가 하루에 스무 명도 되지 않습니다. 간혹 어떤 책에 대한 신드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고요한 공기가 내내 고여 있습니다. 책을 홍보하는 밝은 조명, 청결한 실내, 그리고 담처럼 쌓인 책들. 기록은, 고요는 그런 곳에서 생기고 그런 곳에 머뭅니다. 그렇게 깊어가는 곳은 몇 없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서점입니다.

 

닫혀있는 서점의 밤을 들여다 본 적이 있습니까? 낮에도 고요한 그 서점이 관광객도 끊기는 웅장한 로마의 유물들과 함께 고요로 깊어가는 초연한 다수의 존재들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까? 자랑으로 들리겠지만 저는 그것이 일상입니다. 막연하지만 포근한 침묵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서점의 어둠은 농후한 커피와도 같습니다. 거친 책의 모서리들은 쓰디쓰지만 어쩐지 묘한 만족감과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니 말이죠. 달콤하냐고요? 글쎄요, 당신의 몸이 그 공간에 달라붙는 기분이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것이 달콤하다는 것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서점의 주인이란 그런 서점의 어둠을 관찰하는 자입니다. 손님들이 모두 발길을 끊고 난 후에도 그곳을 마지막까지 바라보는 자이죠. 기록을 저장하는 자입니다. 샘처럼 고여 있는 책들의 마지막 모습을 뇌 언저리에 기록하고, 저장하고, 보호하는 자입니다.

 

이런 좋은 직업에도 사소한 문제들이 보이기는 합니다. 로마라는 곳은 그런 곳이니까요. 웅장하면서도, 성스러우면서도, 낭만을 함유한 페로몬을 풍기는 곳. 어떻게 이곳을 찾았는지 관광객 차림의 젊은 연인들, 혹은 부부들이 이 서점에 들르지요. 그들은 사실 서점 내에 있는 책들은 아무래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책들을 만지면서, 유독 페이지가 넓은 책을 펼치더니 그 속에 스위퍼처럼 얼굴을 숨기고는 키스를 한다든지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는다든지, 은밀한 곳에 손을 닿게 한다든지. 역사가, 문화가, 기록들의 산지에서, 기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참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치욕스러웠던 파시스트의 역사부터 최근의 부패한 총리를 꼬집는 유머들이 담긴 기록들 앞에서, 기록되지도 못할 것들이 하는 짓을 상상해보세요. 이미 썩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육체들이 말입니다. 서로의 귀를 애무하고, 키스를 하고, 뒤에서 가슴을 만지고, 심지어는 서로에게만 허락된 은밀한 곳을…… 상상만 해도 역겹고 가소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제 친구가 그것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요? 저는 그를 이곳에서 만나본 적은 있지만 그가 있을 때 그것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때문에 저로서는 확답을 할 수가 없죠. 그러나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삶이라고. 生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는 그런 것 또한 살아있는 동안 거쳐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제가 스물의 생일을 넘긴 해, 경기장 하늘에 밤이 번져나갈 때, 그가 제 옆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빛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빛이 나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빛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가 설령 왕이라 해도 그의 삶은 삶이 아니다. 그것이 조용한 성격인 내게 이야기했던 것인지, 이미 거의 저문 황혼에게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가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던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의 얼굴이 발갛던 것은 기억에 납니다. 그 말을 몇 번 중얼거렸을 때쯤에는 칠흑같이 어두웠던 기억도 납니다. 그 노을은 의미를 관철시키기 위해 몸부림 친 것입니다. 그 모습은 식어버린 로마의 유물들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6.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살이었죠.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색은 진실을 가끔씩 말해주죠. 그때 본 그의 얼굴색은 경기장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그것과 일치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그때 죽어있었을지도 모르는군요. 사랑, 노래, 만찬(Amore, Cantare, Mangiare) 셋을 경험한 이탈리아 사람은 만약 그 셋 중 하나가 사라지면 망가지고 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그는 애인과 헤어졌었습니다. 그는 망치로 후두부를 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고주망태로 살아갔습니다. 의지가 강했던 친구였기에 저는 그가 다시 일어나리라 믿었었습니다만 그것은 착각이었나 봅니다. 물론 이것이 정말 이유가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 계속 마셔왔던 술이 쌓이고 쌓여 터져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그가 애인과 헤어지게 된 이유였거든요. 술을 너무 마셔서? 그럴 리가요. 그는 간암에 걸려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걸린 암의 속도가 빠르다더니, 발견했을 때는 이미 간의 기능이 상실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것을 애인에게 가르쳐줬습니다. 그 와중에도 술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말이죠. 이후는 아까 말한 대로 됐습니다.

