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제철

제철

 

베개 없이 눕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면 베개로 목의 위치를 편하게 조절하세요

 

겨울에 왔다

나라는 인간은

 

기다리는 동안 가을에 했던 명상을 하기로 함

 

간헐적인 습관인

증오 버리기

증오란

 

나라는 인간은

겨울에 봄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어젯밤 해동하려고 꺼낸 돌문어

 

(진행될수록 몸의 촉감이 사라지는 게 감각된다. 빗소리를 들을 때면 박남준이 봄비를 시작으로 모든 봄을 향해 증오를 뱉는 게 떠오른다. 내 봄의 기원은 이것에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기도 한다. 증오에 대해 생각할 때는 대개 증오를 갖지 않을 때. 공포도 마찬가지.)

 

증오와 공포는 손을 마주잡는 사이

앞뒤가 없다

공포란

 

가령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 프랭크의

두족류를 보고 느끼는 감정을 서술하기란

크툴루까지 만들어가는

 

(두족류, 두족류. 자꾸 발음하니까 받침 발음인 ㄱ이 연구개음이라는 게 떠오른다. 모음이 아닌 자음의 ㅇ(ng)도 연구개음이라는 것도. 두족류 두족류 두 종류. 종류를 둘로 나눈다면 나는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그 기원은 봄에서 기인하나.)

 

돌문어를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건

엄마가 태어난 바다마을

거기서도 돌문어를 잡았다

 

거기에 가면 덕장이 있을 것이고

더 가면 가공처리장이 있을 거고

젖은 바닥에 물을 뿌리며 속살거려

이들은 전부 남의 나라

이탈한 사람들 몫까지 일하고 본인 몫만 받는 사람들로 존재하는

 

나라는 인간은

가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자랐다

어린이집에 다녔을 땐

그런 사람의 자식인 진명이를 사랑하기도 했다

 

꺼내놓은 돌문어는 아직도 딱딱해 문어가 아니라 돌 같다

 

(돌문어는 봄이 제철이라는데. 봄이 제철인 걸 먹는다고 봄이 오는 것도, 안 먹는다고 봄이 안 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돌문어를 종일 보는 날도 있는 법이다. 살아있다면 딱딱해도 문어지만 죽은 문어이므로 문어일지. 얼음이 낀, 혹은 살이 얼어 짓눌린, 오그라들고, 꼬이고, 엉키고, 구겨져 눈이 감춰진, 이건. 그렇게 생각하면서 돌문어를 보는 모습이란. 물을 끓일지 기름을 데울지 결정한 것도 없으면서 이걸 꺼내놓은 모습이란. 돌문어를 보면서 언젠가 언 게 녹고, 꾸물거리는 게 늘어진 게 되고, 근육이 물이 되는, 그런 게 봄의 모습이라면. 돌문어는 살아있을 적 어떻게 생겼더라. 돌문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비닐봉지 안에 얼어있는 돌과는 전혀 닮지 않음. 이런 문어(혹은 문어 이미지)를 볼 때면 봄보다 언 웃음 같다. 공포와 웃음은 순차적.)

 

사물을 보면서

화자의 사상이 파고든 흠집에서 새어나와 차오르는 시를

그렇게 많이 봐왔음에도

대상만 바뀐 채

대상만 바꾼 채, 써왔음에도

쓰고 있다

지겹게도

 

봄이 온다

 

사랑, 벚꽃 말고

증오란

 

봄의 증오의 기원은

밖에 종일 놔둬도 꽝꽝 얼어 풀리지 않는 문어를 돌로 보는

 

정체된 모습인지

그런 사람들 뒤에 서 있는 모습에 내재된 공포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 불어와 내 맘 흔들면

 

흔들리는 게 없는 마음이어야 봄까지 온전하게 가닿을 수 있는 법

 

(그러나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오래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지적받아왔던, 너무 많은 걸 집어넣으려 한다는. 가령 솥에 끓이는 것이라면, 미나리 넣고, 참문어 넣고, 돼지목살 넣고, 스팸 넣고, 감자 넣고, 자라 넣고, 녹용 넣고, 잉어 넣고, 설탕 넣고, 크림 넣고, 고춧가루 넣고, 취나물 넣고, 붕어 넣고, 굵은 소금 한 숟갈 넣고. 그놈의 손맛까지. 펄펄 끓이면? 축하한다. 당신의 재료들, 꿀꿀이죽이(가) 되었다! 황석영은 한국전쟁 시절, 부산에서 담배꽁초가 들어간 꿀꿀이죽을 먹었다는데. 그것이 삶을 녹여낸, 직관적인 예술이라면 아마 이건 그런 예술 밖으로 튕겨진, 그럼에도 입에 넣으면 곧장 게워내게 되는 건 비슷한 무언가. 그렇게 입 밖으로 나온 것들과, 그것을 보는 마음을 묘사하기란 얼마나 생경한지. 하지만 그것과 실재 사이에 이루는 거리감에서 자아내는 현실감이란. 그런 종류에 속한 사람이 지닌 웃음이란. 그런 웃음을 갖고 싶은 사람인가, 나는.)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

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유행은 돌고 돌고

사랑은 돌아온다는데(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가)

 

(적어도 문어를 의인화하는 시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으면 한다. 나는 문어여도 문어는 내가 아니므로. 크툴루를 창조한 러브크래프트조차 더 이상 사랑하지도, 데려오지도 않을. 어느 봄날에 6시 내 고향에서 볼 수 있는 봄의 습도와 무관하게 젖는 어선과, 잡히는 돌문어와, 식탁에 요리된 돌문어(였던 것)와 사이마다 웃음, 매 봄마다 처음 본 것처럼 묘사해야 하는 사람. 이들 위로 부는 봄바람.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그런 봄의 이미지가 계속 되고. 증오와 공포는 손을 잡는 사이. 공포와 웃음은 순차적. 그 사이 명상음악은 끝이 난다. 이제 눈을 뜨자.)

 

방에서 나오면

엄마가 돌을 보면서 이건 왜 꺼내놓았냐고 묻는다

 

(……)

 

돌문어는 냉동실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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