 

어쩌면 그는 경기장에서 봤을 때부터 죽어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세상을 뜬 후 저는 더 말이 없어지고, 더 무기력하게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연명에 가까웠죠. 축구 경기도 보지 않고, 청춘의 낭만, 의욕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서점에도 잘 나가지 않고, 친구도 없었으며, 식욕은 최악이었습니다. 뭔가를 먹으면 뱉어대기 일쑤였고, 마치 몸은 이미 죽음을 소화시켜 몸 한가운데에 배치시켜놓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몸이라는 것이, 영혼이라는 것이 그렇게 깡마를 수 있었다는 것에 놀라워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밀라노의 병원에서도, 멀리서 건너왔다는 동양의 약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구원해준 것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있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여왕이었습니다. 그 3학년 때 여왕 말입니다. 제 소중했던 자물쇠를 절단기로 부셔버린 그 여자아이, 제 가장 친한 친구를 닮은 여자아이. 부모님이 만류하던 것을 어쩐지 뿌리치고 싶어 서점 일에 나섰는데, 서점에 들어온 첫 번째 손님이 그녀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 때 1년에 한두 번 정도 볼 수 있던, 그마저도 우연히 서로가 각자를 목격할까 말까 했던 우리는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저의, 당시는 저의 아버지의 서점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인구 270만 명이 사는 로마에서 ―혹시 라치오 주로 범위를 넓혔다면 더 심하죠. 570만 명이 사는 주니까요―, 그 많은 서점이 있는 문화의 수도 로마에서, 그것도 제 아버지 서점에서 재회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마치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부끄럽지만, 그녀는 초등학생 때부터 저를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한다고 했죠. 그러나 그녀는 그대로였습니다.

 

물론 외양은 많이 변했죠. 가슴이 솟아올랐고, 엉덩이가 도드라졌으며, 머리카락은 윤기를 별처럼 흘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한 것은 당시 봤던 그 당찬 모습입니다. 그녀는 그때의 모습 그대로를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강한 자존심과 똑 부러지는 말투, 그리고 친구들을 휘어잡는 강한 리더십을 말이죠. 대다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흠모했었고, 소수(아마 그녀에게 고백하고 차인 자존심만 소유한 사내들)는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녀 몰래 불쾌한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그것이 사실인양 대학을 지배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사실 그녀는 대학에 입학한 후 성격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어디에 가든 자기 의견을 내지 않고, 프랑스 어도 공부하며, 16세기에서나 볼 법한 과거의 교양을 배우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성격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죠. 결국 그녀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녀를 만나고 저의 몸에서는 죽음이 조금씩 발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뼈를 보여주던 제 거죽에는 피가 돌기 시작했고,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성격은 조금씩 밝아졌고, 저의 사고를 다시 논하고, 축구를 시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에 더욱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밤낮 할 것 없이,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제 집에서든, 그녀의 집에서든, 침실에서든, 거실에서든, 부엌에서든, 심지어 화장실에서든 사랑의 행위를 나눴습니다. 그녀와 저의 성기는 언제나 하나처럼 붙어있었죠. 마치 예전부터,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보다 더 오래된, 아마 세포를 넘어 전생―그런 것이 정말 있다면 말이죠―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그리고 그 사이에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붙어있었습니다. 제 몸이 약해져 있던 동안 빠져있던 사랑이라는 것이 다시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저의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래요, 그녀는 저의 사랑이었습니다.

 

고마워, 사랑해. 라는 말을 저는 자주 그녀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습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녀와 입술을 맞췄고, 잊을 만하면 그녀가 민감해하는 부분을 애무하며 고마워, 사랑해. 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녀가 대학에 있을 때, 제가 서점에서 일을 할 때, 저는 전화를 걸어서 고마워, 사랑해. 라고 말했습니다. 왜였을까요? 더 이상 저는 자물쇠에 집착하지도 않고, 당시의 담임선생님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연결고리는 남아있지 않고 상처만 있는데 저는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에 집착했습니다. 그 이상의 연결고리도 없는데 말이죠.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저의 입은 무거운 진실을, 혹은 진심어린 거짓말만을 말한다고 했죠? 저의 말은 얼음처럼 묵직하게 굳어있었고, 그것은 알게 모르게, 심지어는 저 자신에게까지 신뢰를 줬습니다. 셀 수 없이 그 두 단어를 그녀를 향해 말하더니 어느새 저는 정말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사랑이 화산처럼 샘솟았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향한 저의 사랑은 나날로 깊어갔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을 의미하는 먹고, 사랑하고, 노래하라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이런 것도 있죠. 술을 먹고, 축구를 사랑하고, 오페라를 노래하라. 저희는 집에서 와인을 마시며 사랑을 속삭였고, 밖에서는 오페라를 보며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건강을 완벽히 회복한 이후, 그녀와 저는 약간의 갈등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동안 축구를 텔레비전으로만 봐왔기 때문에 완전히 회복한 다음날, 곧바로 축구를 보러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갈등의 계기가 되었다니요. 그녀가 축구를 싫어해서? 그럴 리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그 북쪽에서 온 야만인, 그러니까 AS로마의 팬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갈등은 곧 사라졌습니다. 저희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말이죠. 그해는 2006년, 그러니까 독일에서 월드컵이 일어났던 해였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러웠던 라치오의 팬, 야만적인 이들의 팬, 밀란의 팬, 인터의 팬, 유벤투스의 팬, 나폴리의 팬 할 것 없이 모두가 이탈리아라는 국가를 대표한 아주리, 푸른 전사들을 응원하게 되는 해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제 주위 많은 이들이 독일에 갔었습니다. 제 부모님들 역시 제가 독립한 이후, 다시 라치오의 팬으로 돌아갔고, 월드컵이 시작되자 조국을 응원하기 위해 독일로 가셨습니다. 저희는 밤부터 동이 틀 때까지 집에서 ―가끔은 서점에서― 사랑을 나누고,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낮이 되면 저는 서점에서, 그녀는 대학에서 나라 별 친선경기들을 봤습니다.

 

아까 제가 말했죠? 저에게는 운명이 있다고, 운명의 이름이 있다고. 맞습니다, 로마의 10번 프란체스코 토티 말입니다.

 

사실 제가 아프기 직전, 저의 친구가 죽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최고의 선수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2002년 한국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편파 판정에 의해 퇴장당한 이후에도 말이죠. 그보다 좀 더 앞선, 그러니까 제가 처음으로 그의 모습을 인상 깊게 봤던 98년 첫 데르비 델라 카피텔라 이후, 2000년. 카펠로 감독이 그를 3/4선 즉, 1.5선의 선수(트레콰르티스타)로 쓰기 시작한 이후, 그는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추락은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2년 후였습니다. 유로 2004 첫 경기, 덴마크와의 대결이었죠. 그는 심판이 보지 않는 사이에 덴마크 선수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것이 적발되어 이후 3경기 출장 금지 처분을 받게 되었었죠. 이후 우리의 푸른 전사들은 1승 2무의 성적을 거뒀지만 2승을 차지했던 덴마크와 스웨덴에 의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습니다(물론 국가대표 때와는 다르게 리그에서는 언제나 평탄한 모습을 보였다고 여왕은 말합니다).

 

당시 저는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저의 아름다운, 하늘과도 같은 파란색과 그 위를 활공하던 금색의 용맹한 독수리가 새겨진 자물쇠를 간단하게 부셔왔던 그의 추락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물론 부셔질 때마다 그를 향한 분노가 우선 가시를 돋게 했지만, 그 이후, 그의 환상과도 같은 해체 솜씨에 감탄을 해왔던 저로서는 매우 안타까웠던 것이었죠. 라치오 팬으로서 꼴좋은 것이 아니냐고요? 물론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 총알 두 발이 들어있는 권총을 소지한 채로 독사, 호랑이, 늑대, 토티와 구덩이에 갇혀있다면, 저는 망설임없이 토티에게 두 발을 전부 쏠 테니까요. 라치오와 토티의 관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원수로서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아주리의 한 일원으로서 좋아합니다.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그런 것입니다.

 

월드컵 때 그는 아주리의 상징과도 같은 등번호였던 10번을 받았습니다. 그 사실에 저는 어째서 델 피에로가 아닌 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무한한 신뢰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2000년대 초부터 유로 2004 때까지 쌓여온 신뢰감이라는 것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저와 제 친구는 단 몇 달 만에 가장 친한 친구가 됐었던 사이니까요.

 

그것은 경외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로마가, 아주리가, 이탈리아가 그에게 표하는 경외심일 것입니다. 그 환상적인 몸놀림과 패스는 저희 라치오 뿐 아니라, 이탈리아도 표방하는 자물쇠 즉, 카테나치오 전술에서 우리는 필요로 했고, 그는 그런 우리의 기대에 충분히 대응해줬으니까요. 그렇기에 그가 여전히 10번을 다는 것에 특별한 불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10번으로서 어떤 경기를 펼쳐줄지 기대가 생겼었죠. 10번의 존재란, 특히 이탈리아 축구에서 10번의 존재란 그런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마 그것은 경외심일 것입니다. 세리에를 지배해왔던 왕으로서, 이탈리아의 10번으로서 표하는 경외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월드컵 직전, 저와 여왕은, 이탈리아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그가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죠. 그의 부상은 예상 외로 심각해서 병동에 갈 지경이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충격이었는지, 국무총리마저 나라일 중 틈을 내서 병문안을 가서는 월드컵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가 참 말년에 운도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왕은 눈물을 흘리더군요. 농담 삼아 그 병원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떻냐고 묻자, 이미 갔다 왔다고 했을 정도니까요(물론 경비원들에 의해 병실에 들어가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기분이 조금 나빠졌지만, 곧 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얼굴에는 검은색이 감돌았습니다. 그래요, 마치 그 친구처럼 말입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까 말이죠. 그래서 저는 저기압을 펼치는 대신, 그녀를 위로하는 것에 애정을 할애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 어쩌면 이것이 제가 그를 너무나도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일 수도, 그러니까 운명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를 향한 저의 사랑이 통했던 것일까요? 다행스럽게도 그는 월드컵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내 부진했습니다. 부상의 후유증 때문이었겠죠. 압박을 무색하게 하는 그 환상적인 몸놀림과 패스는 거의 보이지 않고 금방 헐떡대기 바빴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의 국민들은, 심지어 로마의 팬이었던 여왕마저도 그런 그의 모습에 욕을 하기 바빴습니다. 낮 동안 경기를 보고, 밤에는 사랑을 나누면서 그에 대한 욕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서점에서 사랑을 나눴는데, 저희는 월드컵 중 파도처럼 퍼져 나오던 책 중 토티의 어록이 담긴 책(그 책은 꽤 잘 팔렸습니다. 제 서점에 오던 손님들 중 절반은 그 책을 사갔을 정도였으니까요.) 위해서 성기를 맞대며, 그 사이에서 나오는 분비물로 그 책을 더럽히기도 했습니다. 저희의 분노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 마음을 논하기에는 그를 향한 실망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막기에는 종과부적이었던 셈이죠.

 

그러나 한 골만 넣어도 영웅 취급하는 것이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한 골을 그는 중요할 때 넣었습니다. 호주와의 16강이었죠. 저희의 수비는 최강이었기에 실점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비와는 무관하게도 여전히 골이 들어가지 않았죠. 저는 욕설을 하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승부차기까지 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후반전의 시간마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데, 저희에게 패널티킥이 주어졌습니다. 정말 행운이었죠. 저는 어쩐지 그것을 찰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토티였습니다. 그는 멋지게 골을 성공시켰고, 저희는 16강을 넘어, 결국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토티는 아주리 중 영웅의 등번호인 10번을 단 채, 월드컵의 우승이라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그 이후, 라치오는 언제나 부진했지만, 그 야만인들은 우승을 하지 못할 뿐, 언제나 토티는 빛났습니다. 월드컵 이후, 야만인들의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을 당하자, 그는 감독의 명에 따라 한 단계 내려와 플레이 메이킹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 야만인의 팀은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에게는 한 가지의 칭호가 내려졌습니다.

 

로마가 사랑한, 로마를 사랑한 세리에의 왕. 그리고 세리에의 왕이라는 칭호는 그 이후 이브라히모비치가 물려받기 전까지 쭉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빛났고, 여전히 빛나며, 앞으로도 빛이 날 것입니다. 그는 우리 라치오의 원수였지만, 로마의 왕이 되었고, 이탈리아가 사랑하게 되었으며, 경외심을 품게 하였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라치오의 팬이면서도 이렇게 그를 동경하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당신들에게는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라치오의 팬이면서 원수를 동경하는 자니까요. 밀라노의 여러분, 긍지 높은 공기 아래서 응원하는 당신들은 뭔가 대단히 착각을 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저 라치오의 경기를 보러 왔고, 아까의 폭력사건에 조금도 연관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차라리 어떤 라치오 팬이 당신들에게 위해를 가했는지를 물어보십시오. 제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불행하게도 산 시로 좌석에서 느리게 일어난 것뿐일 것입니다.

 

……됐습니다. 당신들은 제 이야기를 듣지 않았군요. 됐습니다. 포기합니다. 나머지는 저기에 달려있는 CCTV가 보여줄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당신의 머리가 잉태한 왕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 왕은 로마에서 태어났고, 20년이 넘도록 AS로마에서만 뛰고 있으며, 소년 시절 교황에게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고, 그 약속을 지켰고, 은퇴 후에도 다시는 없을 선수이자 왕이고, 저의 운명입니다. 그는 저의 푸른 동산을 지배하던 왕입니다. 어쩌면 제 친구가 절망에 빠진 것과도 관련이 있을, 저의 여왕마저 사랑했던 왕 말입니다. 당신의 왕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당신의 왕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푸른 벌판에 우뚝 서있고, 어디에서 그 강렬한 눈빛과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까?

 

……그런데 그것은 정말 왕입니까? 혹시 광대가 아닌가요.

 

이제는, 당신들에게 제가 질문해보겠습니다. 노파심으로 말하는 건데, 절대로 당신들의 몰락을 저희가 부흥해서 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시해두시길 바랍니다.

 

 

---

 

토티를 향한 애정을 담은 팬픽이자, 이장욱 소설가의 한 단편소설 팬픽

 

정작 지금은 토티는 진작에 은퇴했고, 올해 순위에서 로마는 밀란보다 씨ㅂ....

댓글 2

김경재맘 작성자 2021.05.05. 22:48
 황태
에베베베 어차피 토티 은퇴해서 로마팬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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